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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2017.11.13. 작성

조슈아 벨 실험: 똑똑한 이들의 오판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이가 세계 최정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임을 알아본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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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2일,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젊은이가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앞에 열어놓고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를 넣어둔 다음 43분 동안 클래식 음악 6곡을 연주했다. 그 사이 천 여명의 사람들이 그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그런데 이 연주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연주가 이름은 조슈아 벨(Joshua Bell).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클래식계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였다. 게다가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은 안토니 오스트라디바리가 1713년에 직접 제작한 것으로 350만 달러(약 3억 8,000만원)짜리였다. 세계 최고의 연주가가 세계 최고의 악기를 들고 지하철역에서 변장을 한 채 돈을 받기 위해 연주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취향을 솔직히 평가’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다. 이것을 기획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인 진 바인가르텐(Gene Weingarten)은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위대한 예술을 어떻게 접하고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러한 흥미로운 기획을 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시 진 기자는 이 실험을 기획하면서 다른 동료 기자들과 함께 ‘조슈아가 공연을 하면 아마 지하철역이 아수라장이 되어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조슈아의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한 사람은 7명뿐이었고, 기부 받은 돈은 32달러 17센트(약 3만 5,000원)에 불과했다. 진은 이 실험 후에 쓴 특집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몰래 카메라로 모든 장면이 촬영되었다. 당신은 당시의 현장을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사람들은 배를 찰싹찰싹 때리는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조슈아의 곁을 무심히 지나간다. 무관심과 타성, 우울한 잿빛은 복잡한 현대사회에 맞추어 추는 어두운 ‘죽음의 무도’처럼 보인다.”

진은 특집기사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감상력 부족을 한탄했다. 물론 연주가 조슈아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현대인들의 감상력 부족?


그러나 진은 두 가지면을 놓치는 바람에 상황을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하나는 이미 ‘쾌락의 진실, 결국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렸다’ 편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즐거움이나 쾌락은 철저하게 ‘그 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생각한 대로 미각도 달라진다). 조슈아가 클래식계에서 이름이 높더라도 과연 수 많은 행인 중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으며, 그 연주자가 조슈아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실제로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조슈아의 연주를 감상한 사람 중 한 명은 몇 주전에 그의 연주회를 관람한 사람이었고, 두 명은 음악가였다.


미술 작품을 생각해 보자. 얼핏 보면 평범한 것 같은데, 갑자기 그 그림의 화가가 고흐나 피카소라고 밝혀지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그러나 몇 년 후 위작이라고 밝혀진다면? 그림 가격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림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말이다. 단지 그 그림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결국 아무리 놀라운 연주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면, 일반인들이 그 연주를듣고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조슈아의 연주가 행인들에게 외면당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연주 장소이다. 조슈아는 지하철역에서 그것도 아침에 클래식을 연주했다. 당신이 아침에 신도림역으로 출근하러 가는 도중이라고 생각해보자. 클래식 음악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구두 수선일을 하는 에드나 소저라는 사람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아침 출근길에는 음악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습니다.그러니 무엇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고 또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그저 자기 일만 신경쓰며 앞만 보고 가기 바쁜데 말이죠.

그의 말은 이 실험의 문제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상황 자체가 일반인들이 연주를 듣고 자시고 할 만하지 못했다. 만약 조슈아가 공원에서 연주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니면 멋진 광장에서 연주했더라면? 공원이나 광장에서 똑같은 실험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실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착한 사마리아인 실험


하지만 또 다른 실험내용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존 달리(John M. Darley)와 다니엘 벳슨 (Daniel Batson)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성경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신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여행 도중에 강도를 당해서 길가에 방치되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성직자인 제사장이나 신앙심이 좋은 레위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달리와 벳슨은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아무거나 설교의 주제로 삼으라고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에는 시간이 적당하다고 했고, B그룹에는 넉넉하다고 했으며, C그룹의 학생 들에게는 갑자기 시계를 보며 발표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연구팀은 학생들이 발표하러 가는 길에 기침과 신음을 하면서 쓰러져 있는 남자와 마주치도록 해놓았다. 과연 어떤 학생그룹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많이 했을까?


십중 팔구는 방금 전에 목사와 종교적 사명의 상관성에 대해 이야기한 그룹이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은 그룹이라고 꼽을 것이다. 이는 선입견에 의한 오판이다. 결과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마음속의 신념도 아니고 방금 전 들은 이야기도 아니고 상황이었다.


시간에 쫓긴 학생들은 단지 10%만이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반면에 시간 여유가 있었던 학생들은 63%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었다. “늦었다”는 한마디는 신학과 학생들을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 기자는 조슈아 실험을 통해 예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와 메마른 감성을 토로했지만, 그는 인간이 쾌락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특집기사는 완벽한 오판이었다.



헛똑똑이들의 오판


우리는 자신의 지식만으로 대상의 본질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판단할 때 크나큰 오판을 할 수 있다. 노키아 글로벌 컨설팅의 전 부서장이자 IT 전문가인 토미 에이호넌(Tomit Ahonen)은 이런 말을 했다.

“노키아는 아이폰을 일종의 ‘조크’(joke)로 보았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노키아는 글로벌 핸드폰업계를 석권하던 리더였고, 또한 노키아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들은 아이폰에 대해 완전히 오판을 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키아는 아이폰이 몰고 온 스마트폰 혁명에서 완전히 패배해 몰락하고 있다. 물론 다시 일어 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큰 오판을 했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오판은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있으며, 또한 오판은 헛똑똑이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원문: 그녀생각’s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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