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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없는 정의로운 서울시, 모두 행복한 서울시를 만들 사람 권수정

조회수 2018. 5. 23. 14: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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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방선거 특집: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 권수정 인터뷰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원래 작은 동네일수록 한 자리를 쥐기 위한 싸움이 어마어마한 법인데요. 어떻게 1번 픽을 쥐게 된 겁니까?


권수정: … 미모? 농담이에요. 진짜 농담이에요.

미모로 뽑혔습니다(농담 주의)

리: 아니… 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권수정: 누가 저한테 그러면 저는 진짜 화냈어요. 제가 1등으로 뽑힌 건 아마 시대정신과 맞아서가 아닐까요? 노동자 출신이고, 여성의 정체성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노동자로서 현장에 발 딛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죠. 서울시 권리당원들이 뽑아주신 건데, 득표율이 75% 정도 나왔어요.

75% 득표라는 압도적인 결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서 계속해서 땅에서 싸웠다 


리: 금호 아시아나에서 일하셨어요. 아시아나도 지금 말이 많은 곳인데, 회사에서 불이익받거나 한 건 없었나요?


권수정: 글쎄요. 생각해보면 2002년도에 진급하고 지금까지 진급을 못했네요.


리: 진급은 꼭 시켜줘야 되는 걸까요? 이른바 연공서열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있는데요.


권수정: 그것도 없애려고 노력했죠. 노동자들을 나누는 편한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따라야 하느냐는 문제와 별개로,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제가 열심히 일했고 데이터로도 인정받을 만한 상황인데 진급을 못 한다는 데 대해선 문제 제기를 해야죠.


리: 1995년에 입사하셨어요. 그때부터 좌빨의 기운을 강하게 풍기셨나요?


권수정: 고등학교가 청주대 앞이었는데, 그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어요. 91학번이거든요. 매일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싸우는 모습들을 많이 봤죠. 대학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한번도 같이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출처: 중앙일보
그런데 정작 본인 당 색깔이 제일 빨갛다(…)

리: 대학교 들어가서도 그런 거에는 안 엮이려고 하신 거고요? 


권수정: 도대체 왜 저러고 사는지도 몰랐어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모태 신앙이고, 아버지는 경찰이셨기도 했고요. 바로 졸업하고 취업했어요. 그 시절에는 휴학도 드물고, 취업도 많이 어렵지 않았고요. 경쟁률은 있었지만 그래도 시험 보면 많이 어렵지는 않게 들어가는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리: 그래도 나름 인기직종이지 않았나요?


권수정: 그랬죠. 저도 약 150:1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어요. 기내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일하지만, 휴일엔 온전히 자기 시간을 갖는다는 게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리: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이었네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한 건가요?


권수정: 저희가 기내에서 면세품을 팔잖아요. 그런데 영수증이랑 돈이 안 맞는다고, 빼돌린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추궁을 받았죠. 그건 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데, 무슨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딸을 미국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물리학이 딸린대요. 그래서 직원 중 물리학과 나온 사람을 찾은 거죠. 그래서 그 애 방학 때면 비행 나간 것처럼 처리하고 그 애 과외를 해줬어요. 그런 경험들과 더불어, 젊은 나이임에도 힘든 스케줄도 그렇고, 이렇게 대우받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죠. 기본급이 낮고 비행을 많이 해야 많이 받는 구조라, 몸을 망가뜨리면서 돈을 버는 거예요.


리: 사실 대기업은 그래도 많이 벌잖아요? 대한민국 중간소득이 2,500인데, 대기업 5년 차만 돼도 5,000 이상을 받는데요.


권수정: 제가 23년 차고 5,000 얼마 받는데, 그게 많이 받는 건가요? 많이 받는다는 기준이 임금 평균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하는 일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얘기와 등치돼 버려요. 제 몸을 혹사해가면서, 병을 얻어가면서 그 돈을 받는 건데요.


리: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군요.


권수정: 그런 것도 있어요. 매니큐어도 강제고 머리 상태도 매일 검사해요. 안 하면 징계, 벌점을 받으니까 할 수밖에 없었고요. 2001년 파업 때 임금을 가장 중요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노동조건, 승무원 두발 자유 같은 것도 중요했어요.

여성 승무원 하면 떠오르는 머리 모양들. 자유가 아니라 강제였다.

리: 노조 설립은 1999년이죠? 노조에 들어간 특별한 경위가 있나요? 


