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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운동선수 아닙니다…‘오뚝이’ 그녀의 새 직업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승희의 다음 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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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N 작성일자2018.05.24. | 183,26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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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스케이트 국가대표 박승희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출전
디자이너로 새로운 도전

‘올림픽 쇼트트랙 전 종목 메달 획득, 여자 쇼트트랙 사상 최초 세계대회 500m 금메달, 국내 최초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두 종목 올림픽 출전’


한국 빙상계에 많은 기록을 남긴 선수가 있다. 바로 전 국가대표 박승희(26)선수다. 만 15세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데뷔해 11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했다. 2010년 소피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1000m, 3000m 계주 금메달, 2014 몬트리올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500m 금메달 등 그가 지금까지 딴 메달은 셀 수가 없다.


실력은 물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투지로 국민들을 웃기고 울렸던 선수다. 그런 그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스케이트를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jobsN이 박승희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박승희

출처 : jobsN

피겨스케이팅 만화 때문에 시작한 운동


박승희의 엄마는 피겨스케이팅 만화에 감명을 받아 딸을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키우고 싶었다. 마침 학교 방과 후 활동에 빙상부가 있는 것을 알고 첫째 딸 박승주와 둘째 딸 박승희를 등록했다. 피겨 스케이팅을 배울 줄 알았던 엄마의 바람과 달리 빙상부에는 피겨 스케이팅반이 없었고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반만 있었다. 그렇게 그는 쇼트트랙 스케이트를 신었다. 2년 뒤 남동생 박세영도 합류하면서 삼 남매 모두 스케이트를 탔다.


어렸을 땐 스케이트를 타고 싶으면 타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어서 재밌었다. 박 남매는 스케이팅을 즐겼고 빠르게 배웠다. 이를 본 선생님은 어머님께 선수를 제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 타던 것을 3번 탈 수 있다고 하시니까 마냥 좋았죠. 좋은 건 잠시뿐이었어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니 힘들었습니다. 그때부턴 쉬고 싶어도 못 쉬었으니까요."


훈련은 힘들었지만 성적은 좋았다. 단거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생 때 나간 쇼트트랙 500m에서 46.020초로 결승선에 골인해 초, 중, 고는 물론 대학부, 실업부의 기록을 갈아 치우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겸했지만 6학년 때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중 선택을 해야 했다. 박승희는 혼자 달리는 것이 싫어 쇼트트랙을 골랐다. 엄마 덕분에 시작한 운동이고 힘들기도 했지만 목표를 정했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스케이트를 탔다.

박승희의 어린 시절(좌), 벤쿠버 올림픽 당시 모습(우)

출처 : 방송화면 캡처, 조선DB

만 15세 때 국가대표로..밴쿠버 올림픽 출전


만 15세 때 처음으로 2007~2008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총 3차까지 열린다. 종합 1위부터 6위까지 그해 국가대표로 활동한다. 당시 박승희는 종합 3위에 올라 국가대표로 뽑혔다.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뛴 2007~2008 월드컵에서 출전 전 종목(500m, 1000m, 1500m) 메달을 획득했다. 국가대표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어 2009~2010시즌에도 국가대표로 뽑혀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1000m와 1500m에서 동메달을 땄다.


어린 나이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했지만 슬럼프에 빠졌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대회를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밴쿠버만 보면서 훈련을 하고 경기에 임했는데 한순간에 끝나버리니까 허무하더군요. 다시 목표 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이 운동하던 언니와 동생이 힘이 됐습니다. 사실 밴쿠버 올림픽 때 언니도 국가대표였는데 선발전 이후 부상을 당해 같이 못 갔어요. 다음 목표는 2014 소치 올림픽에 삼 남매가 함께 참가하는 것으로 정했죠. 500m 금메달도 탐났습니다.”


