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에서 실종된 한 여성.

조회수 2018. 4. 3.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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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미스테리아>

2000년 7월, 한 여성이 도쿄 한복판에서 실종됐다. 이름은 루시 블랙맨이다. 스물한 살의 루시는 빚을 갚기 위해 영국에서 날아와 롯폰기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손님의 전화를 받고 나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도시 유흥업에 종사하던 사람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루시의 실종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다. 


그중 가장 섬뜩한 것은 루시가 사라진 다음날 어떤 남자가 루시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저는 다카기 아키라라고 합니다. 

(……) 

루시는 제 스승님을 따라 

신흥종교에 투신했으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출처: Lucie Blackman's family say they still don't know how she died 13 years after she was murdered

남자는 루시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과 그녀의 남자친구 이름, 그녀가 일하는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 루시가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신흥종교에 투신했다는 얘기도 기이했지만 남자가 끝끝내 루시를 바꿔주기를 거부했다는 것, 루시가 사라지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명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친구와 통화했다는 것 등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루시의 친구는 영국에 있는 루시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얼마 후 루시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 경찰의 무관심에 부닥친 가족은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정면 돌파를 결의한다. 도쿄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 것이다. 


루시 블랙맨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로 결심한 기자 리처드 로이드 패리. 그는 『어둠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논픽션을 발표한다.

『어둠을 먹는 사람들』의 저자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타임스》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루시 실종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다. (중략) 그는 루시가 종사했던 호스티스업의 기묘한 성격과 일본 풍속 산업의 구조에 흥미를 가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체와 여론에 의해 흥밋거리로 소비되는 루시 블랙맨이라는 인간을 온전히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패리는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루시의 가족과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루시의 유년기에서 실종 직전에 이르는 기록들을 꼼꼼히 수집한다. 이를 바탕으로 패리가 재구성하던 한 여성의 삶은 2001년 루시의 토막 사체가 발견됨으로써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루시를 살해한 범인, 오바라 조지.

루시를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내 암매장한 오바라 조지는 체포 당시 48세의 부동산업자였다.그가 실은 김성종이라는 이름의 재일 조선인 2세라는 사실을 알게 된 패리는 횡으로 뻗어가던 취재의 방향을 틀어 종으로 파고든다. 

패리는 차별과 편견에 짓눌린 재일 조선인들의 삶을 따라가고, 부산을 떠나 오사카에 도착한 김성종의 부모가 어떻게 부를 구축했는지 추적한다. 그리고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교육열에 짓눌리며 성장했음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재일 조선인 2세, 3세 일부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포착해낸다. (중략) 

재일 조선인 살인자와 영국인 호스티스의 인생을 연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자 한 리처드 로이드 패리의 시도는 성공했을까? 그는 종종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세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것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다 보니 이따금 책의 전개가 지나치게 산만해진다. 예를 들어 루시 부모의 불화나 수색 자원봉사자들의 불평, SM 동호회에 대한 인상, 저자 자신에게 가해진 우익 단체의 위협 등을 그토록 자세히 기술할 필요가 있었을까? 


패리는 루시의 아버지가 오바라로부터 배상금을 받은 것을 대중이 거세게 비난하자 앞장서서 블랙맨 가족을 변호하는데, 그런 태도도 지나친 개입으로 느껴진다. 


제목: 도쿄의 언더그라운드, 호스티스와 재일 조선인

글: 유진(편집자) / <미스테리아> 17호 

출처: 미스테리아17호
원글 출처: 미스테리아 17호
‘미스테리아’란?
국내 유일무이한 미스터리 전문 잡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를 결합한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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