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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도와드리다가 '여신' 등극한 평범한 직장인

조회수 2020. 9. 18. 10: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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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당구인
늘어났으면
평범한 직장인→어머니 당구장 돕다 선수로
당구TV 진행‥서툰 첫방송 이후 일취월장
기부활동, 반려견 문화에도 관심 많아

칙칙한 냄새와 뿌연 담배 연기. 당구장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만큼 당구장은 ‘마초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깬 여성 당구인이 있다. 사진 한장으로 이름을 알린 한주희(33)씨다. 2년전 출전한 아마추어 대회가 방송 전파를 타자 청순한 외모로 화제를 모았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당구 아이돌’ ‘당구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구는 굵직한 세계 대회를 우승해도 주목받기 어려운 마이너스포츠다. 당구계에서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출처: MBC스포츠플러스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한주희씨의 사진

그녀는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당구의 ‘당’자도 몰랐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당구가 이제는 취미와 동시에 직업이다. 아마추어 선수 겸 당구채널 ‘빌리어즈 TV’에서 MC로 활약하는 방송인이다. 한씨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험난했던 방송 “국어책 읽느냐”는 말도

출처: jobsN
한주희씨

방송사측의 제의로 MC를 시작한지 올해로 3년차. 한

씨는 빌리어즈TV의 간판 프로그램인 ‘큐타임즈’의 진행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의 당구 전문 뉴스’를 표방한다. 당구계 주요 소식을 간추려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방송 초짜’였던 한씨는 아직도 첫 방송 녹화 당시가 생생하다. “위치를 제대로 못 잡아서 카메라 앵글 바깥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욕도 엄청 먹었습니다. ‘국어책 읽는거냐’는 비아냥도 들었어요.” 지금은 방송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당구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큐타임즈 방송만 기다린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출처: 빌리어즈TV 홈페이지
한주희씨가 진행하는 '큐타임즈' 소개

유명 당구인 인터뷰도 자주 진행한다. 최연소 국내랭킹 1위에 올랐던 ‘당구 천재’ 김행직(25) 선수도 만난 적이 있다. 한씨는 “당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연예인보다 당구 스타를 보는게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김가영 선수가 기억에 남아요. ‘걸 크러시(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선망, 혹은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 것)’라는 유행어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정말 멋있고 ‘쎈 언니’였어요.”


김 선수는 포켓볼 세계선수권 대회를 포함해 세계대회에서 수십차례 우승한 여자 당구계의 전설이다. 세계 당구의 ‘4대 천왕’ 중에선 다니엘 산체스(스페인·3쿠션 세계 2위)가 인상적이었다고 한씨는 말했다. “한국에 굉장히 자주 와요. 만난 적도 있어요. 한국어도 배우려고 하고 심지어 된장찌개를 좋아하더군요.”


방송인의 특성상 부정적인 반응도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 이따금씩 나오는 ‘악플’에 대해 한씨는 “이유없이 비난하는 댓글에는 신경을 안 쓴다”고 했다. “아직 경력으로 보면 초보이기 때문에 고칠점이 많다는건 잘 압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되 인신 공격성 비난은 마음에 담지 않아요.”

출처: 위벤투스 제공
연예인 당구단 '위벤투스'에서 활동하는 한주희씨

“평범한 외모인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한씨는 대외 활동을 통한 당구 알리기에도 적극적이다. 작년 10월 창단한 국내 최초의 연예인 당구단 ‘위벤투스(단장 김민수)’의 창단 멤버로 가입했다. 김원효, 변기수, 윤형빈 등 개그맨이 주로 참여했다. 위벤투스는 당구 홍보 활동과 자선 당구대회를 통한 사회 공헌 활동을 벌인다. 위벤투스는 지난 1월 자선 대회를 통해 화원초 당구부에 발전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다  

당구와의 만남은 우연이나 다름없었다. 대학생 시절까지는 당구장에 가본 적도 없었다. “남자들만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씨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20대의 길을 걸어갔다. 대학에서 디자인 계열을 전공한 그녀는 중소기업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만에 사표를 냈다.


“조직의 일원으로 산다는게 성격이랑 맞지는 않더라고요.” 그 무렵 마침 어머니가 당구장 개업을 했다. 어머니 일을 도왔다. 2010년, 26살의 나이에 그렇게 당구를 처음 만났다. 

출처: 큐타임즈 블로그
큐타임즈를 진행하는 한주희씨

당구장에서 일하면 당구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혼자 온 손님은 당구장 직원과 같이 당구를 치고 싶어한다. 빨리 당구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원래 한씨는 낯가림이 심했다. 남자만 있는 당구장에서 청심환을 먹어가며 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실력이 늘면 늘수록 재미가 늘었습니다.” 틈틈이 근처의 다른 가게로 ‘원정 연습’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당구연맹 관계자를 만나 아마추어 대회 심판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아마추어 심판은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2014년 12월 아마추어 당구대회 심판을 맡았다. 몇 달 후에는 남녀 스카치 대회에 나섰다. 당구에서 스카치란 2인이 팀을 이뤄 번갈아가면서 플레이하는 일종의 복식 경기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화제의 사진이 바로 이 대회에서 나왔다. 그녀를 눈여겨본 빌리어즈 TV가 MC로 섭외해 당구계에 뿌리를 내렸다. 당구와 관련된 주제가 있으면 단발성으로 케이블 TV에 출연하기도 한다. 월수입은 200만~300만원 이상이다.

출처: MBC스포츠플러스 캡처
한때 아마추어 대회 심판을 맡았던 한주희씨

방송 경력과 당구 인맥이 늘어나면서 당구의 매력에 푹 빠진 한씨는 당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명지대 미래융합대학 스포츠당구 전공과정에 들어가 매주 이틀씩 학교에 나가 이론과 실습을 배운다. “나중에 지도자나 강사로 활동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한씨는 3쿠션을 칠 때 15점을 놓고 친다. 동호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점수 개념으로 환산하면 200~300 수준이다. 

◇취미는 유기견 돌보기  

출처: MBN 캡처
유기견을 돌보는 한주희씨

2년전쯤 당구장 사업을 접은 한씨의 어머니는 애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단독 주택에서 약 30마리를 키운다. 대부분 사연많은 유기견 출신이다. 동물단체 등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원비를 받아 운영한다. 유기견을 찾는 이들에게 수시로 유기견 입양을 보낸다.


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는 한씨는 시간이 날때마다 어머니의 주택에 들러 함께 유기견을 돌본다. “보면 너무 예쁘거든요.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요. 대소변을 쉬지 않고 치워야할 정도로 항상 집이 엉망이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나중에 유기견을 돌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유기견 토리를 입양, 청와대에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년 전 도살 직전 동물단체가 구조했다는 사연을 가진 토리는 동물 애호가 사이에서는 꽤 유명인사. 한씨의 어머니도, 한씨도 토리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정말 잘된 일”이라고 했다. 

출처: 동물단체 케어 제공
문 대통령이 입양계획을 밝힌 유기견 '토리'

앞으로의 소망을 묻자 한씨는 “여성 당구인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선 많아졌다고는 느끼지만 아직 비율로 치면 여성이 남성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될 거예요. 대회 상금 규모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나라 당구 인프라는 정말 훌륭하거든요. 건물마다 1개씩은 있잖아요. 내로라하는 외국 선수들도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오늘 한번 가서 당구의 매력에 빠져보시는게 어떨까요?”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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