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마케팅, 브랜딩은 막 대단히 멋진 걸까?

조회수 2018. 5. 23. 16: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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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필요한 건 비용, 시간, 일머리, 그리고 '사람'

오늘 얘기는 다소 불편한 얘기입니다. 비판적이고 불편한 데다 불만 가득한 말투가 다수 있습니다.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니 혹시라도 마브기(마케팅, 브랜딩, 기획)가 너무도 멋있고 환상적이어서 우리 뫄뫄 욕하는 건 절대 못 들어줄 마브기 팬덤이시라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마케터, 브랜딩하는 사람(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BM이라고 해야 하나…?), 기획자가 주변에 많더라고요. 또는 그것을 꿈꾸는 취준생, 대학생, 신입사원, 이직 희망자가 우글우글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케팅해요’라는 말만 들어도 막 그 사람의 조언을 들어야 할 것 같고 너무 멋지다는 겁니다. 또는 나는 디지털마케팅학과를 나왔으니 벌써 마케터라고 하더라고요. 사례와 이유를 접어두고서라도 확실히 마케팅, 브랜딩, 기획은 그 단어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있긴 한가 봅니다. 잘 모르겠고 어렵고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이죠.

뭔가 멋진 느낌적인 느낌

단어는 잘못이 없습니다. 애당초 그렇게 태어난 단어고 마케팅이 마케팅이지 더 뭘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가만 보니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단어들에는 항상 거품과 허풍이 끼기 마련입니다. 사짜가 판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말장난이 되기도 하죠. 그중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3가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1. 입만 졸라 산 부류
  2. 내 경험이 짱인 부류
  3. 뭐만 하면 강의 나가는 부류

이런 분들은 주로 사내 상급자거나, 컨설팅하러 오신 외부인력이거나, 그냥 강사거나, 자문위원이거나, 꼰대 투자자거나, 무슨 대표님, 내지는 레퍼런스 좋은 지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우선 기획과 마케팅과 브랜딩이 어떤 건지 크게 정리해보고 위 부류의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기획, 마케팅, 브랜딩은 뭘까? 


기획/마케팅/브랜딩이 뭔지 일단 간략하게 제 의견을 얘기해보자면 이렇습니다. 


기획자


기획은 논리를 구축하는 겁니다. 문제 발견과 해결, 과정 등등 뭐 여러 정의가 있지만 어쨌든 궁극적으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미래의 불확실한 어떤 것에 논리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텍스트든 그림이든 피피티든 바디랭귀지든 외계어든… 어떤 수단을 써서든 모두가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논리 구조와 그림을 그려냅니다.


마케터


마케터는 설계의 역할입니다. 고객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친구를 데려오고 구매하고 환불하고 불평하고 해결하고 가입하고 탈퇴하는… 모오오오든 행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길을 설계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회성 폭탄설치 전문가가 아닙니다. 한 번 빵 퍼뜨리고 뒤에 숨어서 나 이거 잘했지?!?! 라고 평생 우려먹는 그런 게 마케팅이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당신이 없어도 굴러가게 만드는 겁니다.


브랜딩


브랜딩은 사실 모르겠습니다. 전 브랜딩 전문가도 아니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어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브랜딩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패시브 성향의 리소스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과 보이는 것, 회사 내부의 문화 등 내외의 수많은 요소가 만들어내는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가이드’ 역할 같긴 합니다.


요소가 많다는 것은 각각의 것들이 다양한 방향성을 지닌다는 얘기. 당연히 난장판이 될 위험이 높습니다. 때문에 일정한 톤과 규칙을 설정해 일괄적인 스토리와 가이드를 제시하고 지키는 일종의 ‘내규’와 같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


정답이 아니겠죠 당연히. 단순히 제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정의가 어쨌든 간에 기획자, 마케터, 브랜딩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비용, 시간, 일머리입니다. 통찰력, 논리력, 소통능력 뭐 지겹게 얘기하긴 하는데… 역으로 말하면 해당 기획과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전략의 실패가 ‘니들이 멍청해서 그런 거야’라고 책임 전가하는 느낌 아닌가요? 


회의실에서 전략이 멋들어지게 나오는 건 사실 첫 단추에 불과합니다. 그런 전략으로 일이 다 될 것 같았으면 똑똑한 양반들만 모여있다는 국회에서 그런 법안들이 나오지 않겠죠. 실제 일하는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통찰력 얘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으면… 너무 웃기잖아요 이거. 너무 많은 강의장에서 인사이트 인사이트만 외치고 있더라고요.


