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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엔씨맨'이 10년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제안

조회수 2018. 5. 21.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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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마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 인터뷰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뒤였다. 에누마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로 가는 길. 도로에 고인 물이 자동차 바퀴에 부서지며 차악 소리를 냈다. 자동차가 지나가자 멀리 까만 비닐봉투를 들고 가는 남자가 보였다. 빨간 후드 집업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 오늘 만나러 온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의 뒤를 쫓았다. 손에 든 비닐봉투 밖으로 빼꼼히 드러난 페트병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동료들과 마실 음료가 떨어졌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엔씨소프트에서 20년을 일한 사람이었다. 퇴사할 때 직위는 ‘상무’ 였다. 그가 점심시간에 동료들을 위해 페트병 음료수를 사러 나와본 건 언제적 일일까. 남자는 타박타박 걸어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 엔씨소프트 김형진 상무가 돌연 회사를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이직한 곳은 교육 앱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에누마’. 6개월여 후, 2018 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등장한 그는 주사를 6번 맞으며 탄자니아에 다녀왔단다.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걸까. 디스이즈게임이 에누마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를 만났다.



* 매끄러운 전달을 위해 이하 ‘엔씨소프트’를 ‘엔씨’로 씁니다.

김형진 에누마 게임 디자이너


갑자기 교육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해서 놀랐다.


나도 이렇게 될 지 몰랐다. (웃음)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매너리즘 같은 게 있었나 보다. 이수인 대표 제안에 혹하더라고. 근 10년 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수인 대표랑 남편 이건호씨도 엔씨 다녔다. ‘언젠가 셋이 같이 일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끼리 얘기만 했었지. 셋이 대학 동창이거든. 이건호씨랑은 같이 <리니지2> 만들었다. 


<토도 수학>이라고 회사에 메인 앱이 있다. 아이들 수학 공부하는 앱이다. 엑스프라이즈*랑 <킷킷스쿨> 하게 되면서 회사에 프로젝트가 두 개가 됐지. 작은 회사가 프로젝트 두 개를 하려니 개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합류했다.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에 있다. 한국 사무실은 지난 달까지 거의 연락사무소(?)처럼 있다가 이번 달에 정식으로 법인 설립했다. 인원은 미국, 한국 합쳐서 30명 정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경진대회:

 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주최하는 경진대회.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하며 첫 대상국은 탄자니아다. 에누마는 <킷킷스쿨>로 결선에 진출했다.

에누마의 아동용 교육 프로그램 <킷킷스쿨>


에누마에서 무슨 일 하고 있나.


게임 디자인 한다. 완전 실무자다. 엑스프라이즈에서 수상한 <킷킷스쿨> 개발하고 있다. 탄자니아 아이들 공부하는 앱인데, 약 40개 정도의 게임을 통해 스와힐리어, 영어,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도서관이랑 색칠 공부 같은 것 할 수 있는 기능도 있고.



엔씨에도 이런 프로젝트 있지 않나. 문화재단도 있고.


엔씨문화재단이 꾸준히 이런 일 하고 있다.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는 걸로 안다. 근데 엔씨에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목표가 다르지 않나. 에누마는 애초에 이런 걸 목표로 하는 회사고 엔씨는 회사의 어느 조직 하나가 그런 일을 하는거고. 회사의 목표가 의사결정 속도랑 연결되는 것 같다.


작은 회사로 옮기고나서 느끼는건데, 뭐든 액션을 빨리빨리 할 수 있다. 좀 말 안 되는 것도 할려면 할 수 있고. (웃음) 



사회 문제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나.


많았다. 언젠가는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근데 좀 막연했지. 구체적이어야 추진력이 생기는데. 이수인 대표에게는 굉장히 구체적인 목표와 과정이 있었다. 그의 비전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교육인가. 기여할 분야는 많지 않나. 


그러게. (웃음) 게임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NDC PT 준비하면서 ‘게임이 좋은 게 뭔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일단 인터랙션이 즐겁고, 내적인 어떤 매커니즘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있고, 배움으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주고. 그런 걸 다른 사람이랑 공유하며 또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얻고.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게 교육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한 2010년 정도에 ‘시리어스 게임’이 많은 관심을 받았지. 근데 주목받은 만큼 성공하진 못했다. 아마 여러 디테일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잘’ 하면 돌파할 수 있다. 에누마는 그런 노하우가 있는 회사고. 


엔씨에서 <마법천자문>이나 <호두잉글리시>같은 교육용 게임을 개발하면서 느낀 게 있다. 교육의 기회가 충분한 친구들에게 ‘게임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라고 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 그들에겐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엔씨소프트에서 <마법천자문>을 개발할 당시 김형진 디자이너. (가운데)

근데 제3세계 국가는 다르다. 교육 시스템이 없거나, 붕괴된 나라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가 혼자 동기부여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게임이 해 줄 수 있는 게 많은 거지. 재밌어야 계속 하니까. 


