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한국 사회가 이국종을 소비하는 방식

조회수 2019. 10. 24. 17:4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고맙다는 말은 공짜고, 앞으로도 고마워할 거란 이야기다.

1. 의료 역군 이국종


전태일은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을 불태우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화염 속에 생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47년 후, 이국종은 일하면 일할수록 적자가 나는 수가 체계, 한국 의료를 비판하면서 “이제 좀 쉬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외상 센터는 안 된다”고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국종에게 그렇게 일해주고 있어서(현재 완료 진행형) 고맙다고 했다.


다른 의사들이 그를 본받아 혹사하기를, 환자는 기계가 아니니 살리라고, 일요일에도 사람은 죽는다고, 그렇게 일하다 죽으면 헛되지 않을 거라고 외쳤다. 컵라면과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국종 교수에게 기분이라며 고급 도시락을 갖다 주고 싶다는 시민도 있었다.


과연 전태일이 바란 것이 감사였을까? 그는 다른 노동자들이 자신보다 게으르다며 탓을 했을까? 도시락을 먹고 싶어 했을까? 적어도 전태일은 고용주에게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 같다. 고맙다는 말은 공짜고, 앞으로도 고마워할 거란 이야기니까.



2. 소년 가장 이국종


이국종을 세금으로 도우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다른 나라였다면 익히기 어려운 고급 기술을 가진 전문가로 사회에 기여하며 여유롭게 살았을 그를 빚더미에 몰아 놓고, 마치 아무 능력도 없어 도움을 베풀어야 할 소년 가장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히트를 치고도 불법 복제로 망한 게임사를 돕기 위해 와레즈 사이트에 모금 계좌를 걸어놓은 꼴이다.


그는 ‘한 일에 제값을 받을’ 직업인이지 ‘세금으로 도울’ 소외계층이 아니다. 물품 대금을 달라는데 모금 계좌를 열어주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김금보 기자

3. 착한 김밥집 사장 이국종 


소년가장이 급식 이외의 방법으로 식사를 해결하려면 한 끼에 최소한 5,000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소년가장을 위해 배정된 국가의 예산은 10분의 1인 500원에 불과했다(저예산). 500원으로는 맨밥이 들어간 김밥도 힘들다.


그래서 소년가장에게 500원을 추가로 부담시켰다(저보장). 소년가장의 자기부담금 500원과 국가지원금 500원이 합쳐서 한 끼에 1,000원이 가능했지만 여전히 한참 모자라다. 여기서 모든 국민이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김밥을 파는 분식집 사장을 복지에 동원하기로 했다(저수가).


가장 싼 그냥김밥을 2,000원에, 참치김밥을 3,000원에, 제육김밥을 4,000원에 팔던 김밥집은 가장 싼 김밥의 가격을 1,000원으로 내려 동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1,000원은 이윤은커녕 식재료 대기에도 버거웠다. 식당 주인은 할 수 없이 1,000원짜리 메뉴를 만들고 계란지단과 밥만 넣은 김밥을 팔았다.


소년가장은 고작 500원에 1,000원짜리 김밥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내심 기대하던 2,000원짜리 싸구려김밥에도 미치지 못하는 질에 실망했다. 분식집 사장이 돈에 눈이 멀어 자기와 같은 돈 안 되는 손님에게 쓰레기 밥을 대접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소년가장보다 훨씬 여유 있지만 그다지 배고프지 않은 직장인 손님들도 1,000원 김밥을 주식으로 먹거나 메인 메뉴에 사이드로 시켜먹으면서 오히려 손해가 더 커졌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김밥을 강제로 팔면서도 가게가 유지되던 비결이 있었다. 정부에 따르면 치즈라면이나 돈가스는 소년가장이 반드시 먹어야 할 필수 식단이 아니었기에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소년가장은 1,000원 김밥만 먹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직장인들은 라볶이에 1,000원 김밥 조합을 먹기도 하고 음료수도 시켰다. 김밥의 가격은 터무니없었지만 무한리필집에서 소주로 돈을 남겨 먹는 구조였기에 분식집 사장들은 크게 항의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는 소년가장이 내야 하는 돈을 500원에서 200원으로 내린다고 통보했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금을 500원에서 700원으로 올리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에 더해 소년가장도 치즈라면이나 돈가스를 먹을 권리가 있다면서 치즈라면과 돈가스도 1,000원으로 내리라고 했다.


분식집 사장은 지금까지 김밥도 원가 이하로 팔았다며, 이런 가격 시스템으로 어떻게 복지를 더 확대할 수 있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정부와 직장인들은 장사꾼이 손해 보고 파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적자가 아니니까 운영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적자가 아니기 위한 전제조건은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치즈라면이나 돈가스만은 자유롭게 팔 숨통이었다.

