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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은 OK, 안맥은 NO? 법대로 장사하기 힘드네

조회수 2020. 9. 22. 14: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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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직장인 감동시킨 '맥주 배달' 서비스 갑자기 그만둔 이유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 규제와 충돌
수제 맥주 배달 서비스 결국 휴업 선언
진입장벽 낮추는 제도 시행 국가 늘어

"최근 1년간 세계에서 가장 투자를 많이 받은 100대 기업 중 67곳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했다면 규제에 부딪쳐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산나눔재단·구글캠퍼스 서울이 지난 7월 발표한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100대 기업 중 13곳은 사업모델이 한국에서 금지대상이다. 44곳은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허가를 받아야한다. 사업을 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


심지어 사업을 시작한 다음 없던 규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최근 '휴업 선언'을 한 김상민(27) 벨루가브루어리 대표가 그랬다. 그는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불명확한 규제, 바뀐 규제 때문에 결국 휴업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상민 벨루가브루어리 대표. 사진 오른쪽은 미국 대사관에서 주최한 행사에 초대받았을 때 모습이다. 다양한 미국 맥주를 한국에 소개해 초대받았다.

벨루가는 맥주 배달 서비스다. 2주에 한 번 전문가가 맥주 4병을 골라 배달했다. 지난 5월 시작해 3개월만에 유료 회원 200명을 모았다.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달 20~30%씩 매출과 회원수가 늘어났다.


사업을 한 기간은 3개월. 그 석달간 불명확한 법과 규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술 판매와 배달'에 대한 국세청의 애매한 법 해석과 규제 변경 때문에 서비스 방식을 바꿨지만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 벨루가의 창업부터 휴업까지 김 대표가 규제와 싸우고 타협하다 결국 사업을 포기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 1년 전 (2016년 7월) '검증되지 않은 모델' 

한국 주세법은 전통주를 제외한 술은 온라인 판매를 막고 있다. 탈세를 막고 청소년과 국민건강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전화 같은 통신 수단을 이용한 판매도 불법이었다. 치킨 배달을 시킬 때 맥주를 함께 주문하면 불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고량주를 배달해도 불법이었다.


그러나 2016년 국세청은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음식과 함께 주문받은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판매로 보지 않는다"라고 고시를 개정했다. 치킨 등 음식물과 주류 완제품(병에 넣어 출시되는 제품)을 함께 배달하는 것은 통신 판매가 아니니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빈페트병에 임의로 넣어 배달하는 건 여전히 불법이다. 

출처: 벨루가브루어리 제공
벨루가는 2주에 한 번 맥주를 배달하는 서비스였다. 고객이 고르는 게 아니라, 맥주 전문가가 골라 임의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음식과 함께'라는 국세청 고시를 맞추기 위해 마른안주, 라면, 과자 등 다양한 반조리 식품을 함께 배달했다.

고시 개정 소식을 들은 김 대표는 2016년 8월 회원제로 맥주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코넛칩·레몬·육포 등 과일이나 마른 안주와 함께 술을 배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투자자도 없었다. '검증되지 않은 모델'이라는 게 이유였다. "편의점만 가도 수입맥주 4캔을 1만원에 사는데 누가 돈을 주고 맥주를 배달 받겠냐"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있다고 믿고 밀어부쳤다. 8개월간 꼬박 혼자 준비했다. 패키지 디자인부터 유료화 모델까지 만들어갔다. 음식과 함께 배달하면 불법이 아니라는 개정고시를 믿은 것이다. 모든 주문은 전화로 받기로 했다. 법률회사에 문의해 불법 서비스가 아니라는 의견도 들었다. 

출처: 벨루가브루어리 제공
처음 얻은 가게. 서울 용산구에 있는 건물의 지하였다. 맥주만 배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가게를 얻어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전화로 주문받은 물량만 배달했다.

#2. 5개월 전 (2017년 3월) '고객이 사랑하는 서비스'

시작은 쉽지 않았다.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가게가 있어야 전화 주문을 받아 음식과 안주를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했지만 모아놓은 돈은 500만원 밖에 없었다.


