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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으로 다가온 여름휴가, 어디로 갈까

조회수 2018. 6. 18. 16: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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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oblesse

21세기가 아닌 풍경, 오카야마현의 구라시키 미관지구

오카야마현은 일본을 꽤 다녔다는 이에게도 낯선 지역이다. 직항편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 현의 작은 도시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더 그렇다. 일본엔 오래된 주택이 잘 보존된 마을이 100곳 정도 있는데,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그중 가장 유명한 보존지구다. 


300년은 족히 넘은 주택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것도 멋지지만, 이곳에 더 빠지게 하는 건 옛 주택 사이로 흐르는 구라시키강일 거다. 푸른 기와집 지붕과 검은 까마귀가 잠시 목을 축이는 모습이 비치는 강. 목을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그림을 만드는 강. 강이 있어 이 작은 마을의 도자기와 직물, 종이, 술, 쌀, 복숭아 같은 특산품이 더 돋보인다. 


구라시키강을 따라 나룻배를 타면 걸을 땐 볼 수 없던 걸 보기도 한다. 창업 273년을 맞은 료칸 쓰루가타의 주인이 건물 밖에서 손님을 맞는 모습, 화장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의 여고생, 교복 셔츠 앞주머니에서 꺼낸 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남학생. 어딘가 21세기의 것이 아닌 듯한 풍경. 구라시키를 모를 수는 있어도, 한번 다녀온 그곳을 잊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운 그곳, 베이징

여름의 베이징은 그리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일단 너무 덥다. 7~8월의 화창한 날엔 최고 기온이 40°C에 육박하는데, 이럴 때 나무 한 그루 없는 자금성이나 천안문에 갔다간 일사병에 걸릴 수 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공기와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 택시 기사와 식당 종업원의 불친절함은 기본 옵션. 그런데도 에디터가 베이징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대학 유학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3년 차에 접어든 요즘, 가장 행복한 시기가 부모님 돈으로 공부하고 논 학창 시절임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그 어디보다 익숙한 베이징으로 떠나 소소한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려 한다. 우선 아침식사는 호텔 조식 대신 학교 가기 전 바오쯔(包子)와 젠빙(煎), 더우장(豆)과 쏸나이(酸) 등 간단한 요깃거리로 배를 채우던 추억을 되살리며 동네의 후미진 식당이나 노점상에서 해결할 것이다. 이어 모교인 베이징 대학교를 한바퀴 둘러볼 작정이다. 특히 교내의 인공 호수 웨이밍후(未名湖)는 과거 고관대작의 화원인 만큼 고즈넉한 매력을 자랑하며, 다른 관광지와 비교해 사람이 적고 조용해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학교를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다산쯔 798 예술구로 직행. 이곳은 1990년대에 폐허가 된 국영 공장 지역에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차리면서 형성된 복합 문화 예술 단지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갤러리보다 기념품 가게가 많은 상업 관광지가 된 지 오래지만, 중국 현대미술을 살짝 맛보고 독특한 선물을 사기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해가 지면 시원한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중국 현지에서 마시는 칭다오 맥주의 맛은 한국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커민을 듬뿍 뿌린 양꼬치나 각종 채소, 고기, 어묵을 꽂아 매콤한 마라 육수에 삶아 먹는 마라촨(麻辣串)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여행이 별건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새로운 장소가 아닌 그리운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고흐의 세계, 오베르쉬르우아즈

여행을 가기 전 여행 서적을 뒤적이곤 한다. 딱히 참고하는 건 아니지만 몸에 밴 습관이다. 1년 전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었을 때도 마찬가지. 온갖 책을 독파하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고흐의 마을이란 수식이 붙은 ‘오베르쉬르우아즈’.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한 인상파 작가도 아니었지만 그 이름에 끌려 오베르쉬르우아즈행 기차에 탑승했다. 


