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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N Heritage② 국악계 아이돌, 소리꾼 김준수

조회수 2018. 11. 5. 0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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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반대도 꺾을 수 없던 '소리 사랑'

jobsN은 전통 문화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직업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잊혀져 가는 한국 고유 문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에는 국가에서 인정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이수자도 있습니다. 두번째 편으로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9-4 수궁가 이수자 김준수씨입니다.

‘도라지타령’ 부른 11살 알아본 초교 은사
23살 당시 최연소로 국립창극단 입단
‘배비장전’, ‘서편제’ 주연 꿰어차며 인기
“판소리, 다양한 장르에 도전 가능”

2016년 8월 방영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프로그램. 김준수(26)씨가 무대 위에 와인색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출연자들은 그의 직업이 ‘헤어 디자이너’일 것이란 추측을 내놨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바람도 쉬여넘고”로 시작하는 ‘춘향가’ 한자락이 흘러나왔다. 관객들이 환호했다. 이후 그는 국악계의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었다. 국악인 최초로 팬카페가 생겼을 정도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임방울국악제 고등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실력파 국악인. 전라남도는 2013년 12월 그를 무형문화재 수궁가 이수자로 선정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는 도청 또는 국가에서 월 130만원 전승 지원금을 받는다. 보유자에게 배운 이수자는 지원금을 받지는 못하지만 지역축제나 각종 행사에 추천을 받는다.


그는 사실 국악계에선 인정받는 유망주다. 2009년 국립극장이 그를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했다. 2013년 코미디 창극 ‘배비장전’에서 ‘배비장’역을, 창극 ‘서편제’에서 ‘어린 동호’역을 맡았다. 두 작품 모두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국립극장의 '스테디셀러'로 4년째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무대를 앞두고 있다. 작년 프랑스에서 창극 최초로 초청을 받아 파리에서 26일 동안 공연을 한 적이 있는 작품이다.

출처: mnet 방송 캡처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연 당시 김준수씨

- 공연 준비로 바쁘시겠습니다.


“평일엔 아침 10시까지 국립창극단으로 출근합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개인 연습을 하죠. 주말과 휴일에도 공연 연습을 합니다." 


- 목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매일 일어나면 오미자 원액, 도라지, 꿀, 홍차를 챙겨 먹습니다. 쌀밥, 김치에 따끈한 국물로 아침을 먹죠. 하루에 물 3L는 마십니다. 프로폴리스(Propolis ・나무, 풀, 꽃에서 나오는 수지에 꿀벌의 침과 분비물 등을 섞어 만든 것, 건조한 목을 풀어주고 기침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된다) 사탕을 늘 가지고 다닙니다.”

출처: 국립창극단 제공
소리꾼 김준수

“전통 전달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그는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2013년 22살에 당시 최연소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10년 만에 난 채용 공고에서 뽑힌 6명 중 하나였다. 국립창극단은 신영희, 남상일 등 국내 명창을 배출한 곳이다. 


- 국립창극단 활동은 어땠습니까.

“입단하고 처음 만난 작품이 ‘서편제’입니다. 오디션을 보고 주연 기회를 얻었죠. 2000석 가까이 되는 대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그리스 고전을 바탕으로 한 ‘메디아’에서 나쁜 남자 ‘이아손’ 역을 맡아 연기도 했습니다."


- TV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섭외 연락이 왔을 때 판소리를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얘기에 출연을 승낙했습니다. 가요로 편곡하지 않고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판소리의 어떤 매력을 알리고 싶나요

“판소리에는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죠.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출처: 국립창극단 제공
'메디아'에서 나쁜 남자 '이아손' 역을, '배비장전'에서 '배비장' 역을 맡았다

 애절한 소리에 반해

김씨가 판소리를 시작한 건 10살 때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 그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소리 대회에 나가보길 권했다. 군청이 주최한 ‘전통 자랑 대회’에서 ‘도라지 타령’을 불러 3등을 했다. 다른 참가자가 춘향가의 ‘갈까 부다’를 부르는 걸 듣고 애절한 소리에 마음을 뺏겼다. ‘판소리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 어린 나이에 판소리를 듣고 감명받기 쉽지 않을텐데요

“사람 목에서 그런 애절한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흥부가’를 들었을 땐 제 얘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난에 대한 한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농사일을 하셨는데 집안 살림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 소리꾼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반대가 심했습니다.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해 회사원이 되길 원하셨죠. 5달 동안 설득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으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 신효순(56)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소질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다음날부터 전남 강진에서 가장 유명한 판소리 무형문화재 박판금의 제자 백미경씨와 소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습니까

"전남예술고등학교 국악과에서 별명이 알람시계였습니다. 3년 동안 매일 아침 7시에 기숙사 꼭대기 층에서 소리 연습을 하는 게 기숙사 방 안까지 들렸던 거죠. 여름엔 강진의 월출산, 해남의 대흥사로 산공부(소리꾼들이 폭포나 계곡 주변 등의 산지에서 하는 발성 훈련)를 하러 떠났습니다. 20일 동안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소리 연습을 했죠."


“가난으로 고생했습니다. 초등학교 은사님이 공부하라며 30만원이 든 봉투를 쥐어주셔서 소리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 때 한 달 레슨비 7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박판금 선생님 앞에서 ‘소리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재능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라고 다독여주셨죠.”    

출처: 국립창극단 제공
2016년 국립창극단이 선보인 '오르페오전' 연습 사진

판소리에 전자음, 기타… 개척할 곳 많다

- 판소리는 아무나 못할 것 같습니다

“‘소리를 할 수 있는 목’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십니다. 판소리의 ‘시김새(판소리 선율을 멋지게 꾸미는 장식)’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목의 구성’이 따로 있다고 하죠. 최소 10년은 연습해야 합니다.”


- 소리를 내는 본인만의 비법이 있습니까

“예전엔 시김새와 같은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소리 하나의 ‘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에 담는 감정과 음색 말입니다. 애절한 소리에 자신 있습니다.”


- 소리꾼 직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진로가 다양해졌습니다. 예전엔 ‘전통 소리꾼’의 길만 있었다면 이젠 창작자의 길도 걸을 수 있죠. 서양의 이야기를 우리 소리로 푼다거나, 기타, 전자음 등 새로운 소리를 섞을 수 있습니다.”


”수입은 소리꾼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국립창극단에서 받는 월급, 방송 출연, 외부 행사를 통해 수입을 얻습니다. 공연 성수기(5월~8월)엔 한 달에 700만원까지 벌죠.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요즘엔 서울시 문화재단 등 지원 사업이 많아졌습니다. 판소리는 나이가 들수록 진한 소리가 나와 오래 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대중 앞에서 노래할 기회를 많이 가질 겁니다. 전통 소리꾼의 길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 모두 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다은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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