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싼 작은 매장 찾아다녔더니 '입소문'만으로 대박

조회수 2020. 9. 25. 2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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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이 열광하는 '생활맥주'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생활맥주’ 임상진 대표
3년 만에 연매출 270억원 이상
좋지 않은 상권에서도 독특한 콘셉트로 인기

40년 다 돼가는 허름한 여의도 상가 1층 수제맥주집. 33㎡(10평)짜리 실내는 어둑어둑하고 인테리어는 거칠다. 간판에는 빨간색 궁서체로 ‘생활맥주’라 쓰여있다. 2014년 5월 시작한 이 작은 가게는 3년 만에 전국 가맹점수 100여개를 낸 수제맥주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6년 연매출은 168억원. 2017년엔 11월에 270억원을 넘었다.


생활맥주를 만든 임상진(45) 데일리비어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기타리스트 겸 음악프로듀서로 활동했다. 하지만 음악인의 길을 접고 1998년 삼성증권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오라클, DS제강을 거쳤다. 2004년 퇴사 후 14년 동안 외식업 운영했다.


4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지역별 창업에 따른 고용변동과 고용격차'를 보면 창업 사업체 10곳 중 5곳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업한다. 특히 외식업은 ‘쉽게 시작하는 만큼 쉽게 망한다’고 할 만큼 어렵다.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지점 1곳을 빼고, 장사가 되지 않아 폐점한 곳은 없습니다.” 임 대표에게 생활맥주의 인기 비결과 창업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jobsN
임상진 대표.

지역·매장 특색 살린 메뉴와 인테리어


국내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생활맥주 매장에서 판다. ‘비커 맥주’, 소주는 팔지 않지만 ‘소맥(소주+맥주)’은 파는 독특한 콘셉트로 맥덕(맥주덕후)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단순히 맥주를 공급받는 게 아니라 양조장과 협업해 맥주를 기획·개발한다. 20여개 수제맥주 중 13~14종은 생활맥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 2호선 강남역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강남페일에일’이 생활맥주와 양조장 크래프트브로스가 협업해 만든 맥주다.


“매장별로 맛볼 수 있는 맥주도 조금씩 다릅니다.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점,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많은 익선점, 여성 고객이 많은 이촌점 등 고객층과 주변 상권을 분석해 메뉴를 달리했어요.”


매장마다 인테리어와 콘셉트도 다르다. 매장 오픈 전 임 대표가 디자이너 1명과 함께 직접 콘셉트를 짜고 도면 작업을 한다. “공사 현장에 나가는 게 제 주 업무 중 하나예요. 필요하면 시멘트도 손으로 바르고 글씨도 써야죠. 매장마다 다른 느낌을 내기 위해 ‘수작업’이 많습니다. 수제맥주의 ‘크래프트맨십(장인정신)’이 손으로 개성이 묻어나는 제품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런 철학을 저희 인테리어와 콘셉트에도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생활맥주의 가맹점은 대부분 크기가 크진 않다. 33~66㎡(약 10~20평) 사이다. 몇군데 지점을 빼고는 상권도 좋지 않은 곳에 있다. 여의도 본점을 낼 때부터 오래 비어있거나 임차료가 싼 곳을 집중 공략했다. 점주가 상권이 좋고 큰 자리를 제안해도 쉽게 지점을 내지 않는다.


“점주와 상권을 같이 보러 다닙니다. 생활맥주 콘셉트와 아이템은 자리가 좋지 않아도 손님이 찾아올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여의도 본점 쪽은 주요 상권이 아닙니다. 이 자리가 원래 꽃집이었어요. 음식점이나 여러 가게는 길 건너편에 몰려있어요. 여기에 가게를 낸다고 했을 때 ‘권리금도 없고 싸긴 한데 길 건너라 사람들이 안간다’라는 소리를 들었죠. 도전하고 싶더라구요. 주방 기구를 직접 제작해서 공간 효율을 높였어요. 10평대 매장이지만 20평 정도 효율을 냅니다. 초기 투자금을 줄이는 장점도 있죠.” 

