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불륜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조회수 2018. 3. 30. 17: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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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불륜과 코미디를 접목시킨 이병헌 감독의 ‘바람 바람 바람’은 사람의 그 나약한 본성을 코믹하게 비틀고 나름의 형벌까지 안긴다. 맥스무비와 만난 이병헌 감독은 “불륜이라는 단어 그 너머를 봐달라”고 밝혔다.
  

‘바람 바람 바람’의 원작인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리메이크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리메이크 제안을 받고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서와 너무 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도, 엔딩도 제가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에 ‘내가 할 영화는 아니구나’ 싶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 캐릭터들의 감정이 궁금했습니다.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비루해보였거든요. 원작은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라서 저는 감정에 충실해보기로 했습니다.


불륜의 이유는 대부분 ‘외로움’이라고 하죠. 외로워서 바람을 피우는 것에 납득이 가던가요?


납득은 가도 공감은 못했습니다. 저는 불륜이 법적 처벌의 테두리 밖에 있는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이 있잖아요. 사소하게는 길에 침을 뱉는다던지,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등 아주 하찮은 일탈에서도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다 나약함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고, 그걸 저지르는 사람들의 부정적 내면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이성민, 송지효 배우가 처음엔 이병헌 감독의 디렉션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생각의 차이가 있었습니까? 


두 가지 지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캐릭터들의 감정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음성의 높낮이 하나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보여서 제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더군요. 그 밸런스를 잡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틀린 부분도 많아서 현장에서 미세한 부분까지 조절해가면서 찍어야 했죠. 아마 배우들도 그 과정이 힘들었을 겁니다.


또 배우들은 상황에 감정에 맞게 연기를 해줬는데, 저는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리액션을 원했습니다. 과연 저 인물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관객이 계속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궁금증을 유지시키기 위한 독특한 지점들이 필요했죠. 처음에는 배우들이 ‘왜 이런 엉뚱한 디렉션을 하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도 촬영 2, 3회차부터는 금방 이해를 해줬어요.

불륜이라는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내는데 부담이 있었을 겁니다. 관객이 우선 이 불편한 소재에 마음을 열어야 웃음이 터질 테니까요.


각색을 처음 할 때부터 이런 부정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상당했습니다. 제 의도에서 벗어나는 해석의 가능성이 다른 장르보다 훨씬 높으니까요.


그럼에도 작업자 입장에서는 재밌는 모험이기도 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감정에 충실하고자 욕심을 많이 눌렀습니다. 웃겨보려고 작정하면 못할 거 뭐 있냐는 자신감도 있었지만,(웃음) 이 영화에서 웃기는 건 두 번째였습니다. 아무리 재밌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도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에서 벗어나면 차단했어요.


일각에는 불륜 미화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관객이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투자사도 뭐 하러 부정적 소재를 미화하겠다고 수십억을 들이겠어요.(웃음)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계속 피력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해석은 관객의 몫이기에 비난도 감수해야겠죠.


각색 과정에서 고려한 ‘한국적 정서’라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적인 정서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한국 사람은 바람을 안 피우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불륜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부정적 일탈이 존재할 거예요. 그래서 이 작품이 한국적 정서와 그리 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원작보다는 수위를 낮췄죠. 원작은 사위와 장인이 주인공인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그건 좀 심하죠.(웃음)

기혼자들의 이야기라 1020 세대의 공감을 얻기는 좀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비혼 장려 영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요.(웃음)  


비혼 장려라니,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웃음) 물론 결혼의 정서를 모르면 재미가 없겠죠. 그렇다고 굳이 젊은 세대의 구미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기혼자들을 메인 타겟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지금도 배우들과 “3, 40대 관객들이 영화보러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혼자들은 과연 얼마나 공감할까요?


주변 반응으로만 보자면 ‘절대 공감’입니다. 누군가는 ‘힐링 영화’라고 그랬는데 그 말 듣고 되게 슬펐어요. 바람피우는 게 힐링이라니. 이 소재가 가진 특성 같습니다. 공감 간다는 사실 자체가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 만든 사람으로서 반응이 좋으면 저도 좋긴한데 동시에 애잔해요. 상쾌하게 좋아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특별히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몇 안 되는 이 사람들을 퇴로 없는 공간에 몰아넣고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습니다. 또 우리나라 정서와 좀 거리가 있는 이국적인 공간을 찾다보니 제주도가 떠올랐죠. 사실 원했던 그림은 제주도의 차가운 겨울이었어요. 이야기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주도라고 하면 다들 예쁜 풍광만 생각하지만, 제가 직접 느낀 제주도는 그렇지 않았던 영향도 있고요. 그런데 촬영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그 겨울을 담지 못해서 아쉬워요.

관객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해석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지만 그래도 불륜이라는 단어 하나만 놓고 이 영화를 바라보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극중 할아버지와 꼬마가 등장해서 상황을 조롱하듯이 바라보는 시선도 있거든요. 남자 혹은 여자로 구분하기보다는 그냥 사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약한 본성, 그로 인한 허무함과 연민까지 폭넓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기작에서도 내면의 불편한 욕망을 이야기하실 계획인가요? 코미디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바람 바람 바람’을 찍으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고생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감정이 달라지니 신경쓸 게 너무 많아서 한숨도 못 잤어요. 숙소에 돌아가면 어마어마한 자괴감에 시달리곤 했죠. 그래서 다음 작품은 감정보다 상황에 집중한 코미디를 하고 싶습니다. 무섭고 잔인한 걸 잘 못 봐요. 공포영화에 도전해보려고 시놉시스를 한 번 써봤는데, 하루종일 무서웠어요.(웃음) 제가 코미디 장르를 워낙 좋아해서 또 하고 싶어요.


글 차지수 기자 | 사진 시티카메라 (니콜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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