내 주변에는 없는데 드라마에는 넘치는 '기억상실'

조회수 2017. 11. 15. 22: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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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사랑> 지안이, 너마저..?

내 주변에는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흔한 병은? 답이 '기억상실증'이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을 듯합니다.


지난 주말, KBS '황금빛 내 인생'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토요일 엔딩 장면에서 주인공 서지안이 정체불명의 약물을 삼키며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그리고 일요일 방송분에서는 50분이 넘어가도록 단 한 씬도 등장하지 않았죠. 모두 마음 졸이셨을 겁니다. '우리 지안이 어떻게 된 거지? 쓰러져서 염색 장인이 구해준 건가? 도경아, 빨리 지안이 찾아!'

출처: KBS '황금빛 내 인생'
꽃무늬 몸빼로 온몸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익숙함..

그런데 드라마가 끝나기 5분 전, 저 멀리 김 말리는 아낙네 사이로 지안이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보입니다. 하지만 친구 우혁이 그랬던 것처럼 '설마' 하면서 지나칩니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이 자꾸만 몸빼 바지와 꽃무늬 모자를 쓴 김 말리는 아낙네에 포커싱을 맞추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어느덧 한 아낙네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하더니, 그 분 고개를 돌립니다.

출처: KBS '황금빛 내 인생'
설마?

산에서 사라졌던 여자가 난데없이 인천 앞바다에서 김 말리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이 여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누구세요?" 하는 그 표정입니다. 설마, 기억상실인가요? 정말?


주인공 화제의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과연 '기억상실' 카드를 쓸 것인가가 이번주 방송가 최대 이슈입니다. 이 드라마는 올해 TV 최고 시청률 37.9%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시청자 대부분이 주인공의 '기억상실증'을 '확신'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대와 실망을 토로한다는 점입니다. 빠른 이야기 전개로 사랑받았던 '황금빛 내 인생'도 사골 우려먹는 듯한 패턴을 그대로 따라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기억상실 카드를 얼마나 써먹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요.

기억상실, 연속극의 필수 요소다?

아침과 저녁 일일극, 주말극까지 연속극에서는 기억상실이 필수 요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을 길게 끌고 가느냐, 단기간 써먹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긴 호흡의 연속극에서 기억상실은 사건과 인물들의 관계를 꼬이게 했다가 풀어내는 데 아주 유용하고도 손쉬운 장치로 쓰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침 연속극에서는 주로 한 남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부인과 내연녀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SBS '두 아내'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부남이 실종에 이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본의 아니게 두 집 살림을 하게 되는 KBS '아내' 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제작사 대표는 "기억상실이 진부하다고 욕을 먹지만 드라마에서 극성을 높이는 장치로는 가장 효과만점"이라며 "시청자들도 욕을 하면서도 그런 극적인 상황에 빠져든다"고 말합니다.

교통사고·유괴로 인한 기억상실이 가장 빈번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교통사고입니다. 어린 시절 유괴나 실종 등에 따른 트라우마로 기억상실증이 생기는 경우가 그 다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작품에서 등장했냐고요? MBC '쇼핑왕 루이', SBS '돈의 화신'과 '천국의 계단',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등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데, 실종까지 되면서 재벌가 일원인 주인공이 거지가 되거나 고아가 되는 극적인 반전이 동반됩니다. 


출처: MBC '쇼핑왕 루이'
기억을 잃기 전과 후, 이렇게나 다릅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KBS '겨울연가' 역시 '욘사마' 배용준이 맡았던 준상이 교통사고로 학창시절 추억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이야기를 후반부 전개했습니다.


배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MBC '환상의 커플'과 '신들의 만찬'은 배에서 떨어져 기억을 잃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특히 '신들의 만찬'은 모녀가 동시에 기억을 놓아버리는 설정이기도 했습니다.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MBC '왔다! 장보리' 등 대박을 친 주말극에서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유괴나 실종의 경험으로 기억을 잃으면서 가족과 헤어져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SBS '찬란한 유산'은 식품기업 회장인 할머니가 경미한 치매 증상 속 잠깐씩 오락가락하다 어느 순간 기억을 잃으면서 졸지에 가난한 '독거노인'이 돼버린 내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특정 기간만 기억 못하기도…시청자 궁금증 고조


SBS '피고인'과 '신사의 품격' '시크릿 가든' 등은 특정 사건, 특정 기간만 기억을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웠습니다. 약물이나 쇼크,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현상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KBS '브레인'이나 MBC '더킹투하츠'의 경우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 기억상실에 걸렸는데, 둘 다 지워버리고 싶은 어떤 순간에 대한 괴로움으로 특정 순간만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이들 드라마는 그러한 기억상실을 유발한 특정 순간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동안 극을 끌고 나갔습니다.

출처: MBC '해를 품은 달'
기억이 돌아와 오열 중인 한가인님.

사극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MBC '해를 품은 달'과 '아랑사또전'에서도 주인공이 기억상실에 시달렸습니다. 


판타지인 SBS '주군의 태양'과 '푸른 바다의 전설', tvN '도깨비' 등도 기억상실을 극 전개의 주요 코드로 써먹었습니다. 이 경우는 절대자의 필요에 따라 특정 기억이 삭제되는 식이였죠. 예기치 않은 기억상실이 아니라 '의도된' 기억상실입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드라마 속 기억상실의 빈번한 등장은 일단 지워버리고 싶은 게 많은 현대인의 내밀한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어 "기억상실을 활용하면 드라마 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이야기를 많이 생산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출처: KBS '황금빛 내 인생'
지안아...

그렇다면 '황금빛 내 인생'에는 예상(?)대로 기억상실이 등장할까요. '황금빛 내 인생'의 배경수 KBS CP는 "요즘 대본 유출 사고가 많아 스포일러로 피해를 보는 드라마들이 많다"며 "방송을 통해 확인해달라"고 말합니다.


우리 지안이, 마음을 달래려고 잠시 김 말리는 육체 노동 중인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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