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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이 수상하다

조회수 2017. 2. 28. 18: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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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감히' 개헌 논의를 주도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개헌 단일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나 싶은 생각이 우선 든다. 물론 개헌파들로서는 겨우 얻은 개헌 동력을 상실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차기 정부 출범 후 개헌을 논의하면 또 정치적 득실 계산에 분주해 개헌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으리라는 우려도 이해한다.

그러나 개헌안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에 있다.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3당은 다 같이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통일, 외교, 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는 구조다(관련 기사). 또한, 대선과 총선 시기를 맞추기 위해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줄이는 안도 거론된다.

1. 국정파탄범의 개헌 주도

사실 개헌 논의의 주체부터 문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엄연히 국정 파탄의 주범이다. 그 국정파탄범들이 개헌을 주장하고 심지어 주도하는 것이다. 솔직히 거기 동참하는 국민의당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논리를 따지기 전에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물론 엄연히 20%대의 지지를 받는 이들 정치세력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그들이 개헌을 주도하고 심지어 대선 전 개헌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문재인 측을 압박하는 것은 가당찮다. 책임을 묻는 건 국민감정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서도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2. 무엇을 위한 분권형 대통령제인가

내각제면 내각제지 분권형 대통령제인 까닭도 모르겠다. 물론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전문가도 많다.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지도자, 국가원수를 둠으로써 일종의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참고 기사).

그러나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과 국회가 뽑는 총리 사이에 권한을 어떻게 분권할 것인가부터 난관이다. 3당의 개헌안이 제시하듯 보통 통일, 외교, 국방 등 외치는 대통령에게, 내치는 총리에게 맡긴다고 하지만, 이는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처럼 패션쇼 세계관광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외교는 외치이자 내치이기도 하다.

가령, FTA는 외교 협상이기도 하지만, 내정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는 안건이기도 하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말은 좋지만 실상 대통령은 상징적 지위에 그치고, 실권은 총리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는다.

출처: 한국 정부, CC BY SA
‘한국-중미 6개국 FTA’를 위해 2016년 10월 12일 방한한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리베라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인 박근혜 정부

사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각제보다 선호하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대부분 핑계고 진심은 ‘국가수반은 우리끼리 뽑을 건데, 껍데기뿐인 대선 투표권은 국민에게 드릴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상 내각제 개헌을 하되, 대통령 직선제를 없앨 경우 발생할 국민적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속 빈 당근을 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3. 내각제는 최선일까

내각제 개헌, 혹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사실상의 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은 정말 최선일까? 많은 정치전문가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이야기하며 내각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박근혜는 그 살아있는 방증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각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명약관화하다. 박근혜가 역시 그 좋은 방증이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이 드러난 지금, 그 국정 농단의 공범이었던 새누리당은 분당이라는 내홍을 겪긴 했으나 여전히 개헌을 주도하며 권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내각제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서 온다. 정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구 새누리당, 즉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개헌 행보는 이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강한 심증을 갖게 한다. 물론 탄핵 사태와 같은 불안정한 사태는 오지 않았겠지만, 더 효과적이고 치밀한 국정 농단을 자행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 혐의가 대두하지 않았을 무렵, 일부에서는 박근혜가 내각제 개헌을 주장할 것이며, 이를 통해 다수당 새누리당의 총리로 영구 집권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파렴치한 행태를 보면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4. ‘차기 대통령 임기는 3년’이라는 정략

총선과 대선의 시기를 맞추기 위한 ‘차기 정부 3년 임기 단축안’도 문제다. 평시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평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정당은 민주당이라는 게 너무 당연시되고 있으니 (비록 파렴치한 이들이지만,) 보수정당 쪽으로도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 민주당 지지자의 분노는 외면해도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차기 대통령을 민주당에서 배출한다 해도 임기가 3년에 불과하다면, 이건 이명박·박근혜 9년을 겪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분노를 임계치 이상으로 폭발시킬 것이다.

2년 만에 레임덕이 올 정부다. 사실상 국정 아젠다를 세팅할 능력이 없고, 개헌용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헌데 사상 최악의 암군이 만든 혼돈 속에 출범한 다음 정부가 그런 약한 정부여도 괜찮은 것일까.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도 중요하지만, 내각제만 출범시킨다고 해서 적폐가 가득한 권력구조를 자동으로 개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5. 선거제도 개편이 우선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도 사실상의 내각제임을 고려하자면, 이를 도입하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다.

대통령 단임제가 문제가 많다지만, 적어도 표의 비례성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장된다. 성인 누구나 1표씩을 갖는다. 1표는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우리의 국가 원수를 선출한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표의 비례성 문제다. 같은 1표의 가치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다. 주로 시골 지역의 표가 가치가 높고, 대도시 지역의 표는 가치가 낮다. 게다가 소선거구제는 전체 표심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40%대의 표를 받고도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10% 남짓한 표를 받았는데 극소수의 의석만 받아드는 경우도 많다.

분권형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국가 원수를 국회가 뽑는다. 한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1표의 가치가 이렇게까지 왜곡되어버리면 곤란하다. 한 사람의 한 표가 거의 동등한 가치를 갖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정말 내각제를 도입할 생각이라면 그동안 늘 폐기되곤 했던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나, 최소한 중대선거구제 도입 정도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선 전 개헌’,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어불성설 

대선 전 개헌은 이런 면에서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감히’ 개헌 논의를 주도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개헌 정국만 보면 마치 문재인이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파탄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민주당 내 개헌파도 입장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공공연히 문재인에게 개헌 입장을 밝히라며 압박하기도 하고, 일부는 대선 전 개헌에 동의한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표결에 들어가면 이들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얘기도 떠돈다.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문재인을 압박하기에 앞서, 난 오히려 그들의 입장이 더 묻고 싶다. 어떤 개헌을 원하는가.

개헌은 개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선거제도를 비롯한 다른 법 장치가 함께 정비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로드맵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가. 개헌이란 칼은 날카롭고도 강력하다. 그만큼 엄밀하게 휘둘러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대선 전 개헌은 정말 그렇게 엄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칼만 휘두르면 그만이라는 듯 행동하는 200명의 망나니를 보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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