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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드라마 주연→월수입 100만원 물류창고 알바 '포기없다'

조회수 2018. 11. 5. 09: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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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도망가지 않을겁니다

배우 정민진(35). 2007년 드라마로 데뷔, 만 10년을 배우로 살았다. 2013년 아침드라마에서 주연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은 있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출처: 정민진 제공

많은 사람들이 ‘배우’라고 하면 화려한 삶을 연상하지만 그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낮엔 드라마, 영화, CF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밤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창고에서 일한다. 그는 여전히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꼭 붙잡고 싶다”고 했다.


10년째 ‘뜨지 못한’ 배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민진은 인터뷰 내내 유쾌한 모습을 보였고, ‘자학개그’를 하는 데도 스스럼이 없었다.


“제가 82년 개띠인데요, 70년 개띠로 태어났으면 아마 성공했을 겁니다. 그땐 저처럼 ‘느끼한’ 외모가 먹혔거든요. 제가 데뷔할 땐 ‘꽃미남’이 대세였습니다. 유행은 돌고도니 ‘느끼남’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웬걸 꽃미남 유행이 지나가니 ‘훈남’이 대세더라고요. 느끼남이 대세가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에게 무명(無名) 배우 10년의 삶을 들어봤다.

맞기 싫어서 도망간 미국에서 배우를 꿈꾸다

정민진은 1996년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LA로 떠났다. 미국으로 떠난 이유가 독특했다.


“한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받았는데, 그 여학생이 하필이면 학교에서 싸움 잘하는 ‘일진’이 좋아하던 여학생이었던 거죠. 소문이 나면서 ‘일진’한테 불려가 흠씬 두들겨 맞았어요. 얼굴만은 안 맞으려고 필사적으로 막았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면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멍이 들 정도로 맞았어요. 맞고 나니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서웠어요. 학교 가기는 두렵고, 선생님한테 일렀다가는 ‘왕따’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jobsN
정민진

마침 그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혼자 남아서 학업에 열중하라는 아버지 말에 아들은 무작정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그는 “생애 첫 번째 도망이었다”고 했다.


미국 생활도 녹록지는 않았다. 온 가족 4명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고물상을 시작하셨는데, 일거리가 없어 한동안 수입이 없었어요. 좁은 방에 다닥다닥 누워서 잘 땐 ‘이 넓은 미국 땅에 내가 누울 곳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일 년 정도 뒤엔 아버지의 사업이 그럭저럭 자리를 잡으면서 단칸방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정민진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성극(聖劇·성경에 나오는 사실을 소재로 한 연극) 무대에 올랐어요. 한 달 정도 열심히 준비한 걸 쏟아내는데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더라고요. 불 꺼진 무대, 제가 서 있는 곳에 ‘핀 포인트’ 조명이 쏟아지고, 내 움직임과 내 대사에 관객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찌릿찌릿했어요.”


그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외모에 대한 칭찬도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딜 가나 주위에서 잘생겼다고 얘기했어요. 남들이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배우 세계에 입성해보니 내가 생각한 만큼 잘생긴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외모도, 연기도, 끼도 넘쳐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동네 리그’와 ‘A매치’는 레벨이 달랐습니다.”

출처: SBS캡처
'칼잡이 오수정'에 출연한 정민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LA의 한 대학을 다니면서 극단 활동으로 배우의 꿈을 키워오다 중퇴, 연기 전문학교 ‘할리우드 액팅 코프 스쿨’(The acting corps)로 진학했다. 그리고 2006년 배우의 꿈을 안고 귀국했다. 미국의 한 방송사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국내 연예 기획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2007년, 정민진은 SBS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에 다니엘 역(役)으로 데뷔했다.


“극 중 다니엘의 대사가 모두 영어였어요. 영어로 대사를 칠 수 있어서 운 좋게 남들보다 빨리 데뷔할 수 있었죠.”


전체 16부작인 이 드라마에서 그는 12회부터 출연하기 시작했다. 출연 분량도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20분 남짓. 하지만 능청스러운 연기에다 굵은 목소리로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게 인상적이었는지, 시청자 게시판에도 ‘정민진이 누구냐’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열등감과 질투로 군대로 도망…첫 번째 기회 놓쳤다

‘칼잡이 오수정’ 이후 KBS2의 단막극 ‘드라마시티-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사랑’ ‘KBS 드라마시티-레드백’ 등에 출연한 그는 2008년 사법연수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의 저울’에 출연했다. 주인공 우빈(이상윤 분)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민태 역이었다.

출처: SBS캡처
'신의 저울'에 출연한 정민진. 사진 왼쪽이 배우 이상윤

‘신의 저울’은 시청률은 물론이고, 드라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함께 출연한 이상윤·송창의 등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과 함께 정민진도 이름을 꽤 알렸다. 하지만 ‘신의 저울’ 이후 그는 돌연 군에 입대했다.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27살. 1~2년 정도는 군 입대를 미룰 수도 있었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는 왜 군 입대를 선택했을까.