소치에 가기 위해 재활에 힘썼고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당시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그와 부딪히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왕멍 선수였다. 왕멍은 당시 과격한 플레이로 유명했다. 2013년 데브레첸 세계선수권 슈퍼파이널에서는 박승희를 대놓고 밀기도 했다. 2014년 토리노 월드컵에서는 왕멍과의 신경전이 카메라에 잡혔다.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습니다.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당하는 게 싫어서 반칙한 선수에게 손으로 잡지 말라고 했어요. 그걸 본 왕멍이 끼어들었죠. 사실 각자 언어로 말해서 뭐라고 하는지는 못알아 듣고 화났다는 느낌만 전해요. 그 이후로 경기에서 반칙이 안 통할 만큼 똑똑하게 이겨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오히려 고마운 선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이기고 싶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삼 남매 함께 출전한 올림픽과 마지막 올림픽


박승희와 남동생 박세영이 2013~2014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어 언니 박승주까지 모두 국가대표로 뽑혀 소치 올림픽에 함께 갔다. 첫 번째 목표는 이뤘지만 500m에서는 넘어지면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무릎 안쪽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까지 당해 1500m는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압박붕대를 감고 출전한 1000m 경기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00m의 아쉬움은 2014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만회했다. 여자 선수로는 한국 최초였다.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계획대로 은퇴하려고 했는데 문득 초등학교 때 타던 클랩스케이트(스피드 스케이팅 전용 스케이트)를 타고 싶었어요. 훈련을 받고 한 달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어요. 떨어지면 그만 타려고 했는데 덜컥 국가대표로 뽑혔습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타기 시작했어요.”


2014년 10월 공식적으로 스피드 스케이트 전향을 발표했다. ‘미쳤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반응과 ‘도전 자체가 멋있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박승희는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평창 동계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훈련에 임했다.


2017~2018시즌 선발전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1000m 출전권을 따내 한국 빙상 최초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두 종목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8년 2월 14일 평창 스피드 스케이팅 트랙을 1분 16초 11로 통과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레이스를 마치고 나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에게 미안함, 쇼트트랙에 대한 후회, 끝났다는 후련함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전향했을 때 ‘너는 잘 탈 거다’라고 해준 (노)진규 생각도 났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에 참가한 박승희(좌), 경기가 끝난 뒤 SNS에 올린 글(우)

출처 : 조선DB, 박승희 인스타그램 캡처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발걸음


평창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 박승희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디자이너를 준비 중이다. 스케이트를 신기 전 그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 아니면 푸드 스타일리스트였다. 워낙 미술과 만들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중학생 때는 시대를 앞서가는 옷을 사입기도 했다. 직접 만들어서도 입고 싶었지만 빡빡한 훈련일정으로 시간이 나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했다. 지난 4월, 휴가 겸 안목을 넓히기 위해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주위 디자이너분들이 유럽에서 영감을 받으면 좋다고 말해줬어요. 건축물이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색을 주의 깊게 봤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었죠. 나중에 작업할 때 도움을 받을 거예요. 그동안 스케이트장 안에서 결승선만 봤다면 넓은 곳에서 안목을 넓힐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패션 학교에서 입학 제안을 받기도 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검토 중이라고 한다. 패션 디자인 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같은 미술 쪽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17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미뤄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 지 고민 중이다. 6월까지는 휴식을 취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반짝였다.

일상 모습

출처 : 박승희 인스타그램 캡처

“17년 동안 경쟁 속에서 살았습니다. 등수가 중요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에겐 바로 미술과 패션입니다. 미술과 패션을 종합해 2년 정도 공부해보고 더 좋아하고 재밌는 일을 할 겁니다. 나중엔 저만의 패션 브랜드를 런칭해보고 싶어요. 옷 브랜드가 될지, 신발이나 가방이 될지 모르겠지만 꼭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끝으로 스케이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소치올림픽이 끝나고 해설위원을 해보라는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이후에도 불러주신다면 쇼트트랙 해설은 하고 싶어요. 코치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여자 선생님 밑에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정신적인 부분에서 아이들을 관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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