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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고민 중이신 서른 즈음의 후배들에게

조회수 2018. 2. 21. 17: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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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고 30대의 고민과 실질적인 충고

겨울이 지나갈 때쯤 이직에 대한 상담이 많이 옵니다. 최근에는 입사지원서 혹은 자기소개서의 형태로도 많이 들어오는 이런 편지들을 읽으며 대견한 후배들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쯤 우리도 저런 인재들을 마음껏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한 분이 쓴 긴 편지의 끝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울분을 토해내듯 글을 썼습니다. 그것은 제 지난 삶에 대한 후회이기도, 제 무능함에 대한 분노이기도, 제가 품은 꿈에 대한 간절함 이기도 합니다.”

아마 30세를 전후한 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내용인 것 같습니다. 어느 모임에 나갔더니 젊은 대표님께서 제 글을 지인들과 함께 돌려 읽기도 한다고 하시더군요. 30대 전후의 갑갑함에 많은 위로가 된다며 두 번 세 번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30대 전후의 갑갑함에 관심을 가지는 선배가 별로 없기 때문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제가 가장 갑갑했으니까요.

우선 한시대를 앞서 산 선배, 또 같은 시절을 먼저 보내고 좀 더 멀찍이서 회상할 수 있는 선배의 입장에서 여러분의 입장을 한번 객관적으로 나열해볼게요.


여러분은 그 어느 때보다 재능이 뛰어났고, 다양한 문물을 경험하였고,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들었던 세대입니다. 인터넷이나 게임에 접속만 하면 또래와 지역을 초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머릿속에 쌓인 무의식의 원석은 그 누구보다 많은 세대입니다.


특히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친구들은 나름 대한민국에서 뜻 있고 생각 있고 조명을 받았던 젊은이들일 테니 그런 지적 섭취에 부지런했을 것입니다.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에 허기를 느낀 분들도 참 많을 것 같습니다.


반면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세대를 만나고 동네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도시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관계망의 결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비단 후배 세대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더 큰 외로움 속에 더 큰 동질감을 찾고 있지만 자주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생각이 많은 청춘기에 그런 어지러움을 맛보는 것은 더 큰 방황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기회는 보이고, 이야기는 들리는데, 만져지는 것은 없는 가상현실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획일화된 교육의 폭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제법 자신의 길을 가는 동료들을 많이 구경하였습니다. 게임 방송을 하며 돈을 버는 친구는 물론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거나 해외로 이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획일화된 폭력적 질서라면 그것만 따르면 그만인 것을, 한쪽에선 획일화를 논하고 한쪽에선 다양성을 요구하니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어쩌면 대다수는 이미 획일성에 베팅하였을 것입니다. 대기업을 들어가고 부모님이 창피해하지 않을, 주어진 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의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성이라는 바람에 돛을 걸고 멀어져가는 지인이나 선배들을 보며 아찔함을 느낄 것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는지가 그 길 위를 얼마나 열심히 달리는지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설계를 결정하는 사람이 그 설계를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더 큰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목격합니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자주 목격하고 맙니다. 그리고 주위에 선배들은 어쩐지 설계를 포기했다는 생각에, 그들의 조언이 더 헷갈리기만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해보기엔 내 안에서 열정의 실마리를 찾기 힘듭니다. 저 정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를 자문해보면, 불현듯 주위에 인생을 말아먹은 돈키호테들의 이름이 순식간에 떠올라 불안합니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압니다. 안전한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그 자리는 점점 더 불안해질 뿐이라는 것을. 선배들의 우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었으니깐요.


우리 아버지 때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인생역전의 길이었습니다. 삼시 세끼를 해결하기 어렵던 시절, 녹봉을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시골에 가서 자녀가 나랏일 한다고 하면 집 앞까지 포장도로를 깔아줄 수도 있는 절대권력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상위 0.01%의 대성공이었겠죠. 그 누구도 공무원보다 높은 자리를 상상하기 힘든 때였습니다.


하지만 고성장시대가 전개되자 민간 기업의 회사원이 공무원보다 돈을 훨씬 더 벌기도 합니다. 대학을 나와 회사원이 된 것에서 대박의 기회를 찾은 것입니다. 삼시 세끼를 넘어 해외 출장도 가고 자동차도 사고 집도 사고, 어떤 미래를 상상했든 실제 현실은 더 크고 아름답게 변화해갔습니다. 대박이었습니다.


