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켄 리빙스턴을 꿈꾸다,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 김종민 인터뷰

조회수 2018. 6. 10.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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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ㅍㅍㅅㅅ 지방선거 특집

리(이승환 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 어쩌다가 서울시장에 출마 하셨습니까?


김종민 : 제가 별로 안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정의당을 시민들에게 더 알리기 위해서는 노회찬 의원이나 이정미 대표처럼 인지도 있는 후보가 나서는 게 맞지 않느냐는 논의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원직을 사퇴하고 나가기엔 위험부담이 컸죠.


리 : 의원직을 갖고 있지 않은 유명한 분은 없나요?


김종민 : 당원 중에는 유시민 전 대표도 계시긴 한데 이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그만 두셨으니까. 그 외에는 크게 없죠. 그래서 우리 당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 준비가 되어 있고 시민들에게 당당하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를 고민했죠.


시민들이 매일 정의당엔 노회찬, 심상정, 이정미 밖에 없냐고 물으세요. 이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새로운 인물이 자꾸 나와야죠. 저는 정호진 전 위원장과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됐어요.

인상이 참 좋은 후보다

리 : 경선 과정은 어땠나요.


김종민 : 치열하게 했어요. 정책적인 차이가 다양하게 표출되었거든요.


리 : 어떤 차이가 있었죠?


김종민 : 정호진 후보는 여성이었거든요. 박원순, 안철수, 김문수 같은 좀 올드한 아저씨들하고 붙었을 때 여성후보가 주는 확실한 매력이 있죠.


리 : 정의당에도 여성후보에게 가산점을 주나요?


김종민 : 비례 의원에 대한 상위순번 배치라던가 30%할당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런데 광역 선거는 한 명을 뽑기 때문에 할당 적용이 안돼요. 저는 정의당이 서울 플랜 정

도는 낼 수 있어야 되지 않는가.


예전에 영국 노동당의 켄 리빙스턴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노동당 내에서도 좌파여서 ‘레드 켄’이라고 불렸는데 그 사람이 노동당으로 런던 시장에 당선됐었거든요. 당시 런던에 도시개발, 공해, 주거 문제 등 굉장히 문제가 많았어요.


근데 이 사람이 당선되자마 시민들이 런던 플랜이라고 해서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위원회란 걸 만들어요. 이게 켄 리빙스턴의 정책을 실현하는 위원회이기도 하지만 장기적 도시발전계획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정의당도 그런 식의 적극적 의미의 서울 플랜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준비를 많이 해 왔거든요.

케네스 로버트 “켄” 리빙스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런던 시장 자리를 역임했다.



주민들과 데모하다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정치


리 :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김종민 : 학생 때는 학생운동을 했었어요. 제가 89학번이니까 소위 말하는 386의 가자 끝 세대예요. 학교에 입학했는데 마음에 드는 서클이 있어서 들어가게 됐는데 알고 보니 거기가 운동권 서클이었던 거죠. 거기서 선배들이 이제껏 학교에서 배워 왔던 거랑은 완전 다른 얘기를 하니까 신세계 같았죠. 학생운동을 7년 동안 하다가 군대에 갔는데 거기서 학생운동 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됐어요.


리 : 군대에서요?


김종민 : 네. 어떤 사건과 관련해서 저를 용의자로 보고 사찰을 쭉 해왔던 것 같은데 제대 한 달 남기고 잡아가더라구요. 근데 저랑 그 사건은 관계가 없었거든요. 그냥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8개월을 받은 거예요. 거기서 7개월을 있다가 집행유예 받고 풀려나서 바로 제대를 했어요.


리 : 군대랑 구치소랑 비교하면 어떻던가요.


