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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부럽지 않은 청년 도시 농부들 '파절이'

조회수 2018. 5. 25. 11: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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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귀농에 마음이 끌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하지만 농촌이 아닌 서울에서 농사를 짓는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셨죠? 도심에 싹을 틔우면서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는 '파절이' 청년들을 만나볼게요!


‘파절이’의 공동경작구역, 도시인 농사 본능 깨우다 

출처: C영상미디어
함께 가꾸고 함께 나누는 도시농부 모임 ‘파절이’ 대표 김나희 씨

서울에서는 요즘 농사 열풍이 불고 있어요. 자치구마다 운영하는 농장과 텃밭들이 있고, 골목길이나 베란다에서도 작물을 가꾸는 사람이 많아요. 심지어 도시 양봉을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할 정도죠. 그동안 어른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농사가 젊은이들에게 확대되는 것은 도시 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파릇한 절믄이’의 준말인 ‘파절이’는 청년도시농업 단체입니다. 비영리 단체로 ‘함께 가꾸고 함께 나눈다’는 모토 아래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옥상 텃밭에서 공동 경작 중이죠. ‘파절이’를 이끌고 있는 김나희(32) 대표도 농사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도시청년이에요. 조경학과 출신인 김 대표는 평소에도 도시농업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졸업 후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다가 환경과 생태에 연결되는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파절이’에 합류하게 됐어요. 김 대표는 농부를 선언하는 도시민이 늘어날수록 도시 생태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해요.


“농사는 모두에게 이로운 종합 활동입니다. 기후변화, 안전한 먹을거리, 생태순환, 공동체, 치유 등의 가치를 모두 포괄한 활동이죠.” 


‘파릇한 절믄이’ 도시에 초록을 심다

출처: 픽사베이

파절이의 회원은 100~120명 정도로 후원회원과 옥상 텃밭을 직접 가꾸는 경작회원 등으로 나뉩니다. 월 3만 원이면 160Χ80cm 사이즈 두 개의 작은 밭을 경작할 수 있는데, 대기 인원이 발생할 정도로 인기가 높죠. ‘파절이’에서 경작하는 곳은 마포 도화동 건물의 6층 옥상으로 밭 면적은 661㎡ 정도예요. 10년 동안 방치돼 있던 곳을 건물에 입주한 프랑스 기업이 ‘파절이’에 주선하면서 사용하게 됐죠.


옥상 한쪽에 마련된 텃밭은 1m 정도의 깊이로 제법 넓은 공간이에요. 공동경작 구역에는 토마토, 고추, 상추 외에도 보리나 홉 같은 작물이 자라고 있고, 개인의 경작 텃밭에는 주인의 취향대로 루콜라, 고수, 공심채 같은 채소들이 자리하죠. 회색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에서 싱그럽게 자라는 초록빛에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인데요. 저절로 손이 갈 정도로 탐스러운 상추를 보고 있자니 농작물 관리에 대한 걱정도 들어요. 김나희 대표는 공동경작 구역 중 한 곳을 모두를 위한 밭으로 제공했어요. 옥상에 드나드는 누구든 가져갈 수 있게 상추와 고추를 심은 거죠.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잖아요. 경작하는 밭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고요. 재미로 몇 개 따보는 거니까 공개된 밭을 만들어서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경작에서 배우는 ‘나눔의 가치’

출처: 픽사베이

‘파절이’는 농사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즐겁게 즐기자는 것이 기본 틀이지만, 농사는 결코 만만하게 여겨서는 안 돼요. 김나희 대표 역시 제대로 된 농사를 위해 농업기술센터의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죠.


“농작물을 키워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험하면 올바른 먹거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식생활 역시 변화될 수밖에 없죠.”


먹을거리가 사람들의 건강뿐 아니라 환경, 경제, 지역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먹을거리는 환경, 지역사회, 우리의 몸, 그리고 지구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죠. 콘크리트 정글 속에 갇혀서 잊고 지냈던 생명 존중의 가치와 무너진 윤리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흙 묻은 손으로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고마움을 느껴봐야 해요.


“사람들은 뭔가 키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도시농사는 우리 안에 내재된 경작 본능을 일깨우는 것 같아요.”


직접 길러 먹는다는 것은 농사의 가장 큰 즐거움이죠. 내 손으로 뿌린 씨앗에서 싹이 고개를 쏙 내밀었을 때의 기쁨, 작고 예쁜 꽃이 피었을 때의 놀라움, 열매가 익을 때까지 오랜 기다림과 수확의 설렘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을 주니까요.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고, 열매를 수확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움 그 자체죠. 그뿐만 아니라 수확한 작물을 함께 나누고 먹는 즐거움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줘요.


“도시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귀결됩니다. 단순히 키우기만 하면 농사의 지속성과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거든요. 직접 기른 작물의 맛을 공유하고, 다 함께 한 끼 나누는 자체로 공동체 안에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농사는 이처럼 같이 농사를 지어 같이 먹고 같이 나누는 ‘공유의 가치’를 일깨워주죠. 사람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삶의 나침반 역할도 해요.


