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를 바꾼 7살 소녀의 편지

조회수 2017. 7. 5. 09: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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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살이고, 레고를 좋아해요. 하지만.." 레고를 바꾼 7살 소녀의 손편지에 담긴 내용은 뭐였을까.

2014년 1월 어느 날, 레고 본사에 편지가 한 통 날아왔다. 이메일이 아니다. 요즘 받기 어렵다는 손편지였다.

친애하는 레고사에게,

내 이름은 샬롯이에요. 저는 7살이고, 레고를 좋아해요. 하지만 레고에 남자 사람이 많고, 여자 레고는 별로 없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오늘 가게에 갔다가 레고를 봤는데 여자는 핑크, 남자는 파랑으로 돼 있었어요. 여자들은 다 집에 앉아있거나, 바닷가에 가거나, 쇼핑을 하고 직업이 없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모험을 하고, 일하고, 생명을 구하고, 직업도 있고, 상어랑 수영도 했어요. 여자 레고를 더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모험도 하고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오케이?!?

고맙습니다.

샬롯으로부터

일곱 살짜리 샬롯 벤자민의 편지는 SNS를 통해 퍼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 성차별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노출된 어른들은 그걸 몰랐을까? 거기다 레고라면 성평등 지수 상위에 꼽히는 덴마크 기업 아닌가? 화들짝 놀란 레고는 대변인을 통해 재빠르게 마침 여성 전문가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여름 곧바로 여성 과학자 시리즈를 출시했다. 티라노사우루스 뼈대 앞에 확대경을 들고 있는 고생물학자, 천체망원경을 만지고 있는 천문학자, 플라스크를 들고 있는 화학자, 이렇게 세 명의 여성 과학자로 구성된 시리즈였다.

레고의 '여성 과학자' 시리즈

레고에는 아이디어 제안 사이트가 있다. 다음번 레고 시리즈로 개발 됐으면 좋겠다 싶은 아이디어를 올리는 것이다. 아이디어 중 1만 표 이상의 지지를 받은 레고는 한정판으로 제작해 판매한다. 여성 과학자 시리즈는 2014년 8월 출시 일주일 만에 매진됐다.

레고 팬들의 소장 아이템으로 등극한 여성 과학자 시리즈는 엘렌 쿠지만(Ellen Koojiman)이라는 지구화학자가 제안한 것이다. 엘렌은 스웨덴 자연사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여자 과학자의 관점에서 레고 여성 과학자 시리즈가 대체적으로 자신의 제안을 잘 구현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화학자 미니 피규어가 보호장갑을 착용하지 않았고(세상에나!), 화장을 했는데, 화학자는 샘플에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화장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 과학자의 다음 시리즈도 대기 중이다. 샬롯의 바람 중에 “모험을 하면서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분을 반영한 여성 모험가 시리즈다. 이미 1만 표를 모았고 레고에서 제작을 공식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나온 샘플은 한 손에 워키토키를 들고 시베리안 호랑이를 관찰하고 있는 야생 동물학자와, 유적지에서 삽과 붓을 들고 해골을 살피는 고고학자, 나침반과 망치를 들고 특이한 암석구조물을 살피고 있는 지질학자, 이렇게 셋이다.

레고 과학탐험 시리즈.

장난감과 양성평등? 

스웨덴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에 가봤다. 장난감 인형 상자에는 남자아이가 다정한 눈으로 아기 인형을 안고 있었다. 쭉 뻗은 팔보다 큰 총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표적을 겨냥하는 여자아이가 모델인 장난감 총 상자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인형의 집을 갖고 놀거나, 사이 좋게 다림질을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광고도 있다. 

반면에 한국 마트에 가면 ‘남아 완구’라는 코너가 있다. 총, 로봇, 조립식 완구 등이 쌓여있다. 반면 여아용에는 인형과 인형의 집이 가득 쌓여있다. 하지만 어릴 적 나처럼 공룡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스웨덴의 양성평등은 도가 지나쳐 ‘남자아이가 남자다운 놀이를 못 하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곳에 진출하는 것이 자유롭지만 남성의 경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여자 산타는 되지만 남자 요정은 안되는 식이다.

스웨덴 친구 베릿이 네 살배기 딸 아멜리아가 만들었다며 레고 모형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아멜리아의 세상에서는 아기가 탄 유모차를 아빠가 끌고 있었다. 아기가 먹는 젖병도 아빠 옆에 있다. 엄마는 아기 옆에서 헬리콥터를 몰고 있다. 한국 사회라면 그 반대 상황을 예상할 것이다.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네 살짜리 스웨덴 아이의 세상에서 이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웨덴 친구 베릿이 보내준 딸 아멜리아가 만든 레고의 모습. 엄마는 헬기를 몰고, 아빠는 아이를 돌본다.

2016년 6월 출시된 레고 신제품에는, 뒤늦긴 했지만, 휠체어를 탄 피규어가 포함되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아이들의 놀이 속 세상이 현실을 반영했으면 좋겠다. 세상엔 완벽한 존재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다름이 우열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놀이 가운데 모두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2016년 6월, 레고 최초로 출시된 장애인 소년.

난 그래서 바비보다 레고가 더 좋다.


이 글은 필자의 책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B컷(책에 포함되지 않은 원고) 중 하나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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