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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한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조회수 2018. 3. 9. 18: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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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 못 버는 아버지는 죄인처럼 호주로 떠났다.

“아버지, 가시라고요. 제발!” 

1남 3녀 중 막내딸인 나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가족의 생사가 달린 일이라 생각하니 지금껏 무서워 눈도 마주치지 못한 아버지를 쏘아붙일 용기가 생겼다.


아버지가 열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양복 재단 일은 주머니를 두둑이 만들어 주는 고마운 기술이었다. 배우라 불려도 손색없는 외모에 음주 가무에도 능했던 아버지는 날마다 술 취해 집에 왔다. 그때마다 양손엔 과자가 한 가득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선물도 반갑지 않았다. 멋진 옷을 입고 큰 집에 사는 친구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못내 미웠다. 기성복에 밀려 더 이상 찾지 않는 재단사의 자식이란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결국 외할머니까지 설득해 세탁소로 업종을 바꿨지만 언제나 술만 먹으면 신세 한탄을 했다.


“내가 남 속옷을 빨아서라도 느그들…….”

그때마다 감사함보다 원망이 생긴 건 왜였을까. 엄마 역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꼬박 열두 시간 일하던 손은 습진으로 늘 빨갰다.


세탁소 일을 관두고 어떻게든 살아 보려 했던 아버지는 친한 친구가 사업실패로 건강이 나빠져 눈을 감자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날 이후 세상과 담을 쌓고 술에만 의지했다.


하루는 호주에서 양복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함께 일할 기술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제안이 들어왔지만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알파벳도 모르는데 어떻게 호주에서 혼자 살겠느냐.’며 망설였다. 참다못한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용기 내 보면 안 돼요? 고생하는 엄마나 우리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제발 가시라고요!”


결국 돈 못 버는 아버지는 죄인처럼 호주로 떠났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생활이 적적했던지 밤늦게 자주 전화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옷이 얼마나 인기인지 자랑하고, 생각보다 지낼 만하니 걱정 말라며 “No problem(문제없어).”이라 큰소리치기도 했다.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가 더 이상 싫지만은 않았다.


억지로 아버지 등을 떠밀어 보낸 후, 나는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말렸던 가족들에게 내 스스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오기가 솟았기 때문이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노라 증명하고 싶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했다.


어느 겨울, 일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서 삼십 분째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까지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먹고 살기가, 어른값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란 게 새삼 피부로 느껴졌다.


그제야 아버지가 떠올랐다. 수많은 실패와 실망을 묵묵히 견뎌 온 아버지에게 모진 말만 했던 못난 딸이었다. 아버지의 상처와 외로움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늘 부족하다고 투정 부린 철없던 지난날과 마주한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당신 역할을 다 한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낮에는 태양으로, 밤에는 달빛으로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송민경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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