김종민 : 저는 영창에 오 개월 있었는데 거긴 인권의 사각지대죠. 얼차려도 심하고 하루 종일 각 잡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렇게 집행유예 받고 나왔는데 원래 저는 학생운동 하다가 노동운동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근데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학교로 돌아가 복학을 하고 졸업한 뒤에 사회에 나오게 되었죠. 그때가 한참 386 세대들이 민주당으로 들어갈 때에요. 97년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까지. 그런데 그 반대편에서는 지역에서 풀뿌리 사회운동을 해보자는 생각들도 있었거든요. 저는 그 길이 옳다 싶어서 사회운동 영역으로 들어가게 됐죠.


리 : 취업할 생각은 안하셨어요?


김종민 :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무조건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리 : 어떤 운동을 하셨어요?


김종민 : 당시 용산에 미군기지 때문에 고통 받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이 운동을 무조건 주한미군철수, 미군기지반대 이렇게 구호 외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주민들 속에서 함께 해보자 싶었어요. 실제로 동두천이나 인천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용산 지역으로 들어갔죠. 근데 얼마 안 있어서 용산미군기지 이번 발표가 나더라구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나 싶었는데 그 발표가 나니까 용산에 대규모 개발붐이 인 거예요. 용산 오가동이 제일 먼저 개발이 되었는데 그 동네에 계셨던 분들이 세입자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리 : 일하셨던 단체 이름이 뭐에요?


김종민 : 한강시민문화센터. 제가 학생 때 문화예술 운동을 했었거든요. 아무튼 제가 그 분들을 찾아갔는데 주민 200명이 공원에 모여서 집회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구요. 근데 그 분들은 집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잖아요. 저한테 그걸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엠프도 갖다 놓고 노래도 가르치고 사회도 보고 발언도 하고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만들고 그랬어요.


근데 주민들이 갑자기 행진을 하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용역 사무실 앞으로 가서 용역 깡패들 다 나오라고, 왜 우리 괴롭히냐고 막 그러더라구요. 용역 깡패들이 나왔다가 기세에 눌려 쑥 들어갔죠. 세입자 분들이 그때 승리의 기쁨을 느끼셨던 거죠. 몇몇 주민들은 저한테 막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 같다고 그러기도 했어요.


그런데 세입자 분 중 한 분께서 곧 동네 구의원 재보궐 선거가 곧 있으니까 거길 나가보라는 거예요.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누군가 세입자들의 억울함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좋은 기회라고 나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뜻하지 않게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리 : 당선은 되셨나요?


김종민 : 떨어졌죠. 12%인가 받아서 4등 했어요.


리 : 떨어지고 나니까 기분이 어떻던가요. 돈은 많이 안 날리셨어요?


김종민 : 절반 돌려받아서 거의 날린 돈은 없어요. 작은 선거라서 빚질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러던 사이 민주노동당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정치와 선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니까 민주노동당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때부터 민주노동당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리 : 그런데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한다는 건 당선가능성을 거의 포기하는 것과 같지 않았나요?


김종민 : 당시로는 그랬죠. 제가 출마한 게 2004년도였는데 당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석을 얻었을 때예요. 총선이 4월이고 6월에 재보궐 선거가 있었으니까 저에겐 행운이었죠.

출처: 조선일보
17대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민노당 후보자들의 모습. 활짝 웃고 있는 데에서 두자릿수 의석 확보의 기쁨을 읽을 수 있다(…)

리 : 아까 무소속으로 나갔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김종민 : 당시엔 정당공천이 없어서 모두 다 무소속이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간 거죠.


리 :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김종민 : 2004년도에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하고 나서 중앙당에서 인력을 많이 뽑았어요. 그때 당에 가서 조직국장 일을 했죠. 동시에 민생본부 일을 같이 했어요. 당시 뉴타운 재개발 광풍이 불면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대책본부를 만들었어요. 그런 일을 민주노동당 민생본부에서 함께 했어요.


리 : 당시 재개발 때문에 꽤 시끄러웠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김종민 : 너무너무 많죠.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을 주지 않기 위해 중간에 내쫓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법에 보장되어 있는 것도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 하는 조합도 너무 많았어요. 오죽했으면 ‘뉴타운 재개발 세입자 권리 찾기 운동’이라는 말을 썼을 정도로 있는 권리도 못 누렸어요. 그래서 저희가 책자 만들어서 뿌리고 하면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당시 뉴타운 재개발 관련된 소식을 다루는 언론사에서도 다 저희한테 와서 인터뷰 따로 그랬어요.



