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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는 거예요?

조회수 2018. 4. 27. 18: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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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아이한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지."

몇 해 전 가을, 타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주를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이 어머니와 보냈다. 자취와 유학 기간을 빼면 평생을 함께 살아왔건만, 어머니와의 대화가 하루하루 새로웠다. 소소한 이야기에 코끝이 찡했고, 별것 아닌 농담에도 크게 웃었다. 어머니의 번득이는 통찰에 무릎을 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분명 오래 떨어져 있었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어머니 특유의 ‘설교’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밥도 못 챙겨 먹고 다니면서 뭘 하겠다는 거냐”

“자기 공간도 제대로 정리 못 하면서 학생들에게 뭘 정리해 주겠다는 거냐”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지식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되라는 바람, 돈보다는 관계를 지키라는 충고까지 다양했다. 잔소리에 대한 면역체계 생성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행간에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어미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은 조금 커진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팠던 건 몇 년 새 부쩍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한때 ‘젊은 엄마’ 소리를 들으셨던 당신이지만 세월을 당할 장사가 있을까. 닳아 없어진 무릎 연골 때문에 바닥에서 일어날 때마다 힘겨워 하셨고, 드시는 약의 종류도 제법 늘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뿜어내던 기운도 느껴지질 않았다.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긴 세월 홀로 인생의 풍파를 겪어 온 탓인지 이리저리 다 아물지 못한 마음의 상처 위로 굳은살이 돋았다. 그래서였을까. 저녁 햇살에 쌀을 씻으시다 허리를 펴시던 뒷모습이, 피를 잘 돌게 해야 한다며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손등이 참 쓸쓸해 보였다.

집을 떠나 있던 다섯 해, 나는 응용언어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했다. 언어학이 말 자체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면 응용언어학은 말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둔다. 말과 사회, 말과 교육, 말과 문화, 말과 관계, 말과 정체성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집을 떠나 있던 다섯 해, 나는 응용언어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했다. 언어학이 말 자체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면 응용언어학은 말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둔다. 말과 사회, 말과 교육, 말과 문화, 말과 관계, 말과 정체성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말의 질서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분야인지라 아예 대화를 녹취하는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상대가 대답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는지, 어떤 단어에 강조를 두어 이야기했는지,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한 대목은 어디인지까지 표시한다.

답답할 정도로 꼼꼼한 분석을 요구하는 제스처 연구에서는 아예 새로운 표기법을 개발하고 말소리와 손짓의 싱크sync까지 추적하기도 한다. 말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훈련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대화가 정보를 주고받는 일을 넘어 세계가 만나고 충돌하는 장이자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는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도 나도 변해서였을까? 당신이 나의 특별한 어머니라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 지내 오신 서글픈 세월이 스쳤다. 아이 같은 모습이 무심코 튀어나올 땐 내 마음도 통통 튀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좋은 부모 

그러던 어느 아침이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자녀 교육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출연자들의 말을 흘려듣던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떤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는 거예요?”

어머니는 주저 없이 담담하고도 단호히 답하셨다.

“자기가 아이한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지.”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었다. 나는 좋은 양육의 요소로 다양한 경험이나 훌륭한 교육 따위를 떠올렸다. 함께 여행 다니기, 열심히 책 읽어 주기 같은 일 말이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에게 무엇을 해 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자녀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베풀어야 할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찰하는 양육을 실천해야 한다는, ‘무엇’을 넘어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말씀에 나 자신이 더 좋은 울림통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함께 느꼈던 기쁨과 슬픔, 설렘과 숙연함을 그냥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어머니와 진정 함께 있는 것, 어머니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당신과의 대화를 경청하고, 복기하고, 그 뜻을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다. 수년 간의 훈련을 통해 몸에 밴 방법이었다.

어머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으리라 여겼던 수다 속에서 반짝거리는 순간들과 마주쳤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 오신 어머니가 아니라, 순간순간 웃고 울고 아파하는 어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5년여의 시간이 선사한 마음의 거리 때문이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견뎌 낸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함께 나이 든다는 애틋함에서였을까? 따스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쉬이 차올랐다.

특권과 책무

이내 어머니와의 대화를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몇몇 글은 슬로우뉴스에 연재되어 독자들을 만났다. 놀랍게도 일상을 따라가는 느릿한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과 응원을 보내 주셨다. 나를 통해 어머니를 만나게 된 분들이 생겼고, 개중에는 어머니의 ‘팬’을 자처하는 분까지 나타났다. 내 안의 울림이 또 다른 이들에게 닿아 더 깊은 울림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기록한 지 어언 6년을 향하는 지금, 수백 편의 글이 쌓였다. 어머니와 아들의 ‘모둠일기’로 지난 세월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과 성찰의 경험 속에서 소중한 깨달음 또한 얻었으니, 일상을 나누는 이들에게는 특권과 책무가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서로의 생을 목격할 수 있는 특권, 그리고 그렇게 목격한 삶이 차곡차곡 쌓여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망각하지 않을 책무. 부모라서 또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또 죽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공존의 선물이자 의무 말이다.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릴 뻔한 말들을 모으고 다듬으면서 내 마음도 한 뼘 더 자란 것 같다.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세상을 더디게 배운다. 성장은 크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작아져 다독이는 일이라 믿는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거창한 말보다 오랜 친구의 실없음에서 치유를 얻고, 고통을 마비시키는 유머가 되길 자처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인생과 인생은 일상에서 만난다. 어머니와의 여정이 내게 가르쳐 준 일상의 소중함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18년 봄, 김성우


이 글은 2018년 4월에 출간된 책 [어머니와 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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