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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7.03.20. 작성

직업 2개로 '연수입 1억' 꿈 이룬 30대 직장인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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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두 번
사는 기회
자유로운 작품 활동 위해 오히려 취업
직원 믿고 '투잡' 적극 지원해준 회사
직장-작품 활동 서로 시너지 효과 커

'낮에는 모바일 마케팅 회사 과장, 밤에는 작품 한 점당 천만원이 넘는 미술 작가.'


직장인과 예술가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장원영(35)씨. 7년째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디자이너로 일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애드픽'을 만든 회사 '오드엠'이다. 평일 퇴근 이후와 주말에는 전시·판매를 위한 개인 작품을 만든다. 직장 업무는 작품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는 주로 사진으로 작업한다. 큰 배경 사진 위에 건물이나 사람을 찍은 작은 사진 수백장을 잘라 붙이는 방식이다. 홍콩 하버시티,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 호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크기에 따라 수백~수천만원 정도 한다.


처음 작품이 팔린 건 27세였던 2009년. 곧바로 촉망 받는 젊은 작가가 됐다. 작품값도 많이 올랐다. 2년간 전업작가로 일하다가 2011년 돌연 직장에 들어갔다. 3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연봉과 작품 판매액을 합쳐 연수입 1억원을 넘겨봤다.


장씨는 "작가로서 오래 활동하고 싶어 취업했다"라며 "직장인과 작가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건 회사의 지원과 배려 덕분"이라고 말했다. 2016년 미국 뉴욕 전시회를 위해 2개월간 한국을 떠나야 했을 때, 회사는 군말없이 허락해줬다. 대부분 기업은 직원이 회사 업무 외 다른 일을 못하게 한다.


잘 나가던 작가는 왜 갑자기 직장인이 됐을까? 장씨의 '투잡'을 응원하는 회사는 어떤 곳일까?

회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장원영씨. 27세였던 2009년 첫 전시였던 아시아 대학생·청년 작가 미술 축제 '아시아프'에 출품한 작품이 에디션을 포함해 15점 가량 팔렸다. 작품 주제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다가갔을 때의 간극'이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재개발 되기 전 서울 북아현동을 배경으로 했다. 파노라마 형식으로 동네 전경을 찍은 후, 사람과 건물을 인화해 붙였다. 사진을 겹겹이 붙여 입체감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출처 : jobsN

◇ '20대에 해야할 일'


2001년 추계예술대학 판화과에 입학했다. 집안 형편은 어렵지도 넉넉하지도 않았다. 등록금은 스스로 벌었다. 서울 이화여대 앞 컴퓨터 학원에서 포토샵 강사로 일했다.


스물 넷. 군대를 다녀오자 정신이 들었다. 주변에서 '미술하면 밥 굶는다'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살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목록을 만들었다. '20대가 끝나기 전 꼭 이룰 것들'.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자전거 여행, 전체 수석해서 장학금 받기, 해외 자전거 여행, 부모님과의 낚시여행, 내 이름의 책 출판, 블로그 방문객 천만명, 외국어로 책 출판, 개인전….'


목표 10개 중 7개를 이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로 책 내기'.


2005년 중국 톈진으로 갔다. 첫날부터 중국에서 겪은 일을 매일 만화로 그렸다. 현지 한국인에게 미술 과외를 해 생활비를 벌었다. 1년 반 동안 써온 원고를 들고 2006년 무작정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으로 갔다.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읽어보고 재밌으면 담당자를 연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 권한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어찌 보면 무모했죠. 몇편 보더니 바로 담당자에게 '누가 재밌는 걸 들고 왔는데 내려와보시라'고 하더군요."


시나닷컴에 연재를 시작했다. 외국인이 중국 사회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자 반응이 뜨거웠다. 칭찬과 욕을 한꺼번에 받았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을 냈다. 약 4만부 가량 팔렸다. 인세와 포털사이트 콘텐츠료 등을 합쳐 2000여만원이 생겼다. 남은 학기 등록금으로 냈다.

쪽 사진은 중국에서 낸 책이다. 중국 생활을 하면서 일기처럼 매일 만화를 써내려갔다. 왼쪽 사진 속 작품은 직장 '오드엠' 사무실에 걸려있다. 회사는 장씨의 작품 3-4점을 항상 벽에 걸어두기 위해 미술관처럼 핀조명 등을 설치했다.

출처 : 장원영씨 제공

◇ 전업 작가로 2년 살아보다


2007년 복학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추계예대가 있던 서울 북아현동이 재개발에 들어갔다. "처음엔 그냥 기록 차원이었어요. '곧 없어질 동네니까 찍어두자' 정도였죠."


'지저분하지만 낭만 있는 동네'로 포장할 마음도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밥 먹는 소리, 학교 갈 준비하는 학생들 소리, 다투는 소리….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동네를 바라 봤을 때와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간극이 컸어요. 이걸 작품에 담기로 했습니다."


북아현동 전경을 파노라마로 촬영했다. 건물과 사람을 따로 찍어 전경에 갖다 붙였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1000장 넘게 찍었다.


2009년 아시아 대학생·청년 작가 미술 축제 '아시아프'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여러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전시회다. 출품한 작품 4개가 모두 팔렸다. 사진 특성상 같은 작품을 여러 점 만들 수 있다.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에디션'이라고 부른다. 장씨 작품은 에디션 포함 20점 가까이 팔렸다.


