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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과 꿈

조회수 2018. 7. 17. 11: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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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을 보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말고 소위 말하는 ‘생명보험’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서기 2000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부 순환도로가 없었던 그때는 아침에 출근할 때 금화 터널, 사직 터널을 지나가야 했는데 터널 내부 도로를 아침에는 시내 방향, 저녁에는 외각 방향으로 가변 차선제로 운영했다.


그 어느 날 아침 당연히 시내 방향으로 녹색등인 것을 확인하고 들어갔는데, 터널 끝날 때쯤 반대 방향에서 그러니까 정면에서 다른 차가 아주 빠른 속도로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났다. ‘아~ 정면 충돌이라는 걸 나도 해보는 구나. 이 속도면 죽겠구나. 다음 번에 차 살 때는 에어백 달린 걸로 사야지.’ 그리고 여러 사람들 얼굴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거의 부딪히기 직전 좁은 터널에서 간신히 비껴서 사이드미러만 살짝 스치고 대형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다.


난 죽으면 그만이지만, 생각난 사람들 가운데 몇 명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굶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 어느날 아침 미완의 사건으로 촉발된 보험 가입 이후에도 내 삶이 뭔가 바뀌지 않았다. ‘보험도 들었겠다’ 생각하고 난폭 운전을 시작했다거나, 그간 관심도 없었던 오토바이, 암벽 등반이나, 폭음, 흡연 그런 것을 보험 가입 후 새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을 아침마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험에 대한 느낌은 지금까지도 통장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문자가 올 때 떠오른다. 보험은 일상과는 무관하다.

 


꿈은 과정을 즐길 때 이룰 수 있고, 학교는 이를 지켜줘야 한다


예전에 우리 어른들은 늘 굶을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전쟁통에 또 여러가지 이유로 진짜 굶어본 아픈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자식들을 굶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학교에 보냈다. 재벌이 아닌 담에야 학교가 보험이었다.


또 확실히 굶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받기 위하여, 짤리지 않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아이들을 푸시했다. 공무원이, 변호사가, 의사가 보험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 언저리 세대는 그 영향권 아래에서 자랐고 보험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믿음이 핏속에 흐르고 있다.

이제는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힘들지만 밥을 굶지는 않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나마 벌이가 되는 사람들이 낸 세금, 기부금이 적어도 우리 주변에서는 굶는 사람을 거의 없게 만들었다. 이제 물리적으로 굶는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것도 대부분 먼 나라에서.


그런데도, 굶지 않는 것을 보장해주는 보험으로서의 교육이 아직도 큰 문제다. 더 정확하게는 교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꿈과 보험이 헷갈리는 것이 문제이다.


많은 청춘에게 구 시대적인 보험으로서의 직업관은 어릴 때 꿈으로 심어진다. 즉, 꿈이 ‘명사’형이다. 누구에게나 물어보면 꿈이 ‘뭘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미 눈치챘듯이, 이제는 아이들이 큰 다음, 학교가 부모가 기대했던 ‘안정적인/남들위에있는 직장’이란 보험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


다시말해 , 꼭 그런 부모가 원하는 직업이 아니라도 학교는 애들의 명사형 꿈을 보장하지 못한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다. 학교는 ‘동사형 꿈’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것만 하면 된다. ‘명사형 꿈’은 개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도 다양성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보험은 누가 내던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유지된다. 꿈은 그 과정을 즐길 때만 유지되고 이룰 수 있다. 아니 꿈은 이뤄야 하는 뭔가가 아니라 지켜야 하는 과정 자체이다. 학교는 그것을 지켜줘야 한다.


 

꿈이 아닌 결과를 지향하는 교육


학생들에게 뭔가 용기를 내서 해보라고 할 때마다 나는 보험 이야기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시대의 모두는 굶지 않는 보험에 자동 가입되어 있다고. 네가 가진 명사형 꿈은 꿈이 아니라 어쩌면 불필요한 보험이라고.


얼마 전에 만난 대학생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뭐하고 싶니? 백화점의 점장(매니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고객이 원하는 가격에 공급하는 걸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얼마 전 했던 편의점 알바 경험에 대하여, 식당에서의 알바 경험에 대하여 전혀 자부심도 자랑스러움도 없었고, 나중에 그런 알바 경험은 ‘스펙이 아니라서’. ‘찌질해 보일까봐’ 취업 때, 자기소개서에서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분명히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늘 고객을 만나고 그들이 뭔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찾아냈을 텐데도 말이다. 이미 꿈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런 흔한 현상은 이미 대학 4학년이기는 하지만, 그 친구의 잘못은 아니다. 교육과 사회의 실패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서 대박 성공을 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키워드는 ‘대박 성공’이다. 그 ‘대박 성공’이 보험금이라면 매달 납부해야하는 보험료가 매우 비싸진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기 쉽다. 운도 필요하다.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타는 보험금을 우리는 ‘로또’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운이 억수로 좋아서 ‘대박 성공’한 사람을 주위에서 보기 힘들다. 로또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대박 성공’보다는 ‘멋진’이 키워드여야하고 멋지게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꿈이어야 한다.


대박 성공이라는 로또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이 ‘멋진’ 뭔가을 경험하게 하는 것, 또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선 즐겨야 한다. 즐기기 위해서는 배움도 필요하다. 거꾸로, 즐기기 때문에 배움이 쉬워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박 성공’에만 꽂혀 있을 뿐, 즐기는 과정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그 멋진 것이 왜 멋진 것인지를 판단 할 수 있는 경험이 전혀 없이 ‘성공’만을 이야기한다.

자기는 게임을 안번도 안해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 수는 없다. 맛있는 냉면을 먹어보고, 또 냉면을 즐겨 먹어야만 제대로된 냉면집을 운영할 수 있다.


자기는 ‘대박 성공’을 기대하면서 그 과정에서 ‘멋진’ 것을 만들고, 즐기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성공했나 만을 평가한다면 뭔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이다.

 


명사형 꿈이 아닌 동사형 꿈으로


우리에겐 보험이나 로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꿈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이나 조직이나그 동사형 꿈을 지키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꿈이 없는 세상은, 그런 꿈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그런 꿈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은


망한다.

진짜다.


원문: 쉽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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