역에 도착한 순간 제대로 온 게 맞나 싶었다. 관광지일 거란 선입견을 품은 탓일까? 1유로짜리 엽서를 늘어놓은 기념품 가게가 나를 반길 줄 알았는데 한적한 시골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돌아갈 수도 없는 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베르 교회’가 나오고, 한쪽에는 까마귀가 날아다니던 ‘밀밭’이 펼쳐졌다. 다시 걸음을 옮기니 그의 정신적 동반자 ‘가셰 박사의 집’과 생을 마감한 ‘라부 여관’에 도착했다. 마지막 종착지는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 그제야 알았다. 마을은 고흐의 흔적을 보존하고자 했음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고즈넉한 시골은 이리 봐도 고흐, 저리 봐도 고흐였다. 곳곳에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과 자살을 선택한 격정적 인생이 녹아 있었다. 


‘실물이 낫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그의 정취는 그가 머문 그곳을 방문해야 느낄 수 있으니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무의미하다. 여행을 가면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편이다.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생가,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등 여러 곳을 가봤지만 오베르쉬르우아즈만큼 그 시절 그대로인 곳은 없었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고흐를 만날 것만 같다.

뉴욕병 치료하기, 뉴욕

대학 시절 친구들 사이에선 ‘유럽병’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방학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개학과 함께 유럽을 부르짖는 이 병의 치료법은 단 하나, 다시 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여행, 휴학, 유학 등 저마다 해결책을 찾곤 했다. 하지만 나는 졸업 후 오히려 더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름하여 뉴욕병이다. 6년 전 첫 여행에선 방을 얻어 무작정 3개월을 지냈다. 그다음은 한 달, 다음은 보름, 열흘 그리고 일주일. 현실에 쫓겨 뉴욕을 여행하는 기간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뉴욕과 나 사이는 1년을 넘기면 안 된다’는 규칙을 정하고 해를 넘기기가 무섭게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은 내 모든 취향을 만족시키는 도시다. 쏟아지는 공연과 전시, 아트 마켓 중심지다운 굵직한 옥션,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버거까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내 아웃렛에 가고, 모 카페에 가서 한국 지점에선 단종된 메뉴를 마시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는다. 포장해온 음식을 먹고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다 저녁 즈음 슬슬 나가 공연을 보는 일정은 순서만 바뀔 뿐 매일 똑같다. 


마지막으로 뉴욕 땅을 밟은 지 어언 2년이 되어가는데도, 편도 14시간에 육박하는 도시의 대안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이 병을 고치려면 다시 가는 방법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서 브로드웨이 최고 기대작이자 지난 3월 오픈한 뮤지컬 <겨울왕국>을 눈으로 확인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루프 가든에 올라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 제이지와 얼리샤 키스가 부른 ‘Empire State of Mind’의 노랫말처럼, “꿈으로 이뤄진 콘크리트 정글. 누구도 못할 게 없는(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g you can’t do)” 그곳, 뉴욕에 가고 싶다! 지금 당장!

골목의 정취, 베니스

동시대 미술의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취재하다 보니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베니스를 세 번이나 다녀오는 행운을 누렸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6월은 베니스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바다 위에 말뚝을 박아 만든 도시 베니스는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하며, 예고 없이 파란 하늘에서 흩뿌리는 여우비는 베니스의 운치를 그야말로 배가시킨다. 150개의 운하가 연결된 물의 도시지만 베니스를 더욱 베니스답게 만드는 건 물길로 이어진 아름다운 골목골목이다. 구글 지도조차 가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베니스의 골목길은 한마디로 보물 창고다. 화려한 색상의 무라노 유리공예와 정교한 종이공예를 만날 수 있는 공예품점, 빈티지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앤티크 조명을 파는 소품점, 형형색색의 파스타 면을 살 수 있는 식료품점, 절로 지갑을 열게 하는 매력적인 가면 판매점까지, 이방인을 유혹하는 갖가지 숍을 구경하다 보면 본래 가려던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잊을 정도. 


여기에 마지막 화룡점정은 구경하다 지쳐 고픈 배를 끌어안고 아무 파스타집이나 들어가 먹는 오징어 먹물 파스타다. 문득 지난해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게눈 감추듯 흡입한 먹물 파스타의 크리미한 식감이나의 혀끝을 무섭게 자극한다. 다시금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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