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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처음엔 귀엽지 않았다?!

조회수 2017. 9. 21. 19: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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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전시 보기 전 알아두면 더 재밌는 몇 가지

하얗고 동글동글한 몸매, 

하마가 연상되는 사랑스러운 무민.


1945년 핀란드의 화가 토베 얀손에 의해 태어난 무민은 동화 시리즈 이후 만화, TV 시리즈는 물론 연극 무대에도 설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출처: 무민 가족과 친구들 @Moomin Characters

국내 포털 검색에 판매 중인 관련 상품만도 무려 165,633건에 달할 만큼 인기가 대단한데, 이를 반영하듯 9월부터는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최초로 무민 원화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펜화 등의 드로잉이 여러 점 선보였는데, 먹선 하나로 순간을 포착하고, 가느다란 선을 몇 번 긋는 것 만으로 캐릭터들의 표정을 표현해내는 토베 얀손의 작품들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무민을 단순한 캐릭터 상품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무려 70년이 넘는 역사와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무민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참에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민 세계를 만들어낸 토베 얀손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 알아보자.


# 뛰어난 예술가 토베 얀손


무민의 창조자 토베 얀손은 촉망받는 화가였다.

조각가인 아버지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걸음마도 떼기 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좌) 토베가 처음 출판한 책, 1933년
우) 토베가 만든 잡지 표지 일러스트, 1920년 대

그는 십대 때 이미 작품집을 발간했고, 열여섯 살 때 미술 유학을 떠나 화가의 꿈을 키웠으며, 

194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나무뿌리들 사이에서 잠들다>, 1930년대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비극과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그의 인생은 다르게 흘러간다.


토베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고, 전쟁중에도 스스로를 "먹물 기계"라고 한탄할 정도로 쉼없이 일해야 했다.

그럼에도 토베는 여성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 했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울란린낭카투의 새 화실에서 작업하는 토베

# 무민의 탄생


누구보다 재능 있고 열정적인 화가였던 토베 얀손은, 왜 무민 이야기를 쓴 걸까?


어쩌면 전쟁 덕분에 무민 가족을 만난 걸 수도 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토베는 무민 세계를 창조해 현실의 공포에서 숨곤 했다. 즉 무민 골짜기는 추악함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토베 본인도 이야기의 발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실은 화가이지만 1940년대 초,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는 너무 절망했던 나머지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밤중에 간식을 찾는 꼬마 토베를 겁주기 위해 외삼촌이 만들어낸 '무민트롤'이 무민의 전신이라고 알려졌는데, 때문인지 1930년대의 무민 캐릭터들는 무시무시했다.


토베는 그들을 밤의 어둠을 틈타 풀려난 기괴하고 무서운 존재로 묘사했다. 심지어 시커먼 몸통에 눈을 새빨갛고 비쩍 말랐으며 길쪽한 코가 달렸을 때도 많았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동네를 배회하는 검은 무민>, 1934년

그런 무민이 어떻게 지금의 둥그렇고 보드랍고 하얀 모습으로 변한 걸까?


1950년대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베는,

어느 날 부드럽고 하얀 눈이 나무 그루터기에 두텁게 쌓여 있는 한겨울 숲을 바라보다가 '커다랗고 둥그런 흰 코'처럼 늘어져 있는 그루터기들을 발견했다고 썼다.


이는 무민 코가 어쩌다 그런 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한 일화로 알려져있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무민 숲의 한 장면>, 1945년

# 미플들을 위한 동화


토베는 동화를 쓰면서 어린 시절, 엄마 옆에 딱 붙어서 안전하다고 느꼈던 기분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무민 동화가 현실 도피를 위해 쓰였다는 이유로 입방아에 올랐고 비판도 많았다. 당시에는 책에 어떤 메시지가 반드시 담겨야 했고  교육적이거나 교훈적인 의도가 없으면 꼭 뒷말이 나왔었다.


토베는 자신이 쓴 책에 어떠한 교육적 의도도 없다고 주저 없이 밝혔다.

재미있으라고 쓴 거예요. 가르치려고가 아니라요.

또한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는 어린이들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제 이야기가 특정 독자들을 염두에 뒀다면, 그건 아마도 미플들일 거예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딱지를 겨우겨우 뗀, 또는 그런 낙인을 애써 감추는 친구들이요.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무민트롤과 팅거미와 밥>, 1948년

# 무민 세계의 특별한 캐릭터들


무민 세계를 위해 창조한 모든 캐릭터에는 토베 자신의 일부가 담겨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는 데다 자연을 사랑하는 스너프킨에게서 토베를 발견한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스너프킨>, 1980년대 초 연극을 올리면서 그린 드로잉.

말을 돌려 하는 법이 없고 날카로운 혀로 진실을 말하곤 하는 꼬마 미도 많은 부분 토베와 닮았다.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이해심 많은 무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꼬마 미는 다른 캐릭터들에게 꼭 필요한 평형추 같은 존재다.

꼬마 미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쓸모 있어요. 무민 가족의 속수무책인 감성에 대응할 만한 뭔가가 필요했어요.

꼬마 미를 빼버리면, 무민 골짜기에는 끝없이 징징대는 캐릭터만 남을 거예요.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꼬마 미, 1954년

늘 붙어 있으려 하고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자기들만의 은어를 쓰는 팅거미와 밥은 각각 토베 자신과 당시 연인이었던 비비카 반들레르를 상징한다.


동성애자는 정신병원에 감금되거나 실형을 받을 수 있었던 당시 핀란드에서는 이들의 관계는 비밀에 부쳐야 했다.


무민 세계에서 팅거미와 밥이 몰래 들고 다니는 아름다운 루비는 그들의 사랑을 상징하며, 이들이 잔치에서 모두에게 루비를 공개하는 장면은 토베와 비비카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방식이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커다란 루비를 가지고 나타난 팅거미와 밥>, 1948년

투티키는 1957년 출간된 <무민 골짜기의 겨울>에 처음 등장한다.


토베와 툴리키 피에틸레의 관계가 막 시작됐을 무렵이었고,  이후 둘은 같이 작업하고, 의지하며 평생의 동반자로 지내게 된다.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좌로부터 투티키, 꼬마 미, 무민
<난로의 온기를 쬐며>, 1957년

투티키는 매우 남성적으로 생기긴 했지만 항상 '그녀'로 지칭된다.


이야기 속에서 지혜롭고 지적이며 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며, 겨울잠에서 홀로 깨어나 처음으로 눈과 얼음으로 덮인 세상을 만난 무민을 돕는다. 


늘 합리적인 투티키는 무민에게 자신의 인생 신조를 말해준다

모든 게 아주 불확실하다는 게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
출처: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글로브하룬 섬에서 무민 피겨를 만들고 있는 토베와 툴리키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일 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요.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이거야말로 정말 즐거운 일 아니겠어요?”
_<즐거운 무민 가족> 중에서
모험과 평화를 꿈꾸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무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바로 무민 골짜기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토베 얀손, 일과 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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