출처: SBS캡처
'신의 저울'에 출연한 정민진

“당시 함께 출연했던 이상윤, 송창의 등의 배우들에게 열등감을 느꼈어요. ‘왜 나는 주연을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열등감이 질투로 이어졌고, 연기마저 어색해졌어요. 민태 역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흥이 많아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열등감과 질투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게 연기에 묻어 나왔나 봐요. 몸에 힘을 빼고 ‘막춤’을 춰야 하는데, 온몸에 힘이 들어간 채 ‘로봇춤’을 추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안되는 놈’ ‘연기 못하는 놈’으로 낙인이 찍혀버렸죠. 더 악착같이 버티고, 노력했어야 되는데 그걸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렵게 찾아온 첫 기회를 놓치게 된 두 번째 도망이었다”고 생각했다.

출처: 배우 정민진 제공

군대 2년을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보냈다. “군에서 느낀 건 두 가지예요. ‘상병 7개월은 진짜 길다’는 것과 ‘내가 생각보다 여자를 좋아하는구나’였죠. 물론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강추위에 야간 경계근무를 설 때면 힘들기도 했지만, 입대 전에 느꼈던 열등감과 질투를 덜어내는 계기도 됐습니다.”


2009년 제대한 그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비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벌였는데, 일종의 사기를 당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고물상을 하나 인수하셨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비싼 권리금 내고 샀는데, 알고 보니 고물상 주인이 인근에다 다른 고물상을 내고 기존의 거래처를 다 가져간 상황에서 회사 껍데기만 팔았던 거죠.”


결국 아버지가 인수한 고물상은 망했다. 부모님은 인천의 판잣집으로 들어갔다.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군대에서 기합 빡 들어서 나왔는데, 집안이 어려워지니 나 몰라라 할 수 없잖아요. ‘나는 안되는 놈인가 보다’ 싶었죠.”


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고, 그도 함께 미국으로 따라가 아버지 사업을 도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도망갔잖아요. 그리고 드라마 ‘신의 저울’ 마치고 군대로 도망갔고요. 이번에도 또 도망가면 세 번 지는 거잖아요. 진짜 세 번은 지기 싫었어요. 다운은 돼도 K.O.는 안된다는 심정으로 버텼습니다.”


이를 악물고 오디션 장을 찾아다녔다. 수십 번 탈락 소식을 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채널A 주말드라마 ‘판다양과 고슴도치’에 출연했고, 영화 ‘밤의 여왕’,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도 역할을 맡으며 조금씩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던 2013년 정민진에게 ‘신의 저울’ 이후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연예인 병’ 걸려 두 번째 찾아온 기회 놓쳐… “세 번째 기회는 반드시 붙잡을 것”

출처: KBS홈페이지
KBS2 아침드라마 'TV소설-은희' 포스터

KBS 아침드라마 ‘TV소설–은희’에 주연 중 한 명인 최정태 역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은희는 매일 아침 40분씩 140부작으로 기획된데다 주연이었기 때문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2014년 초 은희 종영 이후 그는 몇몇 드라마와 영화, CF에 잠깐 출연했을 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지 못했다.

출처: KBS 제공
정민진이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에 배우 장서희씨의 첫사랑 역할로 특별출연했을 때 모습

“’이제 됐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연예인 병’ 걸린 거죠. 주인공 역할을 책임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 자존감을 높이는 데 썼습니다. 오디션 보러 열심히 뛰어다녀서 입지를 다졌어야 하는데 ‘이제 주연도 했으니 어디선가 불러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과요? 처참했습니다. 불러주는 데가 없었어요.”


2015년 결혼한 그는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먹고 살 만큼 일이 들어오지는 않아 ‘알바’를 뛰기 시작했다. “혼자일 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결혼하니까 돈 쓸 때도 생기고 빚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출처: 정민진 제공
물류창고에서 일하던 중 찍은 '셀카'

낮엔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일이 대형마트의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이다. 한달에 100여만원을 벌지만 생활은 빠듯하다. 그래서 낮에 시간이 날 때면 짬짬이 렌터카를 고객에게 갖다 주고 다시 찾아오는 일도 한다. 그러면서 CF에도 간간이 출연하고 있다.

출처: 유투브 캡처
한샘 광고(왼쪽)와 SC은행 CF에 출연한 정민진

지난해엔 SC은행의 CF에 배우 손현주씨와 함께 출연했고, 최근엔 국내 가구업계 1위 기업 한샘의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번에 한샘 광고에 출연하면서 받은 출연료로 석진(배우 하석진)이에게 빌린 돈 300만원도 갚았어요. 이자는 못 주고 일본 라면 한 그릇으로 퉁쳤지만요. 고맙습니다. 한샘!"

출처: 정민진 제공

포기할 법도 하지만 그는 연기 '내공'을 쌓으며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새로운 기회가 올지 안 올지 확신은 없다. 두렵긴 하지만, 한 번 쯤은 더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저희 아버지는 두려움 앞에 도망가지 않으셨어요. 이제 제 차례인 것 같습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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