출처: 한겨레 정용일 기자

이때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착한 가게 이국종김밥집이 TV에 등장한다. 다른 김밥집 사장들이 알바를 고용하며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영할 때 그는 1년에 네 번만 집에 가고 카운터와 주방, 홀을 혼자 담당하며 24시간 체제로 일했다. 인건비를 아끼고 야간운영을 하니 김밥의 질이 약간 더 좋아질 수 있었다. 


한쪽 눈이 실명될 위기에 처할 때까지 일하면서도 그는 월세를 제때 내지 못했다. 그러나 건물주는 김밥집 사장을 탓하면서도 내심 내쫓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TV에 등장한 김밥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건물 자체의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었다. 이국종김밥집은 숫자상으론 손해였지만 무형의 광고 가치가 있었기에 실제 그만큼의 손해는 아니었다.


이국종김밥집 사장 이국종의 사연이 알려지며 전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도착했다. 이런 착한 가게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면서 쌀을 보내오기도 했고, 누군가는 김을, 다른 누구는 햄을, 다른 누구는 김치를 보내왔다. 이국종김밥집은 이런 관심과 도움 속에 드디어 적자를 면할 예정이다.


한편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알바 1명과 같이 일하면서 1,000원 김밥을 팔던 다른 김밥집 사장들은, 24시간 혼자 일하면서도 적자를 면할 수 있었던 이국종김밥집의 인품과 경영 실력을 본받으라는 핀잔을 들었다.


월북자도 맛을 못 잊어 재탈북한다는 이국종김밥집은 경영이 잘 되지만 수원의 나머지 김밥집은 씨가 말랐다. 세간의 관심은 모든 김밥집에 대한 지원이나 1,000원 김밥의 비상식적인 가격을 고치는 데 쏠린 것이 아니라 이국종김밥집에 김치를 직접 담가 보낸다는 감성적인 측면에만 쏠려 있었다.

출처: JTBC
이국종 교수를 모델로 만든 콘텐츠들.

이국종김밥집 근처의 결식아동은 500원을 내고도 5,000원짜리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졌다. 나머지 김밥집은 죄다 망해서 수원시 장안구청의 결식아동은 이국종김밥집까지 갈까 하다가도 너무 멀어서 할 수 없이 편의점에서 1,000원을 내고 라면을 사 먹었다. 


물론 결식아동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복지다. 그렇다면 세금은 결식아동의 실제 식사비를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결식아동도 부담 없이 김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며 민간 업자인 분식집에 강제해 1,000원으로 낮춘 김밥값과 거기에 500원의 세금 지원은 꼬일 대로 꼬인 해결책이다.


적정 시장가인 3,000원에도 김밥을 사 먹을 수 있었던 직장인도 원래 김밥값은 1,000원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낮은 가격에서 정부 지원금을 500원이나 받아 직장인의 본인 부담금은 500원에 불과했다. 직장인들은 혹시나 모자랄까 봐 김밥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시켜서 결국 잔반으로 남겼다. 분식집 사장들은 혹여나 정부에 의해서 판매를 강제당할까 봐 쇠고기김밥은 아예 메뉴에서 빼버렸다.


TV에 나오는 행운을 누린 이국종김밥집이 일시적인 ‘후원’과 ‘세금’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 나머지 김밥집은 가격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국종김밥집은 잘 되는데 왜 안 된다고 하는가? 국민의 손길은 이미 성공한 이국종김밥집의 덩치를 키우는 데만 집중되지 사라져버린 장안구의 김밥집을 세우는 데 몰리지 않는다.


10년 후, 장안구 사람은 원래 김밥을 싫어하는 입맛으로 알려진다. 한편 케밥도 김밥의 일종이라며 터키인들에게도 1,000원짜리 케밥의 판매를 강요하자 케밥 체인점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버렸다.

이제 이국종이 아니면 대체 누가 김밥을 말 것이냐. 파스타 한 접시를 1만 3,000원에 띡 내놓는 돈독 오른 파스타집 사장들아 반성하거라, 이 사람만이 진짜 요리사다. 요리사들이 사명감이 없어서 김밥을 안 말고 돈 되는 메뉴만 팔려고 한다. 그리고 김밥 따위가 3,000원씩이나 하면 누가 사 먹겠는가.

정말 김밥 하나만을 바라보고 한식을 연구했던 요리사들은 진절머리가 났다. 복지의 구멍을 복지 예산으로 메우지 않고 요식의 싸구려화로 메우려는 행태를 참을 수 없다.



4


결식아동에게 500원짜리 예산으로 1,000원짜리 김밥을 먹이지 말고, 5,000원짜리 예산으로 5,000원짜리 식사를 하게 하라. 정부의 의무인 복지를 모두의 보건으로 때우려 하지 말라.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