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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간호대학이야 군대야..?

조회수 2017. 11. 4.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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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차려는 대학문화다(X) 범죄다(O)
출처: SBS
군대식 대학 문화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비싼 등록금 내고 군입대?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호대학에 입학하니 2박 3일 신입생 환영 오리엔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엉겁결에 들어온 간호학과여서 저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는데, 친구들은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선배들이 지나가자 연신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며 배꼽 인사를 합니다.


조를 나눠 방에 들어갔는데, 글쎄 다들 무릎을 꿇고 앉더군요. 분위기에 휩쓸려 엉거주춤 따라 앉고 말았습니다. 부모님 앞에서도 이러지 않는데...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습니다. 다리가 저려도 선배가 편히 앉으라고 할 때까지 참아야 했습니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사람이 마치 조상님처럼 굴더니, 자기들 이름을 다 외웠는지 테스트를 한답니다. 아니,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어찌 외운담...? 이름을 맞히지 못하면 벌주를 마셨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재롱을 떨고, 밤에는 사발식을 합니다. 선배들은 마시지 않고 우리에게 술을 주기만 했습니다.


어떤 교수님이 와서 방을 순회했는데, 저는 ‘너희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선배들을 혼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살살 해~ 알겠지?"


음대, 체대처럼 간호대도 내리 갈구는 군대 문화로 유명합니다. 마치 후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함부로 대합니다. 째려보고 툭툭 치고 위압감을 주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때도 웃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뭐라? 블랙리스트?

출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첫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동기 한 명이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찍혔다고 합니다. '과를 잘못 선택했다'며 기권했습니다. 동기들은 선배에게 더욱 깍듯해졌습니다. '사회 나가도 선배들과 엮인다, 의료계는 좁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망상이 사이비 종교처럼 퍼졌습니다. 주로 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기들과 달리, 저는 과 동아리와 중앙 동아리를 병행하며 다른 학과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학과 동기가 저를 화장실로 불렀습니다.

"너 선배들한테 찍혔대. 중앙 동아리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블랙리스트래"

저는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블랙리스트라니! 그 소식을 알리는 친구의 표정마저 우스웠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고 속삭였습니다.


"있잖아, 나 그런 거 신경 안 써"


무엇을 위한 전통인가


3, 4학년은 병원 실습으로 정신이 없기 때문에, 학생회나 각종 동아리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임원은 2학년이었습니다. (이건 아마 학교마다 다를 겁니다) 우리 과는 왜 이럴까? 술도 싫어하고 불만이 있던 몇 명이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 동아리부터 바꾸자"


저와 친구들은 자진해서 동아리의 간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동아리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하면서 슬그머니 술자리를 없앴습니다. 그러자 동아리의 인기가 치솟아 면접을 봐야 할 정도로 많은 후배들이 몰렸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대면식 등의 행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열렸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선택권 말입니다. 놀랍게도 선배에게 굽실댔던 동기일수록 사회에서 십 년은 구른 사람처럼 거들먹거렸습니다. 21살이 20살에게 말이죠. 심지어는 후배들을 챙기는 저희 동아리에게 '왜 너네만 좋은 선배 하느냐'며 괴상한 타박까지 하더군요.


제가 졸업반이 되었을 때, 신입생 몇 명이 2학년들과 대면식을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인 겁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결국 굵직한 행사들이 아예 없어져 버렸습니다. 교수님들은 내내 묵인하다가 그제야 회의를 열고 학생회를 추궁했다고 합니다. 


군대식 대학 문화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취재진이 모 대학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애들 일이지 나는 모른다. 주관한 애들이 문제 아니겠냐"라고 회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침묵으로 용인되는 범죄

전통이라고요? 관행이라고요? 이건 '범죄'입니다. 나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요? 알고도 묵인한 사람 역시 가해자입니다. 아마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학생이 비싼 등록금과 귀한 시간을 버리며 이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학생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다움과 양심을 버리고 악마가 되는 걸까요? 단지 개인의 문제일까요?


악이 퍼지는 데 필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고도 침묵하는 무관심이 마침내 모두의 목을 조른다고 합니다. 저처럼 '뭐 이런 웃긴 애들이 다 있어'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목을 매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사고의 피해자는 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 '엄지'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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