판타지는 안 돼, 정성이 필요한 농사

출처: 픽사베이

‘파절이’ 회원은 20~40대가 주를 이루는데요. 귀농을 준비하면서 연습 삼아 해보는 40대 부부부터 상경한 뒤 흙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옥상 텃밭을 찾아오는 30대 직장인, 삼겹살 파티를 위해 쌈 농사를 준비 중인 20대 대학생까지 연령과 사연도 다양해요. ‘파절이’에서는 원활한 농사를 위해 ‘파머스 스쿨’을 운영하고 있어요. 파머스 스쿨에서는 작물 재배법에서 생태학에 관한 내용까지 교육하며 작물에 대한 특징과 함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요리 강습도 열려요. 지난 4월에는 봄나물 밥상을 주제로 달래무침과 봄동겉절이를 만들어 먹었어요. 피클이나 감자요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수확되는 작물과 계절에 따라 요리 주제가 달라져요. 사계절을 온전히 흡수하는 수업이라고 볼 수 있죠. 옥상 텃밭은 3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되며 토요일마다 농사 체험도 이루어져요.


“농사 초보라 시행착오가 있지 않겠냐고 물으시는데, 저희는 농부 마인드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농부는 농작물 판매로 이윤을 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기르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시행착오나 실패가 있을 수 없죠. 과정 자체로 이미 성공입니다.”


물론 여가라고 해도 농사일은 쉽지 않죠. 농사는 꾸준함과 부지런함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농사 판타지로 시작하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길 건너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편하게 사올 수 있는데 왜 힘들게 잡초를 뽑고 물을 줘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는 날마다 새롭게 생기죠.


“토마토를 직접 길러 먹는 것보다 마트에서 사는 게 더 빠르고 싸죠. 하지만 토마토를 얻을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서 하나를 경험해보고 생각할 여지를 찾는 겁니다. 선택권이 있을 때 더 좋은 소비자가 되거든요.”


키워본 사람은 알죠. 어떤 것이 좋은 농산물인지를. 농사의 수고로움과 가치를 몸으로 느낀 사람은 작물을 대하고 선택하는 태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죠. 도시농사는 우리의 삶을 이렇게 바꾸어놓습니다. 


키우고 나누며 지역공동체를 생각하다

출처: 픽사베이

도시농업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권리인 먹을거리를 통해 우리 삶을 바꿔보자는 새로운 삶의 시도죠. 건강한 토마토 한 알을 따기 위해서는 꿀벌과 나비, 지렁이 같은 다른 생명들을 함께 살피고 함께 키워나가야 해요.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먹을거리를 마련하게 되면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돼 있는 생태계를 이해하게 돼죠. 그뿐만 아니라 이웃 간의 벽, 세대 간의 벽을 허물어 서로 소통해 공동체 회복을 도와주기도 해요. 이웃들은 함께 협력함으로써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을 찾게 돼죠. 


‘파절이’도 그랬어요. 파절이에서는 당번을 서며 함께 가꾼 농작물로 지역사회와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공동 경작한 홉으로는 로컬 맥주를 만들었죠. 수제맥주 전문점인 ‘어메이징 브루어리’는 서울 마포에서 생산한 홉으로 ‘프레시 홉 비어’를 만들어 판매했어요. 옥상 텃밭에서 경작한 홉에서 케그(5리터) 10개 분량이 만들어져 로컬 맥주를 만들어낸 거죠. 맥주의 완판으로 예상 못한 수익을 내기도 했는데요. 이전의 옥상 텃밭이 있던 광흥창에서는 같은 건물에 있던 빵집과 콜라보 작업으로 허브빵을 만들었어요. ‘파절이’에서 기른 싱싱한 허브를 듬뿍 넣은 빵은 지역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죠. 이런 작업들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도시농업은 지역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됩니다.


김나희 대표의 꿈은 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같은 작물을 키우더라도 지향하는 꿈이 조금 더 크죠.


“지금 우리 농업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경작 면적이 확대되고, 품종의 단일화가 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절이’의 텃밭에서만이라도 유기농법으로 환경을 보전하고 건강도 지키는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요. 또 생물의 다양성 측면에서 토종 종자를 지켜나가며 자연과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옥상 녹화는 그 자체로 도시환경을 개선해요. 미관상으로도 좋지만 지열을 내리는 데도 탁월하죠. 옥상 텃밭 가꾸기는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활동이에요. 하지만 그에 대한 지원은 아쉽기만 하죠.


“도시농사는 건물 사용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건물주의 허용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임대차 계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죠. 건물주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실질적인 혜택도 없는데 누가 번거롭게 옥상 텃밭을 만들겠어요?”


옥상 텃밭은 흙을 퍼 올리고 텃밭을 조성하는 설치에도 거금이 소요되는 데다가 철거 비용도 만만찮기 때문에 옥상 텃밭의 장소를 늘리기는 쉽지 않죠. 여기에 사방으로 번지는 흙 때문에 건물 관리인들과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죠. ‘파절이’의 텃밭 입구에도 흙을 털어내는 여러 개의 발판이 마련돼 있어요.


“우리야 농사를 한다지만, 청소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죠. 도시농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도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도적인 뒷받침,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1세기의 도시농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도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사업으로 장려하고 있어요.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젊은이들이 지역사회와 생명 생태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죠. 도시농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민,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이 주체가 돼야 해요. 거대한 도시에 변화의 씨앗을 뿌릴 주인공은 새로운 상상력을 싹 틔울 청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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