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생겼어요" 요즘 당뇨 환자들 사이에서 난리난 곳

조회수 2020. 9. 21. 17: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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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라고 맛없는 음식만 먹으라는 법 있나요?"
당뇨병 환자라고 맛없는 음식만 먹으라는 법 있나요?

스타트업 ‘닥터키친’ 박재연(42) 대표는 “당뇨인에게도 먹는 즐거움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7월 설립된 닥터키친은 요즘 식이 조절을 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 사이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식품회사’다. 

출처: 닥터키친 제공
닥터키친 박재연 대표

당뇨 환자들은 당분과 염분이 적은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든 사람들은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닥터키친은 건강하면서도 비교적 맛있는 당뇨식을 반(半)조리 형태로 배달해 준다. 당뇨를 앓는 주부 박모(34)씨는 “당뇨 확진 판정을 받고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을 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닥터키친을 접하고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6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당뇨는 암(癌),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에 이어 사망원인 6위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은 국내 당뇨병 환자 수를 270만명(2016년 기준) 정도로 추산한다. 의학계는 당뇨 확진 전 단계인 고위험군까지 포함하는 국내 당뇨 위험 인구를 1000만명 이상으로 본다. 박 대표는 “단순히 당뇨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건강한 음식문화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봉 수억원 받던 그가 창업한 이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 3대 컨설팅 회사 중 하나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효성 전략본부 경영혁신팀장을 거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에서 ‘디렉터’로 활약했다. PEF가 투자한 회사에 경영 담당 임원으로 합류해 회사의 경영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 한해 연봉으로 몇 억원씩을 받던 그가 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을까.

출처: jobsN
박재연 대표

“대학 때부터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컨설팅하고, 투자하고, 경영하면서 경력을 그런 쪽으로 쌓아오기도 했고요. 마흔이 될 무렵 ‘이제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은 느리고 투박하고, 발전이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발전이 더딘 분야에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컨설턴트 시절 식음료(F&B), 의료분야 기업들과 함께 일한 경험도 있어서 창업 아이템을 식음료로 잡았습니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식음료 중에서도 당뇨인을 위한 특별한 음식이다. “외삼촌이 당뇨 환자예요. 가족 모임 때마다 외삼촌을 배려해서 음식을 골라야 했어요. 가족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데, 외삼촌을 배려하느라 포기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외삼촌은 또 자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괜히 번거롭다며 부담스러워하셨어요. 즐거워야 할 가족 모임이 피곤한 일로 변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사업 아이템을 이쪽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맛없는 음식으론 식이요법 지속 못해


닥터키친은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로 단맛을 내고, 혈당에 좋지 않은 백미(白米)와 밀가루를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혈당을 높이는 탄수화물을 63% 이상 줄였다. 국내외 논문을 뒤지고, 병원 의료진의 조언을 받아 최적의 재료를 엄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쉐라톤워커힐, JW메리어트, 롯데호텔 등 유명 호텔 셰프와 협업했다. “당뇨 환자가 식이요법을 포기하는 이유는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맛이 없어서는 절대 식이요법을 계속할 수 없어요. 건강도 좋지만, 맛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했죠.” 충무김밥과 우동, 돼지고기 장칼국수, 단호박갈비찜, 다방커피 등 400개가 넘는 메뉴를 이렇게 만들었다.

출처: 닥터키친 홈페이지 캡처
돼지고기 장칼국수(좌), 충무김밥과 우동(우)

“지금에야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렸고, 병원이나 쉐프와 협업도 원활하게 잘 되고 있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유명한 쉐프나 의사들은 제가 찾아가서 같이 음식 만들자고 하면, ‘저 사람 뭐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듣보잡’이잖아요. 여러 번 찾아가고, 같이 해보자고 사정사정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맨땅에 헤딩’하는 스타트업 경영도 전혀 다른 일이었다.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가 챙겨야 하는 스타트업은 다를 수밖에요. 직원들 월급 날이 다가오면 ‘월급은 어떻게 줄까’로 고민하는 날도 많았죠. 그리고 ‘돈 많은 회사에서 경영만 하던 사람이 배고픈 스타트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도 괴로웠습니다. 그럴수록 제가 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어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논문을 보고, 수십번씩 음식을 새로 만들고 맛보고 하면서 버텼죠.”

출처: 닥터키친 홈페이지 캡처
차돌박이된장(좌), 규동(우)

2016년 정식 서비스 시작 뒤 닥터키친은 매 분기 30~40%대의 매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안정적인 성장의 배경으로 ‘신뢰’를 꼽았다. “기존에도 당뇨식을 판매하는 회사는 많았어요. 저염식 다이어트 도시락 배달 업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저희처럼 직접 식단을 연구·개발하고, 대학들과 임상시험까지 한 곳은 없었습니다.”


닥터키친은 하루에 한 끼를 먹을 것인지, 두 끼를 먹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일주일에 4일을 먹을 것인지, 7일을 먹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옵션에 따라 한 끼당 8500~1만2000원 가량인데, 지금까지 총 25만끼 이상을 판매했다. 누적 투자 금액도 50억원에 이른다.


“당뇨식은 꼭 해야할 숙제를 먼저하는 것일 뿐”


그는 “당뇨 환자식은 꼭 해야할 숙제를 미루지 않고 가장 먼저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닥터키친의 목표는 단순히 건강식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조금더 생각해보면 환자식은 사실 건강식이고 미용식이기도 합니다. 밸런스를 잘 맞춘 검증된 음식이죠. 다만 맛이 없다는 편견 때문에 아파야 먹기 시작하는 것이죠. 저희는 건강식은 '맛없다'는 편견을 우선 없애고 싶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맛있게 먹어도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리고 싶은 겁니다."

조리법이 적힌 '레시피카드'가 함께 배송되는데, 여기엔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곱빼기 만드는 팁이 적혀있다

닥터키친의 음식과 함께 배달되는 ‘조리법’에도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닥터키친의 조리설명서에는 ‘곱빼기 만들기 팁’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닥터키친이 제공한 재료에다 집에 있는 재료를 더해 2인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닥터키친으로 해결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과 건강한 음식을 나누라는 뜻이라는 게 박 대표의 얘기다.


같은 선상에서 닥터키친은 그간 연구·개발했던 음식 레시피를 엮어 조만간 책으로 낼 예정이다.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든 레시피를 공개하는 게 왜 부담이 없겠습니까만, 음식 때문에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식당에서도 이를 활용해서 메뉴를 만드는 거죠. 그런 곳에서 가족 모임을 하면, 당뇨 환자나 다른 가족도 모두 행복할 수 있겠죠. 맛있게 먹어도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음식을 끊임없이 연구하겠습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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