민주당에겐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 ‘기득권’이 있다


리 : 그렇게 잘나가셨을 때 얼른 민주당으로 가셨어야죠.


김종민 : ...

리수령을 바라보는 김종민 후보의 표정…

리 : 그럼 지금쯤 시의원이나 구의원 쯤은 하고 계실 텐데.


김종민 : 저는 민주당에 대해 두 가지가 걸리는데 하나는 김대중 때부터 계속 수혈론을 주장했어요. 새로운 피가 들어와서 민주당을 개혁하라는 건데 사실 그렇게 새 피를 받아서 민주당이 변한 게 있나요? 거꾸로 그 사람들이 정치적인 혁신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죠.


사실 민주당이 그 전에 무상급식이나 세입자 문제처럼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많은 정책들을 반영하긴 했어요. 하지만 결정적인 데서 막혀요. 가령 전월세 상한제 같은 건 안 되잖아요. 계약갱신청구권도 없어요. 민주당은 이런 걸 마음만 먹으면 통과시킬 수 있는데도 아무런 의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 거죠.


리 : 사유재산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김종민 : 아닙니다. 이미 헌법에도 일정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유재산을 제한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그런데 민주당은 맨날 자유한국당 핑계 대면서 안 해요. 제가 보기엔 민주당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 기득권이 있다는 거예요. 재벌 기업들 납품 단가 후려치기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젊은 피가 들어가도 그건 못 건드려요.


리 : 원래 현실이라는 건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거 아닌가요?


김종민 :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이 OECD 10위권이에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선진국인데 시민의 삶은 OECD 최하위잖아요. 우리는 왜 유럽의 도시처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없는가. 그래서 유럽 복지국가의 도시들을 많이 연구해봤는데 거기는 세입자가 이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전월세 상한제는 기본이에요. 그 나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가요? 거기도 자본주의지만 이런 제도를 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상을 못하는 거예요. 2년마다 이사 가야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런 걸 깨는 게 중요한데 민주당은 현실에서 이걸 못 건드린다는 거죠.


리 : 2007년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섰는데 그땐 어디로 가셨나요?


김종민 : 저는 민주노동당에 남았습니다.


리 : 왜 안 가셨어요?


김종민 : 이게 종북 논쟁과 패권 논쟁이 같이 있었거든요. 당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가 출마해서 경선을 펼쳤는데 권영길 말고 새로운 사람이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열망이 당원들 사이에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 가장 큰 정치세력이 권영길을 지지함으로써 당내에 많은 분들이 실망하셨죠. 그때 저는 설득하고 중재하는 입장이었어요.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해 보자. 분열은 안 된다. 저는 당이 깨져서는 안 된다고 봤거든요. 물론 가치가 달라서 깨지는 건 괜찮은데 당 내의 패권주의 때문에 깨져서는 곤란한 거죠.


하지만 이미 믿음이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분당을 막을 수가 없었죠. 저는 그날 새벽까지 눈이 퉁퉁 부울 정도로 울었어요. 하지만 저는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어요. 결국 다시 분당되긴 했지만 통합진보당에서 다시 만나긴 했죠.

통합 당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jpg

리 : 다른 군소진보정당들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김종민 : 정당이 많이 있는 건 정의당이 추구하는 바예요. 저희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당이 존재하는 다당제를 추구하거든요. 이를 위해 선거 제도 개편도 요구하고 있구요. 근데 현재 진보정치의 구조는 그 전의 진보정치가 만들어놓은 후과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죠. 적어도 녹색당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분열과 분당의 과정에서 발생한 거니까요. 하지만 이건 앞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통해 차분하게 정리되어가야 할 문제이지 인위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리 : 통합진보당 분당 때는 어떤 생각이셨어요?


