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압정'이었어요".. 돌아온 '광수생각' 박광수의 고백

조회수 2020. 9. 22. 20: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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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으로 돌아온 박광수
‘광수생각’으로 돌아온 박광수

《민낯》이라는 책이 있다. 박광수 작가가 낸 24권의 단행본 중 가장 덜 알려진 책에 속한다. 대중에게는 선택받지 못했지만, 박 작가 본인은 이 책에 가장 애착이 깊다. 《민낯》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집요하게 묻는 책이다. 28세의 화장로 기사, 32세의 아트디렉터, 41세의 몽골학 박사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들에게 “당신에게 행복은 도대체 뭔가요?” 묻고 또 묻는다.


쉽지 않았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곰곰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그것도 ‘언어’를 매개로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겠다는 포부는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파고들었다. 많게는 한 사람을 열 번 만나 인터뷰했다.


어쩌면 박광수 본인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에야 ‘소확행’이니 뭐니 하지만 박광수는 50년 내내 소확행을 추구해왔다. 자신은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 도대체 행복이란 뭔지, 행복에 실체가 있기나 한지 물어도 물어도 끝이 없었다. 대개는 나이 들면서 뻔한 질문을 잊고 살지만 그는 아니다. 박광수의 행복 탐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탐구 과정을 이달부터 topclass에 ‘광수생각’ 연재로 담는다. 이를 빌미로 그를 만나 또 한 번 행복에 관해 물었다.


#1 다름이라는 병


그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다름은 여러 개의 속성을 지닌다. 특별함이기도 하지만 이상함이기도 하다. 각도만 약간 틀면 틀림으로도 보인다. 박광수에게 다름은 아픔이자 질병에 가까웠다. 혹자는 ‘난 남들과 달라’를 자부심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아니었다.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는 그를 끈덕지게 괴롭혔고, 스스로를 다수로부터 소외시켰다. 그의 시선은 점점 내면을 파고들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놈 취급했어요. ‘쟤는 도대체 왜 저러지?’ 하는. 어릴 때에는 공부 못해서 선생님한테 늘 혼나던 아이였고, 꿈이 없었어요. ‘나는 커서 뭐가 될까?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하며 스스로 시정잡배 같다고 생각했죠. 대학 가서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꿨고, 만화가가 되면서 자존감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사람, 특이한 사람이라는 시선은 여전했어요. ‘이런 성격, 이런 성질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위 정상적인 사람, 많은 사람이 바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 지금은 목표가 바뀌었어요. 건강한 노인이 되는 것! 살을 빼고 있어요.”


#2 부모님이 아프다

‘건강한 노인 되기’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생긴 건 부모님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8년째 치매를 앓고 있고, 건강하던 아버지마저 올 초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4형제 중 막내인 그는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에게 부모님은 세상의 유일무이한 안식처였다. 부모는 그저 품어주었다. 뾰족하고 모나도, 이상하고 특이해도 그 모양 그대로 괜찮다고 감싸주었다. 그런 부모에게 찾아온 지병은 세상의 반쪽이 날아가버린 듯한 재앙이었다. 부모님이 아프면서 늘 보던 풍경, 늘 보던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저는 압정 같은 사람이었어요.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엄마가 자신의 몸에 저를 꽂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안 다치게 했죠. 엄마가 아니었으면 건달처럼 살았을 거예요. 유도와 권투를 해서 호전적인 데다가 자기 감정을 잘 안 감추고 살다보니 잡음이 많이 생겼거든요. 엄마가 안 계셨으면 사람 노릇 못 했을 거예요. 부모님이 젊으셨을 때 저는 나밖에 몰랐어요. 지금은 오늘 하루도 무탈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요. 아무 일 없는 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죠. 엄마 뵈러 병원에 자주 가요. 비록 나를 못 알아보시지만. 엄마가 아프신 후 환했던 세상이 스위치를 내리고 불이 꺼진 느낌이에요.”


