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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으로 5억 매출 올리는 30대 마을 이장의 비결은?

조회수 2020. 9. 22.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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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창업 주민 60명 피아골서 매출 5억 처녀 CEO
지리산 피아골 직전마을 이장 김미선 씨

전남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의 마지막 동네인 직전마을.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고로쇠나무 수액 산지인 이 마을에 고로쇠만큼이나 전국적으로 이름난 이가 있다. 마을의 최연소 여성 이장이자 ‘피아골 미선씨’로 통하는 김미선(32) 씨다. 그는 2006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전통식품 연구소를 차리고 된장·고추장·청국장 등 장류 제품을 팔아 연간 5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청년 사업가다. 

지리산의 해발 600m에 자리한 피아골은 화개장터에서도 자동차로 2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산골이다. 피아골을 찾던 날 비가 내렸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달려 숲 터널을 벗어나자 천왕봉 산장이 우뚝 서 있다. ‘콸콸’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로 귀가 쟁쟁하다. 지리산 줄기가 겹겹이 주변을 감싸는 계곡 옆 널찍한 주차장과 성인 키만 한 100여 개의 항아리가 줄지어 있는 이곳이 김미선 씨가 운영하는 지리산 피아골식품 김미선전통식품연구소다.


“원래 이곳은 돌로 가득한 공터였어요.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돌을 날라야 했죠. 그때는 엄마의 말마따나 다른 사람들 한 발자국 걸을 때 우리 가족은 서너 발자국 걸어야 할 만큼 바빴어요. 가족이 합심해서 일군 땅이기에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30여 가구 60여 명의 주민이 전부인 피아골은 마을 특성상 농사를 짓기 어려워 고로쇠 수액 채취나 산나물, 양봉 등을 주 농업으로 삼는다. 그 외는 대부분 민박이나 식당 등 관광업으로 먹고산다. 김미선 씨의 부모님도 이곳 마을에서 토종꿀(韓蜂)을 재배해 번 돈으로 땅을 사고 민박을 겸한 식당을 열었다.


딸 셋 중 맏이인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도와 식당일을 하며 나물 무치는 법이라든가 장 담그는 일을 배웠다고 한다. 둘째 동생인 지혜 씨와 소꿉놀이하듯 된장을 담근 게 실력이 나날이 늘어 장독을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손맛이 워낙 좋아 손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자 중학교 때는 직접 담근 된장을 팔기도 했다.


등산객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 나름 팬도 생겼다고 한다. 한번 장을 맛본 이들이 전화로 다시 구매하며 김미선 씨네 된장이 유명세를 떨쳤다.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장인을 만나 발효를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2011년 발효식품 사업체를 차렸다. 정부 지원을 받아 초기 자본금 2억 5000만 원을 마련하며 공장을 세워 현재 지리산피아골식품과 천왕봉산장 등 민박 4개 동과 식당 2채를 운영하는 청년 CEO로 성장했다.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크게 운영하는 줄 몰랐다며 놀라요. 지금은 시동을 거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아직은 정식으로 출발하기 전이거든요”라며 여유 있게 웃는 그다.


김미선 씨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최연소 여성 이장이다. 그는 6년간 3대째 직전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다. 그가 하얀색 스쿠터를 타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동네 어르신을 챙기는 모습이 KBS 〈인간극장〉에 방영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농촌에서 여자가, 더군다나 결혼 안 한 아가씨가 이장을 한다는 게 쉽지 않죠. 억센 마을에서 과연 버틸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제 친구들이 다 주변에 있거든요. 마을 주민들이 저를 딸이자 조카, 손녀처럼 아껴주십니다.” 

이장을 맡으면서 그는 지리산피아골식품의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애쓰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에 관광수입이 줄어들며 마을에서 작은 분란이 있었어요. 시기와 질투로 등을 돌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친구들과 우리는 어른들처럼 살지 말자는 약속을 했었죠. 어렸을 때처럼 같이 잘 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공동체를 살리는 길은 상생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리산피아골식품은 평소에는 직원들이 일하지만, 장 담그는 철이나 명절 선물세트 주문이 들어올 때는 동네 어머니들이 와서 일을 돕는다. 또 동네 주민들이 생산하는 특산물을 매장에 진열해 판매를 돕는다거나, 선물세트에 담아 함께 판매될 수 있도록 판로를 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마을 이장이자 지역 경제 살리기에도 일조하는 그야말로 ‘또순이 이장’이다.


“‘못 파는 농산물 팔아주고, 일자리까지 주니까 미선이 공장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줘요. 지금까지 사업이 잘될 때 시기 질투 안 받고 지역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온 이유가 상생을 목표로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류에서 시작한 일은 지리산 기슭에서 나는 천연 재료로 만든 곰취 장아찌나 오미자 발효액, 지리산 벌꿀 등 2차 가공품 사업으로 확장했다. 항아리 30개에서 시작한 장류 사업도 1000여 개의 항아리로 늘었다. 2013년 공장을 인가받으며 그 이듬해에 생산량이 배로 늘었고, 연 매출도 차차 늘고 있다고 한다. 