특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 그 나이대에 기본적인 덧셈, 뺄셈, 곱셈 같은 거 할 수 있는 거랑 없는거랑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난다. 우스개 소리로 맨날 하는 얘기가 “나 여기와서도 맨날 리텐션(잔존율) 고민한다”고. 아이들이 선생님도, 학교도 없는 곳에서 이 물건을 가지고 혼자 놀아야 하니까 잘 하고 있나, 그만두진 않았나 걱정이 되는 거다.

<킷킷스쿨> 교육 화면 일부 (제공: 에누마)​


스스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재밌어야 한다는 얘기 같다.


맞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게임도 재미있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경험치를 모으면 레벨이 올라간다든지, 돈을 모으면 상점에서 뭘 살 수 있다든지. 그런 개념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학습된 거다. 그렇게 해야 더 재밌다는 것 말이다. 


여기와서 굉장히 많이 배우고 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지금 굉장히 인류학적인 과제를 풀고 있다. 인간이 어떤 백그라운드나 학습없이 그냥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뭐냐.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 것들을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내고 있다. 



이수인 대표는 모든 아이들이 ‘기초 학력’을 갖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작을수도 있는 그 차이가 성인이 됐을 때 큰 차이를 부른다. 엑스프라이즈를 설계한 곳이 미국의 USAID(대외 원조를 담당하는 미국의 정부 기관)인데, 거기서 그런 논문이 많이 나온다. 아이가 서너 문장으로 된 글을 이해할 수 있나 / 없나, 두 자리의 받아올림 있는 덧셈을 할 수 있나 / 없나. 이렇게 분류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났던거지. 수입이라든지 학력 같은 게.


그게 어떤 극단적인 차이가 아니다. 그 나이대에 그걸 알면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런 연쇄 작용이 차이를 부르는거지. LOL의 스노우볼링 같은 거다.


<킷킷스쿨>의 테스트 국가로 탄자니아가 선정된 이유가 있나.


엑스프라이즈가 이 프로그램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게 제안했고, 얘기가 잘 된 게 탄자니아라고 알고 있다. 탄자니아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고 하더라. 아프리카 나라들이 전자교과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 사람들 학교 시스템 만들려고 돈 엄청나게 썼다. 학교 만들고, 교사가 학생 가르치는 그런 시스템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됐지.


탄자니아는 초등 교육이 의무다. 수치상으로 입학률 90 몇 퍼센트 되고, 졸업률도 높다. 근데 여전히 문맹은 너무 많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있는데 교육이라는 목적이 달성이 안 되는 거다. 



아이들이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들이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전달이 안 되고 있다는건가? 


맞다. 학교에 가서 앉아있다고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작년에 탄자니아 갔을 때 학교들을 꽤 많이 봤다. 거기도 등급이 다 있다. 영어만 쓰는 삐까뻔쩍한 외국인 학교도 있고. 공립 학교들 중 좀 아랫 등급 학교 가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앞에 앉아있고 애들은 자기 원하는 거 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원조받은 몬테소리 교구들 먼지 뿌옇게 쌓여있고. 그런 상태.


그 나라들 입장에서는 절실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다. 현실은 이렇지만 다음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나아야 하니까. 해도 해도 안 되니 극단적인 방법도 써 보는 거다.

<킷킷스쿨>로 학습하고 있는 탄자니아 아이들 (제공: 에누마)


극단적인 방법?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공교육 붕괴 얘기 많이 한다. 일단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런 나라들은 뭘 파격적으로 바꾸진 못한다. 근데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그게 가능하지. ‘우리 몇 년도부터 100% 전자교과서 하겠다’ 이렇게 선언하는 나라도 있고. 그렇게 엑스프라이즈랑 니즈가 맞은 나라들이 있다. 탄자니아도 그 중 하나다.



전자교과서는 어떤 건가?