권수정: IMF 이후에 노조가 많이 만들어졌어요. 대한항공에서 넘어온 정비사분들이 노조를 만들었죠. 승무원이 그냥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제1 업무가 탈출, 응급처치, 보안 이런 활동이에요. 그래서 청원경찰 자격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준공무원이라고 노조 가입을 못 한다는 거예요. 행정해석까지 받아서 청원경찰 자격이 없어진 후에 2000년도에 왕창 들어갔죠. 이건 우리를 위한 조직이다, 너도 하니? 그럼 나도 해야지, 하면서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였죠. 파업 때 조종사를 제외한 직원 6,000명 중 약 3,000여 명이 노조원이었으니까 가입률도 꽤 높았죠.


리: 파업 때 내세운 조건은 뭐였어요?


권수정: 가장 큰 건 임금이었죠. 회사는 계속 성장하는데 임금은 안 오르니까요. 돈을 많이 벌었으면 임금을 올려주는 게 당연한 거로 생각하는데 아니었던 거죠. 또 비행시간이 보통 외국은 70~80시간인데 140시간씩 뛰는 걸 줄여달라, 또 두발을 자유화하고 매일 복장 점검하는 걸 없애달라 이런 걸 요구했죠.


리: 그 중 파업을 통해서 몇 가지나 먹혔나요?


권수정: 돈이 안 들어가는 부분은 대부분 됐고요. (웃음) 돈도 오르기는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요구한 수준은 아니고 5년 만에 6% 올랐죠. 그래서 파업 끝나고 실망한 사람도 많았어요.


리: 그러면 매니큐어 안 발라도 되는 거예요?


권수정: 아뇨. 그건 아니고 매일 검사 받는 게 없어졌죠. 점검할 때 ‘이따위로 밖에 못 하냐’ 하는 모욕적 언행이 참기 힘들었거든요.


리: 끝나고 분위기는 어땠나요?


권수정: 협상을 통해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의미가 컸죠. 하지만 사측도 변했어요. 공식적으로는 계속 부인하지만, 삼성 그린화처럼 노조파괴 공작이 몇 년간 진행됐죠. 20명씩 그룹을 만들고 얼마나 조합원을 탈퇴시키는지를 그룹장의 근무평가에 반영해요. 그렇게 진급하는 거죠. 비행기란 공간은 폐쇄된 공간이에요. 후배, 동기들은 사무장 하고 퍼스트 접객하는데 본인은 화장실 청소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점점 탈퇴하고… 현재는 150명 정도에요. 직원이 1만 명 정도인데요.

출처: 한겨레
삼성의 적나라한 ‘그린화’ 노조파괴 공작

리: 어떻게 보면 1% 안에 드는 사람이네요. 노조원이 계속 줄면서 노동조건도 안 좋아졌다고 보세요? 


권수정: 승무원들은 휴식이 중요해요. 낮밤이 바뀌니까 잘 따져서 숙소를 정해야 해요. 예전에는 노사가 그걸 같이 선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서 가격 맞춰서 짠 다음에 둘 중 하나 고르란 식이죠. 방콕, 싱가포르 같은 곳은 대여섯 시간 걸려서 가니까 쉬고 다음 날 와야 하는데 그냥 바로 돌아오게 하고 이러는 거죠.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니까, 눈치를 보기는 해요.


리: 150명이면 노조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없지 않나요?


권수정: 1만 명이 있어도 영향력을 전혀 내지 못하는 대한항공에서 알 수 있듯이 인원수의 문제가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목소리를 내느냐죠.


리: 그래도 쪽수가 많으면 덜 외롭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땠어요?


권수정: 대부분이 미안해하죠. 제가 바지 복장 두고 싸울 때도 응원이 훨씬 많았죠. 이번에 나오면서도 많은 응원을 받았어요. 처음엔 원망도 했어요. 미안하다고 하는 말도 미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은 나가서 편할까? 차라리 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 당연히 편하지 않을까요… 나가서 편해질 생각은 안 하셨어요?


권수정: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것 같아요. 저도 나름 입사해서 계속 이쁨… 받고… 자격도… 꽤 괜찮았고… 그런… 단계를… 밟았던 경험이 있었… 던 사람…이었지만,


리: 왜 이렇게 떠듬떠듬 말하세요.


권수정: 제가 제 자랑을 잘 못 해서(웃음). 타협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게 별로 마음이 편할 것 같지 않았어요. 모르겠어요, 좌빨의 기운이 넘쳤나?


