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안 좋아하는 청년, 유명 떡집에서 24시간 알바 해보니

조회수 2020. 9. 23. 15: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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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한 떡 비닐이 풀릴 땐 '멘붕'
설 전 24시간 직접 떡집 ‘알바’ 해보니…
알바가 할 수 있는 일, 많지 않아도 결정적
포장한 떡 비닐이 풀릴 땐 ‘멘붕’

바야흐로 설이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도 한살 더 먹는다. 차례상 올리는 떡, 고향을 찾아온 꼬마들이 좋아하는 바람떡, 꿀떡도 있다. 설 전 몰려드는 주문에 전국의 떡집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일손이 달리니 단기 알바를 모집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는 용돈을 마련하고자 설 전 급히 모집하는 떡집 단기 알바에 도전했다. 맛있다고 소문나 숨 쉴 틈 없이 바쁘다는 한 떡집에서 지난 12일, 13일 양일간 총 24시간을 일했다.


떡을 좋아하지 않는 떡집 알바는 당황했다

필자의 주요 업무는 스티로폼 접시에 담긴 떡을 랩으로 싸는 일이었다.

13일 오전 7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전북 정읍 샘고을 시장의 한 유명 떡집에 ‘출근’했다. 벌써 6명의 직원이 각자 떡을 빚고, 찌고, 포장하고 있었다. 해가 뜬 직후 몰려들 주문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조심스레 인사하며 들어가자 한 직원이 앞치마부터 건넸다. 필자의 임무는 포장이란다. 스티로폼 접시에 담긴 떡을 랩으로 싸는 법을 배웠다. 랩 포장에 능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알바 첫 날인 12일 오전, 필자의 손을 거쳐 판매대에 오른 상당수의 떡은 손님이 집자 비닐이 풀려 속살을 노출했다. 이를 본 사장님이 재빠르게 필자가 싼 떡을 거둬들여 운 좋게 위기는 넘겼다. 그날 오후 1시가 돼서야 랩 포장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됐다. ‘자주 떡을 사 먹었으면 좀 더 빨리 배웠으리라.’


당황스러운 상황은 또 있었다. “멥쌀 시루떡은 어디 있나요?” “이 절편 안에는 뭐가 들었죠?” “이 정도 떡 양이면, 떡국 몇 인분이 나올까요?” “이번 차례에는 무슨 떡을 올리면 될까요?” 손님이 찾아와 떡 이름이나 쓰임새, 몇 인분인지 등을 물을 때마다 떡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의 머리 속은 하얘졌다. 멥쌀과 찹쌀의 생김새도 모르는데 저 많은 질문을 어떻게 답하랴! 이럴 땐, 옆에서 같이 일하는 ‘이모님’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백 번도 넘게 질문했다.


알바가 할 수 있는 일, 한정적, 피크 타임엔 결정적.


평소 떡집 알바가 하는 일은 어렵진 않다고 했다. 떡 재료 및 떡판 나르기, 떡 랩 포장하기, 근처 상가, 관공서에 떡 상자 배달하기, 손님 응대 및 판매 보조, 가래떡 분리하기 등 쉽게 말해 떡을 찌고, 빼고, 판매하는 작업을 옆에서 보조한다. 명절 때면, 알바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떡 배달은 한 번에 10kg짜리 상자 20개를 가져간다. 차에 싣거나, 차에서 내리는 일 모두 알바의 몫이다. 종류에 따라 3000원에서 1만2000원 사이인 떡은 만들어지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손님들은 떡을 사기 위해 시장에 왔다는 듯이 줄을 서고, 판매대 위의 떡은 쉴 새 없이 들고 난다. 단기 알바의 빠르고 섬세한 ‘떡 싸기’ 실력이 판매 흐름을 좌우한다.

사진 속 인파는 매우 적은편. 생각보다 더 많은 손님이 떡집을 찾았다.

가래떡은 언제나 잘 팔리지만, 특히 명절 전에는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 활용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 가래떡은 한 판에 30줄이 들어간다. 전날 뽑은 가래떡을 식히고 말린 뒤 가래떡을 힘으로 하나하나 분리해야 한다. 이 역시 힘 있는 단기 알바의 몫이다. 13일 오후, 두 시간에 걸쳐 가래떡 30판 정도를 쪼갰다. 조그맣게 “힘들다”고 한마디 했더니, 옆에 있던 이모가 한마디 한다. “엄살 부리지 마세요. 많을 땐 이 두배의 두배도 더 돼.” 

전 날 뽑아놓은 마른 가래떡. 힘으로 한줄 한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밥도 7명의 직원이 돌아가며 먹는다. 밥그릇을 비우기가 무섭게 손님 응대, 떡 포장 등 자신의 자리로 즉시 돌아간다. 필자도 이틀간 오전 7시부터 해진 뒤 저녁 7시까지 12시간 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쉬지 못했다. 밀어닥치는 주문과 물량으로 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 그만큼 알바 역할이 중요했다.


떡 반, 사람 반, ‘멀티 플레이’하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

매대 위 만들어진 떡은 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틀 동안 24시간을 일하며 거의 1000접시를 쌌다. 엄청난 떡의 양만큼이나 이를 사러 오는 사람도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도 손님이 많으니 특이한 손님도 더러 있었다. “어제 사간 쑥 인절미에 쑥이 들어 있지 않은 것 같다”며 바꿔 달라는 사람, “왜 떡값이 6000원이나 하느냐”며 끝까지 깎아 달라는 사람 등…. 알바생은 그저 웃으며 손님을 설득할 뿐, 다른 방법은 없다.


손님 맞으랴, 가래떡 뜯으랴, 시간 맞춰 차로 떡 상자 배송하랴, 각종 무거운 상자 옮기랴 어느새 머리는 장식에 불과한 상황이 온다. 손과 발이 알아서 움직인다. 이틀째 오후가 되자, 표정조차 짓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선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게 최고였다.


해 뜨기 전 일을 시작해, 해가 질 때 마치기를 이틀, 떡집 사장님은 “덕분에 무사히 설 대목을 치를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알바를 하며 명절 문화의 힘과 우리 민족이 얼마나 떡과 가까운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누군가 떡집 알바에 도전한다면 당부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꼭 접시에 랩 제대로 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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