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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아이돌, 센언니 제시까지 반한 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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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공감 작성일자2018.05.09. | 2,90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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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음악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로 ‘판소리 속사포 랩’을 선보이며 좌중은 물론 힙합 센 언니 제시까지 사로잡은 소리꾼 김준수를 아시나요? 


국악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답게 훤칠한 키에 고운 얼굴을 자랑하는 그. 하지만 그가 온몸으로 끌어올린 듯 뱉어내는 흔들림 없는 소리에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온갖 감정이 묻어납니다.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한 국립극장 완창무대

명창을 꿈꾸는 젊은 소리꾼 김준수 씨는 우리 소리를 해온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어요. 지난 3월에는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을 혼자 이끄는, 생애 첫 완창 판소리를 해냈고요.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암기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연기까지 곁들여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돼요. 더욱이 당대 최고 명창들만 올랐다던 국립극장 완창 무대의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소리꾼에게 완창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자 계기입니다. 모든 소리꾼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큰 공부가 돼요. 공연 일자가 다가올수록 더해지는 부담감 탓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큰 성취감을 남긴 경험이었습니다. 큰 산을 하나 넘고 또 다른 산으로 향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선보인 소리는 ‘수궁가-미산제’였어요. 상하청을 넘나드는 음과 시김새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토끼가 별주부의 꾐에 빠져 용궁에 가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예요. 김 씨가 판소리에 입문한 뒤 스승인 박금희 명창으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소리이기도 하고요. A4 용지로 40쪽이 넘는 가사를 술술 자연스레 읊는 그의 모습에 버금가는 그날의 또 다른 진풍경은 관객석이었어요. 20~30대가 관객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해 인기 대중가수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김준수 씨는 ‘국악계 아이돌’로 통하는 국립창극단 대표 스타 소리꾼이에요. 


수려한 외모를 무색하게 하는 실력파

혹자는 ‘수려한 외모가 인기 이유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진짜 무기는 탁월한 실력이이에요. 대학교 재학 시절인 2013년 그는 30년 만의 최연소 입단으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어요. 입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극 ‘서편제’의 어린 동호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배비장전’, ‘메디아’, ‘적벽가’ 등 다수 작품에서 주역 배우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최근에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힘입어 더 많은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어요. 요즘 말로 꽃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렇다고 소리꾼으로서 지금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에요. 김 씨가 처음 판소리를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국악 동요를 곧잘 따라 부른 덕분에 당시 지역에서 열리는 초등학생 전통경연대회에 출전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한 누나가 부르는 ‘춘향가’의 ‘갈까부다’ 대목을 듣고 소리에 반했다고 해요. 또래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대중가요와는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고 해요.   


“사람이 힘을 줘서 뽑아내는 소리 중 그렇게 애절하고도 슬픈 건 처음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음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무슨 음악이냐고 물으니 판소리라고 했어요. 소리꾼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전남 강진군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에게 소리 공부는 사치였어요. 풍족하지 못한 환경이라 명인을 사사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고, 부모님은 미래가 불투명한 예술을 하겠다는 아들을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그 또한 집안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버팀목이 된 건 담임 선생님이었다고 해요.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줬고 그가 정식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흔들리지 않는 소리꾼 돼야죠”

그는 판소리를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고 자부했어요. 여름과 겨울에는 산에 들어가 합숙 훈련을 받았어요. 소리와 함께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기억할 정도였어요. 그는 “전남예고 시절 매일 정규 수업보다 한두 시간 먼저 등교해 혼자 연습한다고 해서 알람시계라는 별명이 붙었다”며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했어요.


“최근에 고교 시절 국악 담당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은 국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어떻게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같은 걱정을 했고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올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꾸준히 소리를 해나가다 보면 길이 있다는 거예요. 후배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기 위해서라도 흔들리지 않는 소리꾼이 되려 합니다.” 


국립창극단원이 되고 4년이 흘렀어요. 그사이 김 씨에게는 많은 작품이 쌓였고 무대에 임하는 자세에는 노련함과 책임감이 더해졌어요. 이전에는 오로지 ‘연습한 내용을 실수하지만 말자’는 심정으로 무대에 섰다면 이제는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호흡하고 있다고 했어요.  


주어지는 배역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어요. 굳이 그 계기를 묻는다면 ‘트로이의 여인들’ 속 여성 역할인 헬레나를 맡고 나서부터라고 해요. ‘여장 연기를 하고 나면 반감을 얻지 않을까’란 걱정은 괜한 기우였어요.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연기는 호평을 얻기에 충분했고 그 자신도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가 늘어났어요. 이제 소리를 향한 그의 열정은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시도로 진화해가고 있어요.  


“판소리는 여전히 대중화된 소리는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각광받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전에는 한 창극을 똑같이 반복하는 형태로 공연이 이뤄졌다면 언젠가부터 현장 관객과 소통하면서 관심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다음 공연이 궁금해서 찾아오시는 관객들이 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전통음악이라고 해도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가 여러 장르와 적극적으로 협업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퓨전 에스닉 밴드 ‘두 번째 달’과 함께 재해석한 ‘판소리 춘향가’가 대표적이에요. 북이 아닌 클래식 악기에 맞춰 부르는 판소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선사했어요. 


“제가 젊은 소리꾼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북 하나만 들고 판소리를 했다면 이 정도의 관심은 아니었을 거예요. 색다른 판소리를 보여드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장르와 결합한다고 해서 판소리의 고유성을 잃어서는 안 돼요. 만약 가요를 판소리처럼 부르는 것처럼 장르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음악이 되겠죠.” 


한편에서는 김 씨의 활발한 움직임이 소리꾼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는 “소리꾼의 길을 묵묵히 걷겠다”고 분명하게 말했어요.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소리라는 이유에서죠. 


“제 목표 중 한 가지는 판소리의 매력을 더 많은 대중, 특히 국악에 관심이 없던 10~20대에게 알리는 겁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우리 젊은이들이 모른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이 일은 젊은 소리꾼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해요. 대개 판소리 하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앞세워 외면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잘 들어보세요. ‘춘향가’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을 보면 단전에서 뽑아 올린 발성이 록 음악처럼 가슴을 뻥 뚫어주고, ‘흥부가’ 휘모리장단에 맞춰 박 타는 대목은 신나는 랩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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