맏언니의 사업 시작은 동생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둘째 지혜 씨와 막내 애영 씨, 애영 씨의 친구 박은선 씨가 대학을 휴학하고 사업을 돕고 있다. 동생들의 참여에 맏언니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


“동생들은 제가 롤 모델이라고 말해요. 책임감이 크지요. 동생들은 제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창업도 준비 중입니다. 둘째는 쌀 소비에 도움이 될 만한 쌀 가공품을 연구하고 있고, 막내는 지리산에서 난 농산물을 가지고 퓨전 요리를 하는 농가 레스토랑을 꿈꾸고 있어요.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창업을 구상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이달의 6차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선정된 데는 물 대신 100% 고로쇠 수액만으로 만든 ‘고로쇠 된장’의 힘이 컸다. 김미선 씨네 장맛의 비결은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에 있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고로쇠 수액으로 장을 담그면 물로 담근 것보다 덜 짜고 감칠맛이 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맛을 찾기까지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고로쇠 수액으로만 된장을 담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물을 섞지 않으면 된장에 거품이 끓어오르며 쉬어버리죠. 장맛을 일정하게 맞추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제대로 된 맛을 찾기까지 3년을 헤맸습니다. 게다가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시기와 장을 담글 수 있는 시기가 1년에 단 한 번뿐이잖아요. 장을 담그기 전에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실패를 해도 성공의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어요.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3년의 노력 끝에 된장 맛을 일정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된장 맛만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곳 상품은 현장 판매가 80%, 온라인 판매가 20%를 차지하는데, 공장 확장으로 물량이 늘어나며 판로가 문제였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농협이다.


“물량이 많아지면서 유통 채널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온라인상에서 인지도가 쌓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대형마트는 단가가 맞지 않았죠. 그때 농협을 만났습니다. 김병원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님이 연 청년 농업인 간담회에 10여 명의 청년이 모였어요. 그때 조목조목 문제점을 얘기했죠. 간담회를 계기로 농협이 청년 여성 CEO 조직을 만들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청년, 게다가 여성은 우리나라에서 약자에 해당하잖아요. 취약한 계층을 키워준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는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명절 선물세트에도 선정이 됐어요.”


명절 선물세트는 산나물과 장류를 섞어 3만 8000원에 판매할 계획인데,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특산물도 함께 넣었다. 지역민과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는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산물의 판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청년을 위한 농촌문화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작할 때만 해도 도시로 나가야지만 농업과 관련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마저도 청년을 위한 수업이 아닌 어른들의 말만 전해 듣는 수준이었죠. 농촌에 청년들이 오면 단순하게 쌀이나 과실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시선을 바꿔 농촌문화 체험의 방향에서 생각하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에 1차산업에 대한 교육보다 체험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이 시급합니다.”  

청년 여성 사업가로 외롭게 걸어온 길 

피아골에는 농한기가 없다. 1월에 고로쇠 수액을 받아야 하고, 그 물로 3월에는 장을 담근다. 꽃피는 봄에는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캐서 말리고, 그러고 나면 장아찌 담글 때다. 한철 먹거리를 준비해 놓으면 바로 여름 성수기. 식당과 민박 손님 뒤치다꺼리로 한 바가지 땀을 빼고 나면 추석 선물을 준비한다. 추석 지나 한숨 돌리면 지리산의 가을 단풍철이다. 단풍객이 돌아가면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든다. 쉴 틈 없이 1년 스케줄이 빡빡하다. 그는 “일을 쉬고 있으면 내가 뭘 안 했나 싶고 불안하다”며 “쉴 틈 없이 바쁜 것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워낙 잔병이 없기도 하지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아플 틈도 없다고.


“외롭게 많은 길을 걸었어요. 그게 제일 힘들었죠. 시골에 와서 뭔가 한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시선, 친구들마저도 이해를 못 해줬으니까요. 대부분 농촌은 폐쇄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문화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내가 농촌의 문화를 만들고 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꿈 중 하나가 농촌의 문화를 만들어갈 학교를 짓는 거예요. 농업인들도 예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농사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씩씩하게 자기 꿈을 이야기하는 그다. 김미선 씨는 최근 장 담그기나 두부 만들기, 숲 체험 등의 다양한 농촌문화 즐기기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판로를 열어가려는 방안으로 농촌 레스토랑도 연구 중이다.


“청년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농촌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도시고 농촌이고 힘든 건 똑같아요. 농사를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농부들의 성공담만 보고 무작정 달려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저는 대학교 졸업하고 여기 와서 11년을 공들인 지금에야 겨우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준비하고 기다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면 힘들어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획하면 지치지 않고 큰 그림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사업을 시작할 때 세웠던 꿈과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의 꿈은 서른다섯이 되기 전에 지역 청년 농부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장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간 2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생산량을 서서히 늘리고 있다.


“전국에 있는 청년들, 농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농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발효식품 공원과 청년 양성 교육시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와 헤어져 지리산을 벗어나는 길, 쏟아붓던 빗줄기가 그치고 산골짜기 위로 무지개가 언뜻 비쳤다. 머지않아 지리산 산골 처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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