김종민 : 사실 통합진보당은 가장 왼쪽에서부터 진보가 포용할 수 있는 가장 오른쪽까지 뭉친 정당이었거든요. 저는 처음에 국민참여당 분들과 함께 하는 건 좀 벅차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왕 결정된 거 함께 잘해보자 싶었는데 결국 그 안에서 또 패권이 나타나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법이 나타났죠. 그때 중앙위원회에서 전체 비례대표 총사퇴 발의를 했어요. 그게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안을 딱 한 정치세력만 못 받으면서 분열의 시초가 되었죠.


당시 강기갑 대표가 저에게 위임을 해서 제가 몇 가지 안을 제시하고 그랬어요. 결론적으로는 그 분들이 받지 않음으로써 혁신안이 좌초되고 당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죠. 그때 이후로 국민들이 진보정치를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이후로 한 일 년 가까이 정치를 관뒀어요.


리 : 그땐 뭐하셨어요?


김종민 : 저는 정치를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사회운동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죠.


리 : 다른 멀쩡한 생활을 하실 생각은 없으셨어요?


김종민 :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리 : 결혼은 하셨어요?


김종민 : 네, 했습니다.


리 : 언제 하셨어요?


김종민 : 2000년도에.


리 : 사모님께선 뭐하세요?


김종민 : 그냥 일하는 일반 노동자죠.


리 : 그 많은 분열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길을 걷고 계신 이유는 뭘까요?


김종민 : 그때는 진보정의당이란 이름이었는데 진보정의당마저 무너지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진보정치의 가능성은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리 : 앞으로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뭘까요?


김종민 : 진보정치의 명맥을 잇는 진보정치의 대표 주자로서 충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나가야겠죠. 진보의 대표정당으로서의 자기역할을 해야죠. 지금은 몇 명의 스타플레이어들의 당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저와 같은 정치 신인들이 성공적인 데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게 정의당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니까요.


저는 그래서 당의 지지율은 중요하지만 광역도지사 후보의 경우 민주당 쏠림 현상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다만 우리 당에도 이런 차세대 정치인이 있다는 걸 시민들께 보여드릴 수 있다면 성공인거죠.



2010년부터 시작된 서울시당 위원장 생활


리 : 지난 번에 나오신 분이 김종철인가요?


김종민 : 2010년 진보신당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이었어요. 그 전이 김종철이었죠.


리 : 그 분은 뭐 하세요?


김종민 : 지금은 노회찬 대표 비서실장에요.

현재 정의당 동작구 공동 위원장을 위임하고 있다.

리 : 근데 왜 선거에 안 나오죠? 선거에 계속 나와야 사람들이 인지를 하잖아요.


김종민 : 진보신당 가면서 동작 쪽에서 지역정치를 하긴 했어요.


리 : 이제까지 주거문제 쪽으로 활동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그 외엔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김종민 : 세입자 문제 말고는 노동 쪽이죠. 제가 2010년부터 서울시당 위원장을 했어요. 그때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에요.


그때 비정규 노동자들이 단식, 고공농성 이런 거 많이 했거든요. 이런 투쟁들 지지하는 일을 했고 또 한 편에서는 무상급식으로 대변되는 무상복지 운동을 했는데 그때 오세훈 시장이 이걸 거부하면서 주민투표로 붙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였죠. 그때 이 투표에 참여해서 부결시킬거냐 아니면 투표율을 떨어뜨려 무효화 시킬거냐로 논쟁을 엄청 했는데 처음엔 다수가 반대파였어요. 그걸 나중에 투표거부운동으로 설득해낸 거죠.


이후 박원순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왔을 때 저희와 민주당에서 정책 협약에 의한 단일화를 시도했어요. 그래서 박원순 시장이 된 이후 저희 요구대로 노동복지센터 만들고 노조 활동하다가 쫓겨난 공공기관 노동자들 복직시켰거든요. 노동이사제도 도입했구요. 이런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출처: YTN
출처: tbs
서울노동권익센터 개소식에서 발언중인 박원순 현 서울시장 후보.

