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대인기피증 앓던 기자가 찾은 의외의 직업

조회수 2020. 9. 23. 16:2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우울증 앓던 외신 기자가 도전한 '웃기는 직업'

지난 3월, 뉴욕의 작은 코미디 클럽(코미디 공연을 하는 클럽) 무대에 한 한국 여성이 올랐다. 외신기자이자 통·번역가, 사업가였던 최정윤(33)씨다. 별다른 소품 없이 마이크 하나만 들고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다. 상황을 설정해 연기하는 콩트와 달리 재미있는 일화나 농담으로 관객을 웃기는 미국식 코미디의 한 종류다. 최씨가 농담을 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약 서른명. 그중 하나인 최씨를 만나 도전기를 들었다. 

출처: 최정윤씨 제공
최정윤씨

외톨이 유학생의 유일한 낙


- 언제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심을 가졌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워싱턴에 갔다. 전교생 1600명 중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 외로웠다. 대학생 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증세가 심해졌다. 그때 유튜브로 우연히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봤다. 당당한 태도로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웃기는 게 부러웠다. 유튜브와 DVD로 코미디 쇼를 보는 게 사는 낙이었다.”


-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안 했나.

“힘들어도 미국에서 대학까지 다니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부모님이 무리해 유학을 보내주신 거라 포기할 수 없었다. 워싱턴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 라디오 방송국 인턴으로 들어갔다. 계약기간을 채우고 바로 한국으로 왔다.”


-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나.

“귀국해서 아리랑TV 번역작가로 일했다. 2011년 LA타임스 한국지사 기자, 2014년 AP통신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나쁜 직장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기획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전부터 꿈꿨던 사업에 2015년 도전했다.”


- 사업 성과는 좋았나.

“차린 지 열 달 만에 강남 신사동에 2호점을 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소개로 만난 공동 창업자와 마음도 잘 맞았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될수록 운영에 치여 새로운 기획을 할 기회가 줄었다. 2017년 사업을 그만두고 통역과 번역으로 돈을 벌었다.”

출처: 최정윤씨 제공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최정윤씨

사업으로 자신감 찾아 코미디언 시작해


- 스탠드업 코미디 시작한 이유는.

“사업을 그만두고 잠시 여행을 떠났다. 창의적인 일을 생각하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떠올랐다. 대학생 때부터 막연히 ‘난 절대 못할 거야’라며 도전할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사업으로 자신감이 생긴 뒤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담은 원맨쇼를 기획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유병재씨가 2017년 ‘블랙코미디’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열었다. 공연 장면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했고, 유튜브 영상은 9개월 만에 조회 수 350만을 넘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찾는 사람이 늘자 해보고 직접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 첫 무대는 어디였나.

“작년 11월부터 홍대 근처 공연장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쇼가 작게 열렸다. 원하는 사람에겐 스탭들과 회의를 거쳐 공연 전에 무대에 설 시간을 5분씩 줬다. 지난 2월 이 소식을 듣고 대본을 준비해 무대에 올랐다. 긴장해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간간이 들었던 웃음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관객 중엔 유병재씨도 있었다. 끝나고 '잘 봤다'며 악수를 청해주셨다.”

출처: 최정윤씨 제공
(왼쪽) 코미디 셀라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 미국 코미디 클럽 무대엔 어떻게 올랐나.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걸음마 단계다.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취재한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3월부터 두 달간 뉴욕 유명 코미디 클럽 ‘코미디 셀라(Comedy Cellar)’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배웠다. 서른 번 정도 무대에 서면서 유명 코미디언들과 지망생들을 인터뷰했다. 취재한 내용으로 책 ‘스탠드업 나우 뉴욕’을 지난 5월에 냈다.”


정상에 선 코미디언도 신인처럼 연습


- 미국에서 느낀 게 있다면.

“작은 코미디 클럽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Amy Schumer)가 예고 없이 무대에 올랐다. 작년 수익이 약 3700만달러(약 400억원)인 톱스타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의 주연이기도 하다. 슈머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준비한 농담을 던지고 관객 반응을 본 뒤에 내려갔다. 유명 코미디언도 새로 준비한 농담이 재밌는지 보려고 신인과 같은 무대에 선다고 한다. 인기를 얻어도 겸손하고 성실하게 아이디어를 준비하는 게 인상 깊었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혼자서 한 시간이 넘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하는 것.”


- 국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궁금하다.

“홍대에서 열리는 코미디 쇼에 가면 준비한 약 70석이 가득 찬다. 얼마 전엔 100석 짜리 공연장에서 쇼를 열었는데 표가 다 팔렸다. 유명 코미디언들도 동참한다. 6월 22일부터 김대희씨, 김준현씨 등이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연다고 들었다.”

출처: 최정윤씨 제공
공연을 보러 온 남희석씨와 최정윤씨

-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대에 선 경력이 짧아 코미디언 선배가 아닌 관련 책을 쓴 저자로서 조언하겠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관객의 평가만 받는다. 선배 코미디언이나 PD, 방송작가 등 주변 사람의 반응은 중요치 않다. 주위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은 신경 쓰지 말자. 1분에 평균 몇 번을 웃겼는지 세 보는 게 더 낫다. 나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다 같이 견디면서 성장하면 좋겠다.


이건 실전 팁이다. 처음 무대에 오른 사람은 마이크 스탠드의 아래쪽을 잡는 게 좋다. 위를 잡으면 팔이 흔들린다. 그러면 공연하는 내내 불편해서 자세를 바꾼다. 이 모습이 객석에선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