출처: 생활맥주 인스타그램
크래브트브루어리와 함께 만든 강남페일에일, 맥주를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비커에 담아나오는 맥주.

남이 '안된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나름 열심히 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하지만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 대표가 2004년 DS제강 이사직을 박차고 나와 창업한 이유다. 청바지 수입 사업·철강 무역·참치집 등 여러 사업을 했다.


그는 남들이 ‘안된다’고 할 때 도전하고 싶은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다. “2011년에 치킨집을 열 때도 ‘한집 건너 한개씩 있다’, ‘다 망한다’고 할 때였어요. 외식창업을 보는 주변 시선이 좋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우시고 친구들도 ‘왜 하냐’했죠.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재밌게 했어요. 장사도 잘됐구요. 누가 뭐라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진부한 말이지만 진리입니다.”


3년 동안 운영하던 치킨가게를 접고 ‘생활맥주’를 창업했다. 2014년 맥주를 만들어 마트·편의점에 유통할 수 있도록 주세법이 바뀐 직후였다. “치킨집을 해보니 치킨보다 맥주를 만들어 파는 것이 수익을 올리기 좋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다 이태원에서 우연히 에일맥주를 맛봤는데 ‘신세계’였어요. 마침 주세법이 개정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수제맥주 시장이 열리기만 하면 크게 성장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에서는 이미 유행하던 아이템이었습니다.”


창업 초기 좌충우돌했다. 수제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지 않았다. 많은 물량을 공급해 본 양조장이 없었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쉽지 않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양조장을 발굴하고 맥주를 기획했다. “여름이면 수제맥주를 찾는 손님이 2배가량 늘어나는데 그만큼 감당할 곳이 많지 않았어요. 빨리 맥주를 만들다 보니 맛이 이상해지고, 운반과정에서 변질되기도 했죠. 맥주가 없어서 못 판 적 많아요. 조금이라도 탄산이 많거나 맛이 변하면 모두 반품합니다. 까다로운 맥주 마니아를 만족시키려면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저희 맥주 맛이 우리나라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 

출처: 생활맥주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임대표와 직원들, 유기견 '마크'와 임대표. 임 대표와 생활맥주 직원들은 매일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는다. 오늘 맛은 어땠는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생활맥주는 수시로 직원(슈퍼바이저)을 뽑고 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또 맥주를 좋아했으면 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매일 마시기 때문에 입사하면 살이 많이 찔거예요."

프랜차이즈에도 공동체 정신이 깃들 수 있다


생활맥주 가맹점수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제대로 될까'하는 우려도 있다. 수제 맥주는 운반·보관하는 과정에서 맛이 쉽게 상한다. 실제 인터넷에 떠 있는 소비자 리뷰 게시물을 보면 '맛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품질관리는 평생 가져가야 할 임무입니다. 소비자, 특히 맥주 마니아가 얼마나 깐깐한지 알고 있어요. 저희 노력 알아주시는 생활맥주 팬분들이 많아요. 절대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점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프랜차이즈가 되진 않을 겁니다. 창업 초기부터 프랜차이즈를 생각했어요. 점주가 다른 걱정 없이 고객과 품질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려고 해요. 가맹점이 2개일 때부터 치킨·소시지 같은 안주는 주문 제작하고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표준화했습니다. 로열티·광고비는 받지 않아요. 가맹점별 식자재 비율은 계속 낮추고 있고, 지금은 16.8%입니다.” 생활맥주는 홈페이지에 실제 가맹점이 내는 매출과 순이익, 관리비 항목을 상세히 공개한다.


두달에 1개꼴로 새로운 맥주를 내놓는다. 앞으로 양조장과 함께 지역 특색을 살린 맥주를 만드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양조장과 협업하는 것보다 자체 공장을 갖는게 낫지 않을까. “앞으로 목표는 ‘100년 가는 회사를 만드는 겁니다. 오래 가려면 고객-점주-양조장-직원이 모두 행복해야 합니다. 뛰어난 맥주 전문가, 양조장과 함께 질높은 수제맥주시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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