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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여전히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조회수 2018. 3. 2. 11: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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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여명이 밝아 오는 새벽이 되어 우린 텐트 문을 열었다.

1975년 늦가을, 친구의 입대를 앞두고 우리 넷은 여행을 떠났다. 야간열차가 멈춘 곳은 경북 봉화의 분천역이었다. 역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역무원이 등잔불을 들고 나온 모습이 생소해 웃음이 나왔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던 우리는 화전민 촌에 텐트를 쳤다. 근처에서 가게를 발견했는데,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으로 생필품만 팔았다. 


주인 할머니에게 산등성이에 텐트를 쳤다고 하자, 가끔 늑대가 나타나니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남자 체면에 늑대 따위는 무섭지 않다고 호기를 부렸으나 내심 불안했다.


텐트로 돌아오자 금세 날씨가 쌀쌀해졌다. 그때 술을 사러 간 친구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늑대 두 마리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밖을 내다봤더니 달빛 아래에 늑대 두 마리가 무서운 눈을 하고 있었다. 늑대를 눈앞에 두고 나는 야전삽을 움켜쥐었고 친구들 역시 주전자와 배낭을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초긴장 상태가 되다 보니 소변이 너무 마려웠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코펠에다 소변을 봤다.


몇 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채 다시 밖을 봤다. 늑대는 여전히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찌나 밤이 길던지. 마침내 여명이 밝아 오는 새벽이 되어 우린 텐트 문을 열었다. 맙소사! 우리가 본 것은 늑대가 아니라 흑염소였다. 맥이 풀린 우리는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날이 머릿속에 맴돈다.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임용호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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