#3 나를 바꾼 결정적 순간들

그의 촉수는 뾰족하고 예민하다. 게다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남들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확 다가와 잠 못 들 정도로 괴롭히기도 하고, 별 생각 없이 내뱉은 타인의 그저 그런 한마디가 바늘이 되어 심장을 콕콕 쑤셔대기도 한다. 사건과 환경을 대하는 온도도 그렇다. 남들은 ‘그렇구나’ 하는 순간들이 그의 가슴 정중앙을 파고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백팔십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엄마의 치매, 또 한 번은 대구지하철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일이에요. 사람들은 작은 권력이 있으면 그 권력을 쓰고 싶어 하잖아요. 저에겐 당시 연재 지면이라는 권력이 있었고, 그 권력을 남용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를 뒤흔드는 이슈가 생기면 ‘내 논조가 틀리지 않을까, 이 글로 상처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요. 그렇다고 이슈를 외면할 수는 없고. 논조를 고민하다가 대구지하철 참사 셋째 날 현장을 가서 보기로 했어요. 지하 1층 아케이드에서는 장사를 하고 있고, 지하 2층 역사로 내려가는 길은 새카만 그을음으로 가득 찼더군요. 쭉 보다가 한 장면에 시선이 고정됐어요. 영정사진 대신 가져다 놓은 문자 메시지 사진.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요’라는, 예비 신부가 예비 신랑에게 보낸 내용이었어요.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것 같아요. 먹먹했어요. 당시 제 주변인들은 다 젊었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은 잘 안 했는데, 그 문자를 보고 어쩌면 오늘이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주변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자기표현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엄마한테는 원래 잘 했고, 아버지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어요.”


#4 성공요? 다 구라예요

지금 그는 두 권의 책을 집필 중이다. 한 권은 엄마에 관한 책, 또 한 권은 ‘참 잘했어요’라는 제목의 책이다. 엄마에 대한 책 제목은 미정이고, 후자 책의 부제는 ‘미운 오리새끼들에게’다. 그는 일기 쓰듯 책을 쓸 때가 많다. 그 안의 아픔과 고민을 꺼내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이번 책을 통해서 그는 ‘네가 미운 오리여도 괜찮아. 이만큼 와도 많이 온 거야’라는 위로를 새겼다. 고백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책은 울림이 크다. 진솔함이 주는 힘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독자층은 폭넓다. 2030세대부터 4050세대까지 아우른다. 20년 넘게 유명 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그는 헛된 성공에 매혹되지 않는다. 늘 흔들리고 의심하고 고민한다.


“세상에는 완전히 나쁜 일도, 완전히 좋은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알려져서 나쁜 일도 많아요. 또 과거보다 인기가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저로선 이 정도가 딱이에요. 인터넷에 저에 대한 허위 비방 글이 난무한데, 하나하나 대응할까 하다가 그냥 뒀어요.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오히려 회복할 여지가 많거든요. 이런저런 경험 끝에 깨달은 게 있어요. 성공은 운이라는. 그래서 강연회에 가서 강연할 때 이렇게 말해요. ‘강연회 쫓아다니면서 듣지 마세요.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운인데, 운에 대해 할 말이 없으니까 대부분 구라를 치고 있어요. 대신 동네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들으세요. 그 실패를 피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5 행복이라는 자기 최면

왼쪽 가슴에 새긴 명찰 ‘69년생 박광수’. 아내가 손바느질로 해주었다.

6년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의 엄마가 치매에 걸린 지 7개월 되던 시기였다. 우울하고 슬픈 기운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을 말하고 있었다. 퍼붓는 질문에 다박다박 답하던 그가 불현듯 물었다. “기자님은 언제 행복하세요?” 우물쭈물 답을 못 하다가 거꾸로 물었다. “박 작가님은요?” 그는 준비된 듯 답했다. “야구할 때, 만화책 보면서 라면 먹을 때, 엄마를 꼭 안아줄 때….” 열 가지는 답했다. 그가 천착한 주제는 내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행복한 삶이 잘 사는 삶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떨 때 행복한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해요. 로또에 당첨되길 원하는 사람은 로또를 사야 하듯 내가 행복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행복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잘 안 하는데, 딱 한 가지만 얘기해요. ‘아빠는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아빠는 행복하고,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다르니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이 딱 와 있는 것 같거든요. ‘나는 행복하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죠.”


글 jobsN 김민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김선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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