전자교과서가 어떤 형태인지, 어떤 형태여야 하는 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뭔가 성배같은거지. 교육계의 성배. 에누마에서 PT할 때 자주 쓰는 짤방중에 그런 거 있다. ‘이것이 미래의 교육이다!’ 하면서 아이들 교실에 다 앉아있고,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때리고 그러는. (웃음) 


상상력이 부족한 거다. IT 기술로 교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상태지. 우리는 그게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게임이라는 키워드만큼 중요한 게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다. 이수인 대표가 ‘모든 아이들이 기본적인 학력을 가지는게 목표’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중에는 인지가 떨어지는 아이도 있을거고, 똑똑하지만 주의가 산만한 아이도 있을거고, 자폐가 있는 아이, 눈이 안 보이는 아이, 귀가 안 들리는 아이도 있을 거다.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은데, 이 아이들을 다 포용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일단 건축학 개념이다. 횡단보도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게 한 경사면 있지 않나. 그게 있다고 해서 일반인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 거다. 오히려 편하면 편했지. 근데 휠체어를 탄 사람한텐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디자인 된 유니버셜 디자인의 대표 사례 ‘커브 컷(Curb Cut)’

게임을 디자인 할 때도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맞춤형 디자인을 하라는 게 아니다. 1+1=2를 가르칠 때 색깔을 바꿔주면 색약인 아이들도 알 수 있게 되고, 음성 텍스트를 제공하면 눈이 안 보이는 아이들, 보상 주기를 빠르게 하면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도 몰입하게 할 수 있겠지. 하나의 물건을 만들지만 굉장히 포괄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사실 이수인 대표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 그게 큰 계기가 됐을 거다. 우리나라처럼 나름 공교육 체계가 잡혀있는 나라에도 그런 사각은 있다. 그런 아이들은 사실 특수교육 교사가 1:1로 케어해야 교육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다.


맞다. 미국 본사에 특수교육 전문가도 컨설턴트로 있고, 한국에도 있다. 근데 이론을 응용해서 실제로 만드는 건 게임 기획자들이 굉장히 훈련이 잘 돼 있다고 본다. 게임 기획자들 사고에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을 넣으면 ‘이 사람 왜 게임을 그만두지?’의 원인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 게임 좀 해 보니까 재미가 없어서 그만둘 수도 있는데,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 지 몰라서 그만둘 수도 있다는거다.


그런 게 없도록 게임을 다듬고 깎아내는 훈련이 게임 기획자들은 잘 돼 있다.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이론을 실무적인 결과물에 적용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게임 만드는 사람이라고 본다. 



게임을 좀 해 봤더니 재미없어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이탈하는.


게임 출시하면 보통 초반 5분 분석을 하지 않나. 이걸 게임 회사에서는 초 단위로 잘라서 보는데 교육용 게임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일이다.


<킷킷스쿨>은 타이틀 로고가 나오고 난 뒤 텍스트가 꽤 긴 시간 안 나온다. 근데 그러면서도 아이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이 화면에서 뭘 해야 할 지 전혀 고민하지 않게 해야 한다. 

<킷킷스쿨> 교육 화면 일부 (제공: 에누마)​


엔씨 다닐 땐 잘 몰랐겠다. 게임을 만들 때 보통 보편적으로 잡고 있는 타깃 유형이 있지 않나.


상업 게임들도 슬슬 시동은 걸고 있지. 최근 GDC 같은덴 억세서빌리티(Accessibility) 세션이 늘 있다. 특히 대형 콘솔게임 만드는데서는 신경쓰고 있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퍼져있는 건 아니다. 근데 주류 게임도 아마 이쪽에 주목하면 상업적으로 큰 리턴이 있을 거라 본다. 나도 에누마에 와서 깨달았다.



<킷킷스쿨>은 어떤 식으로 보급되고 있나. 


탄자니아 시골 마을에 직접 갖다 준다. 많은 데는 애들이 열 몇 명, 적은데는 서너 명 있다. 150개 마을에 유네스코 사람들이 짚차 타고 가서 기기랑 태양열 충전기 갖다주고 “바이바이” 하는거다. 2주에 한 번 가서 기계 고장났나 물어보고, 고장나면 바꿔주고.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는게 놀랍다. 공교육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다. 공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한텐 우리가 되게 사도인거지. 근데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람들한텐 이게 제3의 길인거고. 



지금 아프리카가 교육 문제가 가장 심각한 걸로 안다. 맞나?


그렇지. 근데 중국 내륙만 해도 상황이 안 좋다. 인도도 그렇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난민이다. 북아프리카쪽 난민 문제가 크다. 그게 지금 유럽쪽 문제가 되고 있거든.


엑스프라이즈용으로 만든 걸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난민 캠프에서 테스트 해 보고 있다. 지금 케냐에 아프리카 난민 캠프가 있다. 그 안에서도 아이를 낳으니까 난민이 계속 늘어난다. 난민 받은 나라 입장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10년 20년 후에도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거랑, 말을 알아 듣고 쓸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인 거다. 지금 난민을 받은 나라는 이게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난민 캠프 안에도 학교는 물론 있다. 근데 선생님 한 명에 아이들 한 300명 있고 그런 형편이지. 일반적으로 교과서 있고 선생님이 칠판에 써서 가르치는 형태의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여기서 선생님 더 늘리라고 하는 건 사실 너무 이론적인 얘기인거고. 일단 받은 나라 입장에선 그런 제3의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지. 

