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은 왜 항상 연애에 실패할까?

조회수 2018. 1. 11. 09: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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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1년간 연애칼럼을 쓴 적 있다. 대학생들이 연애에 관련된 고민을 보내면 그걸 읽고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행복해지려고 연애를 하지만 연애를 할수록 불행해지고 쪼그라드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 메일을 보내는 여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그런 상황이었다.


반면 남자들의 질문은 거의 하나로 귀결되었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불행한 연애로 고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는 이상한 공통점 하나를 깨달았다.


집착하는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여자,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에게 휘둘리는 여자, 착한 여자 콤플렉스로 이용당하는 여자 등 고통스러운 연애를 반복하는 여자 대부분이 성장기에 가족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가족 내 첫째나 막내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된 적 없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고 자존감이 낮았으며, 또래보다 일찍 연애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위로는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 이른바 끼인 둘째 딸이 특히 많았다. 나는 궁금했다. 자기 파괴적인 연애를 반복하는 것과 성장 과정에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출생순서에 숨겨진 인간 심리를 연구한 가족 심리전문가 케빈 리먼은 둘째나 셋째 등 중간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외감’ ‘무시당하는 느낌’을 다른 형제에 비해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첫째에게는 임신 전부터 커다란 관심과 설렘을 가지고 키우지만 둘째부터는 첫째만큼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막내 아이에게 가지는 애정도 둘째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 그건 가족앨범에서 둘째 아이의 독사진이 다른 형제에 비해 얼마나 적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또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간절히 아들을 원했던 엄마는 나를 낳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남아가 여아보다 5%정도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출생성비 103~107 정도를 정상이라고 보는데, 내가 태어난 해인 1986년의 출생성비는 111.7이었다. 1980년대 중반은 불법 낙태가 성행하기 시작한 시기여서 여아라는 이유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보다 한 살 위의 언니는 첫째 딸이 갖는 위엄이 있었고,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귀한 아들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졌다.


언니나 동생과는 달리 내게는 돌 사진과 백일 사진이 없다는 사실, 새해에 새배를 하면 항상 어른들이 언니는 언니니까 만원을 주고 동생은 아들이어서 만원을 준다면서 내게는 오천원을 줬던 일, 첫째나 막내와 자주 비교를 당하곤 하는 일 같은 경험은 나로 하여금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때문에 나는 도망쳤다. 가족은 내게 무한한 사랑과 인정을 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나 자체로 사랑해줄 수 있는 친구와 연인에게 집착했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연애는 늘 순탄치 않았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놓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알면서도 참았다.


원하지 않는 상황이 있더라도 내가 거절하면 그가 실망할까봐 순응한 적도 많았다. 사랑받음으로 인해 쓸모를 증명하려고 했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꼭 둘째 딸이 아니어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때문에 상대의 작은 호의에도 금방 사랑에 빠진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별로 없어서, 달콤한 말로 그를 조종하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기에,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날 사랑하는 게 맞아?”하고 의심하고 집착하며, 상대를 실험하려 하는 경우도 많다. 비극적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예전 모습과 닮은 여자들에게, 그 상황에서 벗어났던 경험을 빗대어 조언해주었다.


첫째, 스스로를 연민하는 것에서부터 벗어날 것. 그럴수록 너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어난다.

불합리한 일이 생기더라도 ‘내 인생이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비관하지 마라. 학습된 무기력만큼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 것도 없다. ‘내 인생은 원래 불행해’라고 말하는 걸 그만둬라.

둘째,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일상에서 작은 거절부터 조금씩 해볼 것. 사랑받지 못한 딸들은 질문이나 관심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기보다 남에게 자꾸만 맞춰주려고 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꾸 물어야 한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서는 싫은 것에 거절도 종종 해야 한다. 거절은 처음엔 어렵지만 작은 것부터 하다 보면 내가 싫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셋째,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자존감이 낮으면 다른 사람을 자꾸 괴롭히고 믿지 못한다. 관계를 끝낼 때가 되어도 ‘이 사람 말고 또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어’ 하고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일상에서 작은 성취의 경험을 쌓고 온전히 존중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자꾸 무리하는 습관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바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무기력이나 애정결핍이 한번에 고쳐질리 없다.


실패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꾸준히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상처에 압도되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함부로 대하도록 방치하지 말자. 당신은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원문: 정문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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