리 : 노동이사제는 잘 되고 있나요?


김종민 : 서울시에서 아주 모범적으로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박원순 시장님이 노동에 관심이 많으세요. 원래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은 아니었는데 민주노동당이 서울시정에 있어 노동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리 : 서울시만의 특수한 노동문제 같은 게 있을까요?


김종민 : 서울은 제조업 중심이 아니라 서비스업 중심이거든요. 서비스업, IT 영역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또 하나가 알바를 하는 청년 노동자들이 많죠.


리 : 그렇게 보면 굉장히 노동의 격차가 큰 도시네요.


김종민 : 그렇죠. 그래서 서울은 굉장히 부자인데 서울의 노동자들은 열악해요. 가령 청소 같은 부분은 담당하는 인력이 너무 적어요. 효율화를 중시하다보니 노동 환경이 열악해졌죠. 아직 서울시에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어요.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노동의 질이 낮은 이유는 이렇게 인력이 적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민간위탁의 문제가 있어요. 이 두 가지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돼요. 이게 사회서비스 공단이라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도 들고 나왔던 건데 공공 서비스 분야의 인력을 거기서 채용을 하고 파견을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리 : 노동을 외주화 시키는 것에 대한 대책은 뭐가 있을까요?


김종민 : 가령 A라는 기업이 있다고 하면 A라는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원칙적으로 A라는 회사의 직원이 돼야죠.


리 : 저도 작지만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가령 어떤 사람이 천년만년 이 회사에 맞는 업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죠. 그럼 역으로 이 사람이 다른 곳으로 빠르게 옮겨갈 수 있는 시스템도 중요한 것 같아요.


김종민 : 그래서 등장한 게 노동의 유연화라는 말인데 거꾸로 그런 것 때문에 더 많은 실업이 생기고 외주용역의 문제가 만연화 된 것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A라는 기업은 돈을 버는데 이 기업이 책임져야 할 노동자들의 처우나 복지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이런 영역의 변화를 선도해나가는 게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서울시에서 이제까지 쓰고 있었던 외주파견노동에 대해서는 무기계약 단계를 거쳐 정규직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도시 숲을 조성해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자


리 : 진보정당에서 주로 내거는 게 환경하고 여성인데 그 쪽으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김종민 : 다들 미세먼지 얘기를 하는데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없앨 생각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발생한 미세먼지를 어떻게 처리할까만 생각하는 거죠. 공기청정기 돌리면 전기가 드는데 그게 화석연료 때서 나온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공기청정기를 틀어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거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미 본지에서도 여러 번 지적당한 적 있는 미세먼지의 또 다른 주범 도로 교통. 저렇게 파란 하늘은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다는 게 함정(…)

리 : 그럼 원자력이 가장 친환경적인 거 아닙니까.


김종민 : 서울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40%는 도로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차량을 줄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요.


리 :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김종민 : 서울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죠. 서울에 등록차량이 300만대에요. 대중교통 인프라를 잘 구축해서 이 차량들을 줄여야 해요.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운행량이 줄고 있는 추세에요. 대중교통이 좋아지면 실제로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죠. 아까 말한 켄 리빙스턴이 혼잡통행료를 징수했거든요. 그때 런던이 스모그로 엄청 고생할 때에요. 거기에 대한 대책으로 혼잡통행료를 만들었고 아직까지 하고 있어요.


대신 아이들이나 장애인 이동차량, 중소상인들의 생계형 차량은 혼잡통행료를 면제해줘야겠죠. 그리고 도시 숲도 조성해야 해요. 지금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흡착하는 게 숲이거든요.


리 : 서울의 녹지율이 낮은 건 아니잖아요?


김종민 : 아니요. 엄청 낮아요. 미세먼지는 바람이 안 불면 엄청 심각해지는데 도시에 바람을 불게 하는 게 바로 도시 숲이에요.