물론 내부의 문제도 있어요. 기획하고 싶다, 행사하고 싶다, 브랜딩 하자, 해놓고 전체예산은 200만 원 툭… 내일까지 만들어. 그것도 이제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이게 지금 진짜 기획과 마케팅, 브랜딩에 관심 있고 의욕 있는 사람들의 애티튜드인가요? 물론 회사가 돈 쓰고 사람 쓰는 것에 민감하고 어려운 건 잘 압니다. 적어도 그런 상황이라면 실무를 도와주던가, 적어도 방해를 하질 말던가 아니면 생색을 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얘기할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제삼자든 내부인원이든 비용/시간/일머리(개인차)라는 요소를 제쳐두고 우주를 항해하는 추상적인 단어들로 무장해선 실무자의 고민을 식은 게살죽 정도로 만들어버리곤 하더라고요. 매년 같은 소개서를 계속 만들고, 맥락도 뭣도 없는 페이스북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오고, 스터디와 회의와 도서구매는 끝도 없지만 일하는 사람의 환경과 업무체계는 1도 바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출처: 삼분의일
문서를 위한 문서…

마브기는 물론 통찰력과 구성 능력, 스토리텔링 능력 뭐 그런 것들이 있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실무자를 식은 게살죽으로 만드는 3가지 부류


1. 입만 졸라 산 부류


일을 헛돌게 만듭니다. 그들의 지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브랜드가 몇 년 전에 어떤 기원을 통해 만들어졌고 어떤 전략적 이론이 있고, 소비자 심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심리 법칙을 읊어가며 브랜드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축합니다. 구글, 아마존, b8ta, 로하코, 애플 등 유수 기업의 레퍼런스를 들며 끊임없이 ‘예를 들면, 예를 들면…’ 하는데…


그래서 그 브랜딩전략을 200만 원으로 어떻게 하는데요? 단어가 추상적이고 정의가 많아질수록 종교의 종파처럼 각자 교리를 주장하고 외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해석과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각 종파를 수호하고 따르는 추종자들도 있고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내가 맞다 니가 틀리다 어쩐다… 그런 식의 에너지 소모가 소위 브랜드 전문가라는 분들 사이에서 꽤 있더라고요.


고상하게 댓글로 싸우시거나 뒷담들을 까시는데 그래서 구글 말고 우리 회사 브랜딩 어떻게 해줄 거냐고요. 지금 실무자 2명 있고, 다음 달에 한 명 퇴사해요. 1명 남는데 전 3분기 업무가 폭풍이에요. 대표님은 이번 시리즈B 투자받느라 뛰어다니고 디자이너는 IR 만드느라 바빠요. 이거 어떡하냐고요.


2. 내 경험이 짱인 부류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대기업에서 브랜딩/마케팅/프로젝트 기획해서 결과를 냈다는 건 확실히 굉장한 내공과 레퍼런스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제로베이스를 그럴싸한 네임드 브랜드로 만든 것도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놀라운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멋진 사람이라는 증거일 뿐이지 ‘이번에도 똑같이 잘할 수 있다’의 근거도, 또는 상대를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3. 뭐만 하면 강의 나가는 부류


강의 다니느라 정신없습니다. 일 안 하세요?

일은여?

지금 하는 걸 잘하세요


주변에 이제 갓 취업 준비생이 된 분이나 이직자 중에서 부쩍 참 요즘 마케터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업이 많아지고 그만큼 중요도가 높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도 겁나 많습니다. 브랜드 전문가님도 셀 수 없이 많아져서 우리나라는 막강한 브랜드 기획력을 지닌 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많아지든 말든 솔직히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위클리에서도 그렇고 이전 매거진에서도 브랜드 관련해서 끊임없이 했던 말은… 결국 ‘지금 하는 걸 잘하세요’니까요. 마치 기획/마케팅/브랜딩만 잘하면 회사가 완전 대박 날 것 같이들 얘기하는데, 얘네들은 로또가 아닙니다. 자기계발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요. 말장난으로 멋짐을 포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시스템과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죠. 우리가 소위 지질하다고 여기는 돈 문제, 일 문제, 계약서 등등부터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해선 말의 거품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경영자 입장이라면 예산 늘려주고 시간 넉넉히 주고 사람 뽑아주세요. 지금은 그렇게 많은 비용을 쓸 수 없다면 일도 거기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 거죠. 100만 원을 주고 1,000만 원어치의 아웃풋을 강요하면 안 되는 거예요. 쓸데없는 일 좀 쳐내고 필요한 장비도 잘 챙겨주고, 뭔가 계약을 했으면 지키고, 맡겼으면 믿으세요. 그리고 브랜드 가이드에 이렇게 쓰라고 했으면 잘 지켜서 쓰셔야 할 것 같아요.


실무자 입장이라면 기획할 때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쓰지 말고, 잘 나가는 카드뉴스 베껴서 대강 만드는 거 아니고, 굿즈 샘플은 귀찮더라도 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고르는 바쁨과 고민이 필요해요. 자기 과거 레퍼런스만 믿지 말고 신중하고 디테일하게 일하는 거예요. 책상 앞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 입장이라면 상대가 지불한 비용만큼 시간과 노고를 줄여주세요.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어드밴티지를 가져다주셔야죠. 팔짱 끼고 손가락으로 이거저거 하라고 지시만 하는 게 전문가는 아닐 거예요.

마브기는 개바빠야 합니다

무엇보다 발이 바쁘고 몸이 뛰어다녀야 하는 노가다 3대 직종이 마브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건 일이에요. 이상하게 자꾸 브랜딩 이런 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것들은 분명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지만(모든 일이 다 그렇듯), 그렇게 ‘멋지기만 한’ 일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우리가 멋지다고 외치는 만큼 마케팅/브랜딩/기획에 비용과 시간, 노력과 관심을 들이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혹시 그저 말로 잘 포장된 채 사전적 정의로만 빛나고 있는 환상을 동경하고만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원문: 애프터모멘트 크리에이티브 랩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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