난민이 된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해결이 필요한 상태다. (출처: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


김 디자이너도 자녀가 있는 걸로 안다. 합류하고 나서 자녀의 교육 환경을 보는 관점 같은 건 바뀌었나.


일단 ‘보는’ 게임의 시대로 가는구나. 라는 걸 많이 느끼고. (웃음)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애 키우는 고민은 늘 있지. ‘공부 잘 한다고 쟤가 훌륭한 사람이 될까?’ 이런 생각도 하고. ‘탄자니아 외국인 학교 좋은 것 같아’ 이런 생각도 하고.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이미 공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국 공교육은 어떤 것 같나?


우리 애는 일단 잘 따라가고 있는 편인데 막연한 두려움은 있다. 지금 아이들도 우리가 배웠던 대로 그대로 배우고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 직업이 사라지고 어쩌고... 이런 얘길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잘 모르는 미래에 아이가 놓이게 된다면 생존 스킬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좀 불안함이 있는 것 같다. 학교가 아이에게 생존 스킬을 가르치고 있나?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답을 찾고, 문제를 정리하고 그런 능력.



독일은 학교에서 노동법 가르치는 것처럼?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성평등 교육 같은 게 잘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난 사실 그거 되게 두렵거든. 우리 애가 일베할까 봐. (웃음) 이런 부분이 잘 교육되고 있나 걱정이 많이 된다. 그렇다고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랑 많이 얘기하는 수 밖에 없겠지. 아이가 내가 만드는 것들 테스트 플레이도 열심히 해 준다. 


김 디자이너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근데 대뜸 전직하기는 힘든 게, 먹고 사는 현실도 중요하지 않나. 에누마는 어떤가?


최근에 투자를 한 번 받았다. 아직까진 투자에 의존하고 있지. 재밌는 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교육용 게임 시장 망했다’ 이런 분위기인데 글로벌하게 보면 그렇지는 않다. 제3세계 중심으로 기회를 잡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우리는 어쨌든 매출을 지금보다 올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야지. (웃음)



투자 주체가 일반적인 투자사는 아닐 것 같다.


엑스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였던게 크게 작용해서 소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투자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관(官)이나 정부는 어떤가.


KOICA(코이카, 한국국제협력단)에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이라고. 코이카가 해외 지원을 많이 하지 않나. 그 중에 IT 기술 지원 분과가 따로 있다. 그쪽 지원을 많이 받았지. 탄자니아 갈 때도 비행기 표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테스트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쪽에서 코이카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 외에도 그런 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NGO나 단체들이랑 열심히 교류하고 있다. 


이직할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부인이 언어치료사다. 질병이나 심리적인 이유로 말하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 치료하는 직업이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전문가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본인이 더 하고 싶어할 사람이다. 여기 오는 건 흔쾌히 동의했다.


에누마 온 이후로는 책도 추천받고,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다. ‘애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어떻게 되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 아이가 뭔가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RPG 스킬셋 같은 느낌을 받는다. (웃음) 애가 이걸 할 수 있으면 이것 이것도 할 수 있고, 이 단계로 못 가는건 이거랑 이걸 못했기 때문. 이런 식이다. 그런 것 같이 얘기하는 것도 재밌지.



지금 김 디자이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뭐가 제일 좋나.


물건을 만들면 나온다는 거? (웃음)


되게 오랜만에 실무를 하고 있다. 기획서도 쓰고, 데이터시트도 넣고. 사람 없으니까 어떨 때는 오디오 편집도 한다. 모르면 막 배워서 하는 거지. 엔씨에선 머리로 고민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손이 바쁘다.


몇 년새 업무 환경이 되게 좋아졌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개발하는 거 너무 편하다. 본사가 미국에 있으니까 원격으로 협업하는 툴들 이용하는 그런 환경이 즐겁다. 보안 같은 거 큰 회사 있을 때보다 신경 덜 써도 되고. (웃음)



시기적으로 1세대에 속하지 않나. 그때 같이 개발했던 분들은 지금 큰 회사에도 있고, 작은 회사 대표로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뭐라고 하나.


나는 1.5세대 정도 되겠지. 1세대한테 깨지면서 개발한. (웃음) ‘너 거기서 뭐 하니’하는 분들도 있고. 김택진 대표는 나올 때 의미있는 일 한다고 축하해 줬다. 김택진 대표한테는 좀 죄송한 마음이 있지.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자유로워보인다. 염색한 머리색, 코토리 베이지라고 들었다.


그래보이나? 염색하고 머리 많이 자란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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