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서민과 화류계의 삶이 공존했던 그곳은 지금..

조회수 2017. 4. 26. 13:54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모든 게 경제입니다.

과거 소박한 서민의 삶과

화려한 화류계 삶이 공존했던

서울 종로 익선동 한옥골목.

출처: 롯데카드 블로그 캡처
청춘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 한옥골목!

옛스러움을 간직한 이곳에

최근 들어 셀카봉을 든 2030청춘과

임장(현장 답사를 의미하는

부동산 시장 용어)을 나온

40~60대 투자자들의

방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매경DB
활기찬 익선동 골목!

익선동 한옥골목을

찾는 건 쉽습니다.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면

생각지 못한 공간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출처: 매경DB
고깃집과 전집 등 기존 식당이 몰린 익선동 한옥 골목 초입.

허름한 가게들과 전통 한옥

어우러져 있는 게

마치 영화 세트장 같습니다.

출처: 매경DB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익선동.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최초의 부동산 개발자'로

통하는 독립운동가 정세권 씨가

익선동 일대를 조성했습니다.


종로통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던

정씨는 친일파에게서

익선동 건물과 땅을 사들여

골목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습니다.

출처: 매경DB
익선동 한옥마을 담벼락.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 정세권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900년대 초 익선동은

'요정 골목'으로 유명했습니다.


종로통을 휘어잡았다던

야인 김두한에 이어

제3공화국 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드나들던 단골집 오진암도

이 골목에 자리잡았습니다.

기생과 악사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옷맵시와 연주 솜씨를

책임지는 한복집과 악기점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요정을 드나들며

정치권을 엿보던 정객과

삶이 기구했던 기생들이

자신들의 앞날을 

궁금해했기 때문에

근처에 점집도 

둥지를 틀었습니다. 

출처: 매경DB
요정을 따라 의상실과 점집도 찾아든 익선동 풍경.

이랬던 익선동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한옥 보전 등을 이유로

개발계획을 부결한 후

3~4년 새 익선동 골목엔

'개성 있는 가게'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출처: 매경DB
한옥을 개조해 만든 개성 넘치는 가게들!

이들이 한옥을 개조해

빈티지한 멋을 자랑하는

맛집과 카페 등을 차리자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젊은 층의 발길도 늘었습니다.

출처: 매경DB
익선동 어느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맛집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도 올랐습니다.


오래되고 살기 불편해

월세가 불과 20만~30만원했던 한옥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임대료 100만원 선인

리모델링 한옥 가게로 변신했습니다. 

출처: 매경DB
곳곳에서 한옥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지는 익선동 골목 풍경.

그러자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 

출처: 매경DB
개발과 해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ing…

치솟은 땅값 때문에

기존 주민과 상가세입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예방·대응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출처: 매경DB
1920년대 개발된 익선동 한옥골목엔 기존 거주자와 관광객이 공존하고 있다.

관련기사: 100년간의 흔적이 뒤섞인 익선동 한옥촌의 매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