리: 노동 분쟁에서 강하게 행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권수정: 저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인 게, 2001년에 파업하고 바로 대의원을 하게 됐어요. 그냥 봉사 활동 단체처럼 생각했을 때니까,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여성할당제 때문에 민주노총 공공연맹(현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픽이 됐어요.


리: 어떠셨어요?


권수정: 다른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많이 볼 기회였어요. 처음 맡은 곳이 사회 서비스 영역이었는데, 처음으로 천막농성이란 걸 해봤어요. 2005년 원주 상애원 싸움을 하면서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노인복지시설인데 원장이 가족 경영을 했어요. 노인분들이 인간 취급을 못 받았어요. 목욕하다가 넘어진다고 욕실에 CCTV를 달고… 일하시는 분들 처우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또 원장이랑 시장이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시청에서도 별문제 없이 허가 내주고. 그래서 거기 계신 노조원 6분이 이걸 바꿔야 한다고, 본인들 월급 인상이 아니라, 잘못된 구조와 돌보고 계신 분들의 인권 탄압을 개선해야 된다고 들고 일어나신 거죠.


리: 그래서 변화가 있었나요?


권수정: 한 번은 승리했죠. 그런데 사람이 변하지 않잖아요. 나중에 기회만 생기면 원상 복귀되거나 더 나빠지거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 싸움의 흔적들이 또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했다면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리: 또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나요?


권수정: 제가 민주노총 여성위원장도 맡았는데, 저와 굉장히 친했던 분, 공공연맹에 가자고 적극 추천했던 분이 성희롱 가해자로 제소를 받았어요. 선택해야 했지만, 아닌 건 아닌 거죠. 그래서 그분은 운동 판에서는 발붙이기가 힘들어졌어요.


리: 사실 노조 같은 데서는 어떻게 보면 흔한 일인데요.


권수정: 흔한 일이라기보다는, 다른 곳보다 더 밝혀지는 거죠. 여성위원장을 하면서 여성주의 쪽에도 눈을 뜨게 됐어요. 그 전까지 본능적으로만 해왔던 일들을 구조적으로 보게 됐죠.


리: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복귀해서 본 직장은 어땠나요?


권수정: 그렇죠. 2007년에 회사로 돌아와서 2010년에 노조 위원장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2006년에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하면서 풋백옵션으로 자금을 조달했다는 게 터졌어요. 1,000원으로 지분을 같이 사면 3년 후에 3,000원이 될 건데, 만약 안 돼도 금호가 그 가격에 사주겠다고 한 거죠. 그런데 2008년에 금융위기가 터진 거죠. 결국 산업은행이 들어와서 관리감독을 받게 됐는데… 그런 상황에서 위원장을 하게 됐어요.

출처: 비즈니스워치
이후 금호아시아나는 계속된 박삼구 회장의 경영 실책으로 사옥까지 팔 처지에 놓였다.

리: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했어요? 


권수정: 박삼구 나가라죠. 박삼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싸움을 3년 내내 했어요. 사실 안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투명한 구조를 만들어서, 박삼구가 돌아와도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 순진한 생각이었죠.



이제는 무뎌져서 아픈지, 상처가 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승무원


리: 박삼구가 없을 동안 달랐던 게 있나요?


권수정: 임금이 매년 올랐어요. 박삼구가 경영을 할 때는 안 되던 게 산은이 관리감독할 때는 됐죠. 그 시절에 용모복장, 치마바지 싸움도 했고요. 박삼구 회장이 복장까지 결정했어요. 교섭이 안 되니까 인권위도 갔었어요.


리: 용모복장 싸움에선 이겼어요?


권수정: 이긴 걸까요? 바지를 만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입는 사람이 조합원 몇 명뿐이에요. 비자발적으로 만든 거다 보니 입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거죠. 치마 유니폼에 일자 바지 하나 덜렁 넣은 거라 핏도 안 나고요.

출처: jtbc
입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리: 아시아 항공사들은 어리고 젊은 여성이 타이트한 의상 입는 게 상식처럼 됐어요. 서구권에선 싸워서 바꿨죠. 한국, 그리고 아시아는 왜 안 될까요? 


권수정: 후발주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니까. 승객과 대면하는 부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니, 여성성을 극대화해서 이용하는 거죠. 비엣젯처럼 비키니 입히는 경우도 있었고요.

출처: 이데일리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 복장. 다행히 이제는 불법이다.

리: 대한항공 사태는 좀 재밌게 보셨어요? 


권수정: 그걸 어떻게 재밌게 봐요. 재미있으세요?