핵심은 도시 연결이에요. 북악산이 있다고 치면 거기서부터 도시 숲을 연결시켜서 바람이 미세먼지를 쓸어가게 하는 거죠. 자동차를 줄여서 남는 도로를 숲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게 개발이나 성장의 시선에서 보면 도로가 없어지는 건 나쁜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방식으론 안 된다고 봐요. 이번에 마음 같아서는 스몰 시티를 내걸고 싶었어요. 저는 서울도 다섯 개의 권역으로 쪼개서 권한을 분산시켜가야 한다고 봐요. 미세먼지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데 공기청정기 돌리는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또 하나 중요한 게 한강이에요. 김문수, 안철수는 한강 수중보 열자는 거예요. 저는 김문수가 그 공약 낸 거보고 깜짝 놀랐어요. 박원순 후보만 유일하게 얘기를 잘 안하고 있어요. 만약 신곡 수중보를 열게 되면 물이 흐르잖아요. 그럼 지금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게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녹지공간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사람들이 치맥 먹고 쉬는 공간이라면 거기가 녹지 공간으로 바뀌고 생태 공간이 되는 거죠. 이게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한강을 잘 누릴 수 있는 거죠. 미세먼지 입장에서 봐도 거기가 허파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출처: 채널A
신곡 수중보. 서울시 용역 결과 한강 수위 조절을 위해 설치된 이 수중보를 철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리 :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소수자 정책은 어떤가요?


김종민 : 저희는 여성 분야에 대해서는 확실히 차별화 된 공약을 내고 있어요. 사회적으론 여성 문제가 매우 뜨거운 데 정치권에선 받질 못하고 있거든요. 몰카 문제가 심각한데 여기에 대한 대책이 없어요. 저는 서울시가 행정력을 통해서 강력한 규제를 해낼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렇게 몰카 제로 서울을 만들 거예요.


리 :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까요?


김종민 : 과학적 시스템으로 생각하면 답이 없죠. 기술 발전을 막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행정력을 통해서 규제가 가능한 부분도 많아요. 오프라인 판매는 그런 식으로 잡는다 해도 온라인 판매가 남잖아요. 이건 국가 차원에서 규제해야죠. 제로는 불가능하더라도 몰카를 용납하는 사회 분위기는 바꿔야죠.


그리고 어떤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그걸 고발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도울 수 있는 법률지원센터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성별임금격차가 65%예요. 이게 경력단절의 문제와 진입장벽의 문제가 동시에 있는데 적어도 지자체에서 수주하는 민간기관은 임극 격차를 공시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이미 정의당은 몰카 범죄에 대한 논평도 낸 적 있다.

리 : 연봉을 그렇게 공개할 수 있나요?


김종민 : 공공기관은 돼요. 서울시, 서울시 산하기관 다 공개를 합니다. 그건 어려운 게 아닌데 민간에 적용하는 게 힘들죠. 그래서 수주기업의 경우 그걸 공개하면 어드밴티지를 주는 제도가 필요해요. 그러면 민간까지 여파를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탈시설’이 중요해요. 사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라든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문제 같은 것들은 부족하지만 해 왔어요.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도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한다는 거죠.


경남이 굉장히 모범적 사례예요. 거기는 공무원들이 1박2일 동안 발달장애인들하고 함께 지내요.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실태를 알게 된 거죠. 이건 부모가 담당할 영역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싶어서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저는 그걸 서울에도 적용하자는 거죠.


리 : 이번에 사실 당선권이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인데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해나가고 싶으세요?


김종민 : 세입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는 변함이 없을 거예요. 저는 제가 하는 정치가 견인차 같은 거라고 봐요. 저는 학생운동을 한 인텔리잖아요.