어렵게 서울 용산에 5평(약 16.5㎡)짜리 가게를 얻었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이었다. 법인설립, 사업자 등록을 하고 지난 4월 30명을 모아 베타서비스를 했다. 직접 배달을 다니며 피드백을 받았다. 가격은 회원제로 기간에 따라 나눴다. 1개월 6만원(8병), 3개월 17만원(24병), 6개월 33만원(48병). 미국, 멕시코, 독일 등 전 세계 맥주를 골랐다. 마른 안주 등 '음식'을 함께 보냈다. 술만 배달하면 불법이기 때문에 음식도 같이 배달하라는 법을 따른 것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주류 제공량(1인당 1일 48병) 한도도 지켰다.


5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유료 회원이 100명 넘게 생겼다. 주로 20대 후반~30대의 직장인이었다. 청소년은 주문할 수 없도록 성인인증절차도 추가했다.   

출처: jobsN
김 대표는 고시 내용이 애매해다고 생각해, 규정에 대해 국세청에 직접 문의했다.

#3. 2개월 전 (2017년 6월) '새로운 규제 등장' 

그런데 갑자기 서울 종로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위법적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 세무서로 와달라"고 했다. 담당자에게 "당장 불법은 아니지만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킨과 맥주를 배달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지만 김 대표가 하는 사업은 처음이라 선례가 없어 당장 위법, 합법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쯤 국세청에서 새로운 고시를 예고했다. "음식점에서 전화 등을 통해 주문받아 '직접 조리한 음식에 부수하여' 함께 주류를 배달하는 것은 통신판매로 보지 않는다." '직접 조리한 음식에 부수하여'라는 새로운 조항이 생긴 것이다. 한달 뒤부터 적용한다고 했다.


마른 안주만 가지고는 사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조리공간을 확보하려면 좀 더 넓은 매장을 얻어야 했다. 급하게 서울 마포구에 가게를 얻었다. 햄버거·샌드위치로 메뉴를 정하고 2주일간 조리법을 익혔다. 음식이 상할 수 있어 새벽에 직접 포장해 배달했다. 핫도그와 치즈스틱 등 상할 위험이 적은 메뉴를 만들었다.


그러나 국세청이 실제 발표한 고시에는 예고와 달리 '직접 조리한'이 빠지고 '음식에 부수하여'라는 단어만 남았다. "조리라는 말이 모호해 오해의 소지가 있고, 부수하여라는 문구로도 취지가 반영된다"라는 이유였다. 

출처: 벨루가브루어리 제공
'직접 조리한' 이라는 새로운 규정이 생긴다는 예고에 급하게 구한 서울 서대문구 이대역앞 지하 가게.

#4. 1개월 전 (2017년 7월) '영원한 후퇴 아니길' 

지난 7월 12일. 이번에는 서울 마포 세무서에서 연락했다. "위법 소지가 있으니 사업장에 방문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담당 조사관은 "벨루가 서비스는 음식과 함께 배달해도 술을 주로 배달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위법성이 있다"라며 "불법은 아니지만 위법 소지가 있어 나중에 과태료를 물 수 있다"라고 했다.


김 대표는 반문했다. "치킨 한 마리에 맥주 10병을 시키는 건 괜찮으냐?" 음식과 주류의 적정 비율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의미였다. '부수하여'라는 문구의 해석이 명확치 않았다. 김 대표는 "담당 공무원도 '고시 내용이 애매해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내 업무 영역이 아니라 고시 자체에 대해 할 얘기가 없다'라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김 대표는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해외에서는 최소한 규제를 설정하고 필요에 따라 규제를 추가(유럽)하거나 일부 상품이나 업종에 대해 정식 인가 없이 서비스 테스트(호주)를 할 수 있게 한다. 기존 법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감독기관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추세다.


현재 휴업을 했지만 김 대표는 "서비스를 중단하고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다"라며 "언젠가 합법적으로 사업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폐업이 아니라 휴업이라는 것이다. 법이 명확해지면 다시 업장 문을 열고 사업하겠다는 의지였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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