리: 그래도 아시아나에서 컵을 던지지는 않잖아요? 회장님 부인, 딸들도 없고…


권수정: 왜 없었겠어요. 다 같은 한국사회 구조 속에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다만 강도가 조금 셌을 뿐이죠. 라면 상무 사건처럼 라면 세 번 끓이는 건 일도 아니에요. 한 번은 어떤 손님이 면세품이 없다고 저한테 침을 뱉기도 했어요. 성희롱, 손 잡히는 건 비일비재했고, 엉덩이 만지는 사람도 있고. 고위직, 정치인 타면 ‘저 손님 손버릇 안 좋다’ 그런 이야기 들어요. 자기들은 그렇게 해도 문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손님 중에는 심지어 마주 보고 앉아있는데 ‘다리 벌려라’고 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리: 상상도 못 한 말이네요…


권수정: 감정노동 1등이 승무원이에요. 그런 게 너무 일상화되어있죠. 2013년쯤부터 연맹 차원에서 감정노동 관련 법안도 만들려고 하고 캠페인도 했는데, 그 전에는 이걸 노동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어요. 하나의 서비스 스킬로 봤죠. 감정노동 수당, 감정 휴식 제도 등이 도입된 게 정말 얼마 안 됐죠.


리: 퍼스트로 올라가는 게 대우 문제도 있지만, 주니어들 보내면 큰일 나겠네요.


권수정: 그런 것도 있고요. 많이들 울어요. 그런데 우는 것도 다쳐서 아파야 우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무뎌져서 아픈지도, 상처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죠.


리: 사실 승무원 자체가 수명이 길지 않잖아요? 그게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가장 큰 건가요?


권수정: 지표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을 보면 그게 크긴 하죠. 많이들 병도 얻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 없이 그 상태가 유지되니까. 저는 그래도 계속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 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그냥 아픈 채로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거죠.

권수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땅콩회황’의 노동탄압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

여성도, 비정규직도, 반려동물, 소수자도 모두 행복한 서울시를 만들고 싶다


리: 정당 생활은 어쩌다 하게 된 거에요?


권수정: 2004년에 민주노동당 입당하면서부터요. 우리가 같이해야 할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죠.


리: 들어가자마자 노조도 정당도 몰락한 건가요?


권수정: 몰락이라고 하지 마세요… 슬프잖아요… 분화발전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죠. 그때가 전성기였죠. 그리고 분당하면서 진보신당 갔다가 무당파로 살다 2015년에 정의당으로 들어왔죠.


리: 민주당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건가요? 힘 있는 정당과 이야기함으로써 뜻을 더 빠르게 펼칠 수도 있잖아요?


권수정: 어떤 뜻이냐의 문제죠. 비정규직을 2년 쓸 걸 1년으로 줄이자는 입장에 설 것이냐, 비정규직은 우리나라에선 도입되어서는 안 되는 제도라는 입장에 설 것이냐.


리: 본인의 입장은요?


권수정: 아시아나 항공에도 후배들이 비정규직으로 들어와요. 상시적 업무, 안전 업무도 하는 데 1, 2년짜리 인턴이라는 이름으로요. 그런 비정규직은 없어져야죠. 본인이 선택해서 단기간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자본의 입장에서 도입된 제도니까요.


리: 그런데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 1년만 돼도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면에서 정규직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거든요.


권수정: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안정적인가요? 비정규직을 계속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회사에 속해서 임금을 받으며 살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방법이 없는 사회라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판국에 정규직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 생활의 안정성 같은 것은 모두 포기하겠다는 말이죠. 정말로 사람이 가진 능력이 1년만 지나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사회라면 직업 능력을 계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줘야지, 정규직이 비정규직 된다고 새로운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리: 진보정당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데, 현재 진보정당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권수정: 지금껏 우리나라는 민주당하고 자유한국당, 양당체제였죠. 양당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왔나요? 사람 살기 좋은 나라로 끌고 가는 고민을 거의 안 해요.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 성과를 냈던 2000년대 초반에 양당이 생각도 못 하던 무상급식 의제를 던졌죠. 일종의 메기효과랄까요? 특히 이번처럼 민주당이 휩쓸 걸로 예상되는 상황에선 기존과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리: 문 대통령 들어와서 바뀐 게 많잖아요? 100점 만점에 몇 점 정도일까요?


