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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도 들렀다'..7평짜리 가게서 연매출 10억 올리는 아이템

조회수 2020. 9. 22. 14: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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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파던 서예가, '나만의 맞춤 도장' 으로 연매출 10억 달성한 비결
혼(魂)을 담은 도장 하나 써 보실래요?
한 우물 파던 서예가 장운식씨
‘나만의 맞춤 도장’ 판매로 연매출 10억 달성
중국, 일본 등 해외 진출 계획중
출처: jobsN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도장(왼쪽)을 제작한 새김소리 장운식 대표

"사각, 사각…."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 인사동 거리. ‘새김소리’라는 간판을 내건 7평(약 23㎡) 남짓한 가게가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귀를 간지럽히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이 가게 장운식(49) 대표가 칼로 도장을 깎는 소리다. 벌써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깎고 있다.


가게는 작고, 일하는 사람은 장 대표와 직원 둘 뿐이지만 지난해에만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1만4400개의 도장을 팠다. 하루 평균 40개 정도의 도장을 만든 셈이다. 새김소리는 '개인 맞춤형 도장'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 이집트 압델 파타 아시시 대통령, 오페라 가수 폴 포츠, 김연아도 새김소리에서 도장을 받아갔다.


"도장 사업은 한 물 간, 낡은 사업이 아닙니다. 가치를 부여하면 오히려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손재주 좋았던 시골 소년, 서예가의 길로 

장 대표는 충북 충주의 과수원집에서 태어났다. 자연을 벗삼아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무와 과일, 새, 풀, 귀뚜라미, 바람이 그의 친구였다.


"지금도 작업할 때 기억 속 고향의 모습을 도장에 새깁니다. 영감을 얻는 원천입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형의 서예 교과서를 보고 따라 써봤는데, 제가 형보다 훨씬 잘 하더라고요. '예술에 재능이 있구나' 생각하고 일찌감치 서예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출처: jobsN
함께 서예를 전공한 장 대표의 아내는 사업의 든든한 동반자였다.

1989년 원광대 서예과에 들어갔다. 서예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대학에서 만난 아내와 충북 청주시에 서예학원을 차렸다. 대학 강의도 나갔다. 서예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적성에 잘 맞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다.


“서예학원을 10년 정도 운영했을 때, 영어 열풍이 불면서 서예 학원을 비롯해 예체능 학원 수강생들이 줄기 시작했어요. 시대의 변화가 매일 피부로 느껴졌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무거웠고요.”


고민 끝에 장 대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원 문을 닫고, 출강도 그만뒀다. 당분간 아내가 학생들에게 서예 과외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기로 했다. 2007년 그는 무작정 상경했다. 사람 많은 서울에서, 서예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인사동에서 '서예'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어떻게 해서든 찾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학 시절부터 서예가로서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서예는 전통을 중시하지만 저는 항상 현 시대에 접목해야 서예가 훨씬 더 큰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예 작품이 전시장 안에서만 유통되는 한계도 있었죠. 고민 끝에 새로운 시도를 해봤어요.


대학 때 친구 2명과 경남 하동군에 있는 '쌍계사'에 가서 좌판을 깔고 앉아 사람들에게 좌우명, 가훈을 써서 팔았던 적이 있습니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처음으로 '서예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경험이 상경해서 새로운 길을 찾던 제게 아이디어의 단초를 마련해줬습니다.” 

출처: jobsN, 장운식씨 제공
새김소리에 있는 김연아의 싸인, 오페라 가수 폴포츠가 새김소리를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도장을 고르는 일본인 관광객의 모습(왼쪽부터)

서예에서 '캘리그라피'로 변신한 것이 적중 

장 대표가 서울에 올라왔을 당시는 캘리그라피(예술적으로 쓴 손글씨)가 뜨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서예를 활용한 캘리그라피 작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서예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기 위해 포토샵 및 디자인 프로그램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디자이너들이 서식을 공유하던 온라인 블로그(케이머그)에 포트폴리오를 올렸다. 그의 작품을 본 디자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후 우리은행 110주년 기념 앰블럼, 기업은행 '힘내라, 중소기업!' 광고 카피 글씨 제작 등을 맡았다.


"1년간 기업체 광고 카피를 제작하는 일을 했어요. 흥미있는 일이었지만 벌이가 아쉬웠습니다. 밤새 작업을 해도 손에 쥐는 돈은 얼마되지 않았어요. 내가 디자인을 했지만, 판매금의 전부를 가질 수는 없는 구조거든요. 이 작업으로 얻는 수익이 월 300만~400만원쯤 됐지만, 제가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했어요. 광고 카피 일을 하면서 틈나는대로 캘리그라피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판매해 보기로 했습니다. 2008년 인사동 거리에 돗자리를 깔고 캘리그라피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어요."


도장 판매를 하게 된 데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티셔츠를 판매하던 어느 날 사군자(四君子)를 그려 만든 장 대표의 도장을 행인이 보고 "예쁘다"며 혹시 파는 물건이냐고 물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사군자를 새긴 도장 5개를 만들어 1개에 3만원 가격으로 내놨더니 30분도 안돼서 다 팔렸어요. 다음날은 10개를 만들어 내놨는데 또 다 팔리더라고요.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1년 후 가게를 차렸습니다."


가게가 금세 자리를 잡으면서 청주에 있던 가족들도 2013년 서울로 왔다. 

출처: 장운식씨 제공
과거 작은 점포를 운영했던 장운식 대표, 연인용 도장과 교수님 선물로 인기가 높은 선물용 도장(왼쪽부터)

연매출 10억원의 도장 가게로 

새김소리 도장에는 원하는 디자인과 문구를 골라서 새길 수 있다. 독특한 글씨체도 적용할 수 있다. 개인의 성향이 존중되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던 당시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상품이었다. 새김소리 도장은 선물용, 커플용 아이템으로 각광받았다.


그는 도장 가게의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마케팅에도 열정을 쏟았다. 결과는 수익으로 이어졌다. 설립 10주년을 맞은 새김소리는 현재 연 1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루 평균 만드는 도장은 80개, 개당 평균 가격은 5만~6만원이다.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만들거나 장식에 많은 공을 들여야하는 도장 중에는 100만원이 넘는 것들도 있다. 이런 도장은 제작에 2~3일 가량이 걸린다.


맞춤도장 가게들은 새김소리 외에도 여럿 있다. 1만~2만원 이상 값이 저렴한 업체도 많다. 그럼에도 새김소리의 도장이 유독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


도장 몸체를 새기는 작업은 비전문가도 가능하다.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컴퓨터로 작업해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인영(印影·도장을 찍은 형태)의 섬세한 작업은 전문가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장 대표는 인영 작업을 할 때 서예가답게 창의적인 디자인을 가미한다. 가장 저렴한 3만원짜리 도장은 15분 만에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새김소리만의 경쟁력이다.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출처: jobsN, 장운식씨 제공
서예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장운식 대표(왼쪽), 도장을 소개하는 장 대표(오른쪽)

“매번 일정치 않은 사인보다는 도장을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하고 실용적입니다. 도장에 익숙치 않은 미국, 유럽 사람들도 우리 가게의 도장 디자인에 반해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 일본 수출 담당 직원도 뽑아서 해외 시장을 개척할 계획입니다. 서예에 대한 사랑이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져왔듯이 저는 지금도 도장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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