회사에 붙어서 충성을 맹세하면 새로운 부서가 생기고 새로운 자회사가 생기고 새로운 거래처가 열릴 때마다 더 큰 일을 할당받았습니다. 한두 번 찍히더라도 회사 안에 찬란한 미래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대기업이 구글 입사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6배 이상 올랐습니다. 대학의 가치는 1/6 토막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대기업의 가치도 떨어졌습니다. 고성장시대에 이뤄지던 기적들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지금의 구글이 십 년 전의 구글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아버님 때의 신화와 전설이 귓전을 울리지만, 영광의 순간을 기억 못 하는 선배들의 얼굴이 묘한 이질감을 줍니다. ‘회사 때려쳐야지’를 밥 먹듯 중얼거리는 대리 과장 선배들을 보며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나의 희생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성장 시대에 올라탈 수 있던 기업 내 사다리는 모두 치워진 느낌입니다. 있다 한들 아무도 그것을 믿고 올라타지 않습니다. 같은 사다리 위에 밍기적 대는 엉덩이가 너무 많아 교통체증이 생깁니다. 사다리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30대 즈음에 느끼는 막연함 아닐까요? 내 갈 길을 갈 것인가, 간다면 길이 있긴 한 것인가, 그냥 있을까, 그냥 있으면 길이 있긴 한 것인가. 그때쯤 생각나는 것은 역시 이직입니다.


이직에 대한 저의 생각은 첫째, 한번은 해보길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이직을 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길 것입니다. 더 악화되는 것도 많고, 완전히 똑같은 것도 많겠죠.


그러나 확실한 것은 ‘관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비교 대상이 있기에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집니다. 기업들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죠.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쁘지 않습니다.


평생 이직을 고민하며 제자리에 앉아 있는것보다 낫습니다. 답이 안 보인다면 한 번쯤 자리를 옮겨 내가 찾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옮겨보니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직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진 않더라도, 평균적으로는 제법 높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아기처럼 평가받다가, 경력직 프로로서 평가받게 될 때, 내 안의 프로가 눈을 뜨게 됩니다.

두 번째, 그래 봤자 사실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위 5% 수준의 인력을 뽑는 회사에서, 상위 4.9% 수준의 인력을 뽑는 회사로 옮겨도, 문화의 차이가 그렇게 많이 발생하지 않고 대우의 차이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기회의 폭은 비슷하고 인재에 대한 생각도 비슷할 것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그래서 이직에는 환경의 변화를 요구할 협상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2~3년 경험이 있을 때 그 경험을 내세워 이직하는 것이 (실력 대비) 몸값이 좋습니다. 기존 연봉의 20%는 더 받아야 이직의 조건이 달성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협상은 좋습니다. 반면, 대기업 3년 차 정도의 회사원이라면, 연봉을 획기적으로 깎는 협상도 좋습니다. 한번 찍은 연봉은 모종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은근히 좋은 협상 카드가 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고 열정이 있고 배움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관된 경험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익힌 사회경험을 토대로, 경력 없는 경력직으로 이직하되 연봉을 많이 양보하세요. 높은 연봉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 ‘양보’랄 것도 없지만, 그런 적이 있다면 ‘양보’가 됩니다.


또한 대단한 열정의 시그널이 되기도 합니다. 대단히 갈망하는 회사에 희망연봉을 반 토막으로 양보하고 지원해보세요. 어차피 3년 차에 연봉은 배움에 재투자해야 할 돈입니다.


MBA 가는 돈이라 생각하고, 오로지 배우기 위해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세요. 그러나 계산은 해봐야죠. 이 새로운 직업을 통해 커리어를 제대로 쌓는다면 10년 후에 기존 회사 10년 차만큼 받거나 사실은 두 배 이상 많이 받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를 낼 필요도 있습니다. 대부분 즐거운 일을 하며 맨땅에 헤딩하면 더 행복하고 더 경제적으로 풍족한 미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기존 회사도 10년을 다닌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할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신 힌트라면, 연봉은 깎되 직급은 지키거나 높이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권한,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자리를 연봉을 양보해 쟁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면 그 암묵적 지분을 요구하면 됩니다. 일종의 투자인 셈이죠. 투자가 없으면 투자 수익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이직에서 10인 수준의 스타트업 이직은 권유하지 않습니다. 규모가 크더라도 성장이 멈춘 중소기업도 비추합니다.


직무를 배우고 싶다면 대기업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부서에 지원하시고, 직무를 배웠는데 적용하면서 더 배우고 싶다 하면 한 30~50명 수준에서 급격히 커지고 있는 회사가 적정합니다.


물론 객관적인 의미에서 사내 기회의 폭은 이직시에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더 배우고 더 다양한 기회를 탐색하기 위한 이직, 나의 50년 업을 찾기 위한 이직이라면 좋습니다. 


대기업은 언젠가 해체되거나 붕괴됩니다. 대기업의 체제 안에서만 생각하지 마시고 다양한 기회를 탐색해보시길 바랍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더라도 말이지요.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또 나에 대해 더 배워야만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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