권수정: 그건 잘못 말했다가는 맞을 것 같고요. 잘하고 계신 부분이 많죠. 평화나 외교 면에서도 그렇고요. 실패와 아픔 속에서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노동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하셨는데 인천공항 사례 보면 자회사를 만든다든가 해서 어물쩍 넘어가는 게 있죠. 또 이번에 한상균 위원장이 가석방이라지만, 거의 수감 기간 다 채우고 나오는 상황이고. 최저임금 1만 원도 식대 포함으로 산입범위를 바꾸겠다고 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보는 거죠.


리: 진보정당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그래도 이 점은 진보정당이 있어서 나아졌다고 생각하시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권수정: 심상정 의원이 대선에 나가서 우리 사회가 배제해왔던 사람들을 불러줬던 거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말했잖아요. 존재함에도 조롱과 멸시를 받아 온,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본인을 노동자로 부르지 못했던 사람들을 불렀죠. 그리고 여성과 성 소수자도 불렀죠. 1분 찬스를 써가면서까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임을 말하셨어요.


리: 5% 넘어야 당선인데요. 가능할 것 같나요?


권수정: 지금 같아서는 우리가 5% 받는 게 화가 나기는 해요. 아무리 역사적으로 양당 체제가 유지되어왔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받는 게 화가 나요.


리: 서울은 사실 너무 다양하고, 특이한 공간이에요. 그 안에서 어떤 노동 의제를 제시하고 싶으세요?


권수정: 기본적으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지금 편차가 심하거든요. 박원순 시장이 노력도 했고 성과도 있지만 아직도 임금 격차가 커요. 남성이 310만 원이면 여성이 196만 원 받는, 2/3도 안 되는 수준이고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비율도 여성이 더 높고요.

출처: 비즈니스포스트
여전히 심각한 남성-여성 임금 격차, 그리고 또 높은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

리: 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곳은 전반적으로 갑질도 많고 그런 편이죠. 


권수정: 대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고용과 해고가 쉬워지는 거죠. 또 사회적으로 필요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걸 민간으로 돌린 경우가 많아요. 그걸 다시 국가로 돌리기 위한 노력이 같이 이루어져야 갑질 같은 것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보고요. 공공부문부터 임금 격차를 줄이는 조례를 추진해야겠죠. 임금을 공시해서 임금 격차를 직접 확인하고, 그걸 해소하는 방안을 제출하는 곳에 점수를 더 준다거나. 민간위탁 사업장에서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면 점수를 더 준다거나.


리: 또 해보고 싶은 정책이 있나요?


권수정: 제가 서울에서 남편하고 떨어져 살면서 반려견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유기동물 0% 서울을 만드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어요. 지금 3가구 중 1가구는 반려동물을 기르는데 보통 펫숍에서 데려오지, 지인을 통해서나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경우는 적어요. 생명을 사고파는 게 쉽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죠.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반려동물이 유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생명경시 문제도 있지만 비용 문제도 커요. 우리 아이도 다리가 안 좋은데 300만 원 수술비가 들어요.

반려견 요다.

리: 비싸죠. 그래서 보험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는데 난리가 날 것 같은… 


권수정: 그래도 던져야 하는 의제인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만 반려동물을 제대로 기르고, 돈 없으면 아픈 아이들을 버려야 하면 안 되잖아요. 보험부터 시작해서 의료수가를 낮추는 문제 같은 것들을 한 번 생각해봐야 해요. 또 인권헌장이 2014년도에 엎어지고 계속 안 되고 있는데 저는 무조건 제기할 거예요. 동반자 인증제도부터 시작해서요.


리: 동반자 인증제도가 뭐죠?


권수정: 법적으로 결혼을 해서 가족을 구성하지 않으면 은행 대출, 병원 보호자 같은 것들이 인정이 안 돼요.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포섭되지 않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성간 결혼, 동성간 결혼을 떠나서 노인분들이나 장애인분들이 같이 사시는 경우들도 있고요. 그런데 동반자 인증을 해 주는 거죠. 프랑스, 독일 등에선 파트너 제도를 만들고 있어요.


리: 아니 인증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없애면 되는 거 아니에요?


권수정: 사실 저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남편도 20년 동안 연애하다 이번에야 결혼했어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꼭 좀 하고 싶어 하셔서… 남편이 3대 독자에요.


리: 혹시라도 낙선하시면 회사로 돌아가실 건가요?


권수정: 고민이 많은데요. 일단 저는 정의당에서 당원들에게 앞으로 정당을 위해, 정당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1번을 받은 사람이에요. 현장으로 돌아가기 어렵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요.


리: 꼭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권수정: 서울시민들이 저를 뽑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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