리 : 인텔리라고 하기엔 현장 활동을 너무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김종민 : 저는 세입자 분들이 직접 정치로 뛰어 들어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보정당은 그 분들의 활동 공간이 되어줘야 하구요. 그분들이 뛰어들 수 있도록 계속 견인하는 게 중요하죠. 저는 이번에 TV 토론을 통해 시민들께 일정한 존재감은 알린 것 같아요. 그 데뷔가 좀 어려웠어요. 제가 갖고 있는 비전을 보여주기보다 다른 후보와의 싸움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의당이 갖고 있는 서울 플랜을 이번에 1차로 완성을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서울시 비례대표 의원이 당선될 텐데 그 한 명의 의원을 통해 그 플랜을 관철시켜보려고 해요.


리 : 박원순 시장에 대해 꽤 우호적이신 것 같은데. 혹시 의견을 주고받을 창구 같은 건 따로 있으신가요?


김종민 : 지금은 없어요. 옛날에는 희망시정운영위원회란 게 있어서 좀 했는데 이번 선거엔 워낙 민주당 세가 강해서 그런 걸 할 것 같진 않아요. 사실 정의당의 고민을 한 명의 시의원을 통해 관철시키거나 반영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선거가 끝나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 되면 저희 당 차원에서 서울시정의 파트너십을 만들자고 제안할 거예요. 지금은 그게 없어요. 그냥 만나서 좋은 얘기 나누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걸 정례협의화 해서 제도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볼 생각이에요. 이걸 통해서 정의당이 갖고 있는 서울 플랜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리 : 노동, 환경, 세입자 등의 키워드가 나왔는데.


김종민 : 인권도 있죠.


리 : 인권이라고 하면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김종민 : 박원순 시장이 전진 기어를 넣은 것도 있지만 중립 기어를 넣은 곳도 있고 후진 기어를 넣은 곳도 있어요. 가장 결정적인 후진 기어가 인권이에요. 서울인권헌장을 박원순 시장이 폐기해버렸죠.


리 : 저는 정치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만.


김종민 : 현실 한국 사회의 인권문제는 성소수자 혐오로 집중되어 있고 그건 세력화 되어 있단 말이에요. 가령 동성혼 합법화의 경우는 치열한 논쟁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인권헌장 발포하는 건 그렇지 않거든요. 일반적인 인권의 개념인 건데 이걸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고 거부한 거죠. 그런데 존재는 합의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혐오세력이 반대한다고 안하면 세계인권선언은 어떻게 만들겠어요. 서울시가 그렇게 하면서 다른 지자체에서 인권조례 폐기로 이어졌거든요. 지난 토론 때는 이걸 호소하듯 이야기했지만 사실 얼굴 붉히면서 싸울 문제죠.


리 : 결국 진보정당이 얼마나 힘을 쥐게 되느냐 문제인데 혹시 문재인 대통령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종민 : 그렇죠. 잘 하시죠. 그런데 이번 최저임금제 때문에 실망 많이 했어요. 제가 청와대에서 거부권 행사해달라는 기자회견도 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평화 문제에 대해선 훌륭하죠.

리 :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고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면서 진보정당이 더 쪼그라드는 느낌도 있는데.


김종민 : 지금은 대통령의 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같이 가지만 그게 분리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게 저는 민생 영역이라고 보는데 최저임금 문제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시킨 문제도 상당히 큰 문제예요. 민주당 의원이 20명이 찬성한 거잖아요. 지금 국민들 표심은 확실히 대통령을 지켜주자 같아요. 근데 이게 역으로 현재 민주당이 이 지지율에 취해서 민생파트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러면 저희 진보정당의 공간이 생길 거라고 봐요.


시민들 중에 정의당 같은 비판견제세력을 키워야 민생을 지킬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만약 민주당이 정의당과 민생 분야에서 경쟁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기겠죠. 또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정의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만약 이번에 자유한국당과 싸워볼 수 있을 만큼 결과가 나오면 앞으로 크게 달라질 거라고 봐요. 포인트는 정의당이 두 자리수 지지율을 얻느냐에 있는 거 같아요.


리 : 민주노동당 때 잠깐이지만 두 자리 지지율이 나왔던 것 같은데.


김종민 : 근데 망했죠. 하지만 정의당은 안 망할 겁니다.


리 : 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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