이후 업계 유망주가 됐다. 작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대신 '언제까지 작품 몇 개를 뽑아달라'는 무리한 요구도 있었다. "어리 나이에 모든 경제 활동을 작품에만 의존하니 쉽게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작가로 오래 일하려면 다른 경제 기반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장원영씨가 24살에 처음 만든 '20대가 끝나기 전에 꼭 이룰 것들' 목록. 침대에 붙여놓고 매일 목표를 되새겼다. 하나씩 이룰 때마다 날짜를 적어넣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하나는 이뤄야지' 라는 생각으로 '부모님과의 낚시여행'을 집어넣었다. 오히려 이루지 못한 목표 중 하나가 됐다. 그래서 30대에 이룰 일에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항목을 넣어 실천하고 있다."

출처 : 장원영씨 제공

◇ 회사와 만난 건 행운


전업 작가로 일한지 2년 만인 2011년. 한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디자인 전공생 사이에 디자이너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힘들고 야근 많고 돈은 적게 번다."


장씨는 면접에서 딱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해야할 일은 근무 시간 안에 꼭 끝낼 테니 야근을 안했으면 좋겠다." 작가로 작품을 만든다는 얘기도 했다.


"막상 저 혼자 야근을 안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퇴근할 때 동료들이 일하고 있으니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무리 치열하게 일해도 '쟤는 왜 야근을 안해?'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조직 문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몇 개월 후 이직한 동료가 연락했다. "지금 회사가 정말 좋은데 같이 일해보자." 현재 근무하는 오드엠. 당시 '오늘만 무료'라는 섹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앱 추천 서비스 '팟게이트'를 만든 회사였다. 직원은 8명.


자기소개서를 들고 갔다. 표준 이력서와는 달랐다. 증명사진을 빼고 커다란 카메라 렌즈를 눈에 갖다 댄 사진을 넣었다. 20대에 이루려고 했던 리스트를 쭉 적어넣었다.


"첫 직장에서 순조롭지 못했잖아요. 철칙이 생겼습니다. '상습적인 야근을 하지 않고, 나를 잘 담아낸 자기소개서를 이해해주는 회사를 선택하자'. 직장에서 즐겁지 않으면 작품도 잘 안되더군요."

30대에 해야할 일을 적어놓은 목록. 20대 때 못했던 산티아고 길 순례는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이뤘다. 산티아고에 갈 때 회사에서 한 달 휴가를 줬다. 2014년 미국 뉴욕 전시회 때도 2개월 무급 휴가를 줬다. 장씨는 회사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미국 현지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서 틈틈이 업무를 했다. 오른쪽 사진에 나오는 에어 서큘레이터는 한 회사와 협업한 제품이다. 경매 수익금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행사였는데, 박무순 오드엠 사장이 비밀리에 에어서큘레이터를 낙찰 받았다.

출처 : jobsN, 장원영씨 제공

면접을 하던 박무순 오드엠 대표는 "우리 회사는 원래 야근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의아해했다. 야후코리아 개발자 출신인 박 대표는 2011년 창업 때부터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출퇴근 시간을 따로 체크하지 않고, 휴가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회사 문화에 반한 장씨는 바로 입사했다. 그때부터 7년간 직원이 29명으로 늘었지만, 그는 여전히 오드엠의 유일한 디자이너이다. 회사 앱과 PC버전의 유저인터페이스(UI)부터 카달로그 등 회사 전체 디자인 업무를 담당한다. 야근이 없으니 근무시간 동안 업무에만 집중해 생산성도 높아졌다.


회사는 장씨의 작품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개인전을 위해 두 달, 신혼여행으로 스페인 산티아고길 순례를 갈 때는 한 달간 휴가를 줬다.


이때마다 박 대표가 해준 말이 있다. "1~2주도 아니고 몇 개월은 회사로서도 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은 항상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직원들의 인생은 길다. 회사가 인생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드엠은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만 잘 하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을 오히려 지원해준다. 대부분 직장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직원을 신뢰할 뿐 아니라, 행복한 직원이 회사 일도 더 잘하기 때문이다.

홍콩 관광청에서 장원영씨 등 한국 청년 작가 7명을 초청해 홍콩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게 했다. 2012년 홍콩의 대표적 건물인 '하버시티'에서 장원영씨의 작품을 구입했다. 당시 작품 전시회가 열렸던 하버시티 건물(오른쪽).

출처 : 장원영씨 제공

◇ 인생 두 번 산다…대신 열심히 해야


"직장과 미술업계에서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합니다. '자기 작품하느라 직장 일 소홀히 한다' '직장 다니느라 예술 감각을 잃었다' 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회사 생활은 작품에 도움이 됐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경험하고 생각을 나누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다음 작품 주제도 '인간 관계'로 정했다.


양쪽에서 얻는 수익은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회사 연봉으로만 생활했던 때도 있습니다. 작품을 팔지 않고 전시만 했죠."


그는 "단순히 직업이 2개인 게 아니라, 인생을 두 번 산다"라고 생각한다. "직장인 장원영과 작가 장원영은 서로 돕기도 하고 경쟁도 합니다. '요즘 직장인 장원영에 비해 작가 장원영의 활동이 뜸한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 작품 활동에 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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