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에 명퇴한 가장 "자영업자들 존경스러워"
명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5대 그룹 계열사를 다닌 남성 K씨는 40대 초반에 명예퇴직했습니다. 직장에서 크게 출세할 전망이 안 보이고 명예퇴직금 3억 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한 선택이었습니다.
K씨는 IT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력을 살려 조그만 사무실에 PC 한 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실적이라고 할 만 한 것은 거의 없이 빈 사무실만 유지하던 그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업을 접었습니다.
K씨는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진지한 표정으로 “반백수 생활을 몇 년 해 보니까 동네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이건 노점상이건 스스로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할 만 한 사람들인지 알겠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서 자영업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커피숍, 치킨집, 빵집이 즐비한 환경에서 창업해 5년을 버티는 곳은 10곳 중 3곳에 불과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 번 돈 대부분은 임차료(월세)와 원료비로 나갑니다. 장사가 안 돼도 세금, 공과금, 신용카드 수수료, 대출이자 내는 날은 꼬박꼬박 돌아옵니다.
살아남기만 해도 잘 한 것입니다. 장사가 조금 잘 풀린다 싶으면 이번에는 건물주가 나타나서 “임대료 올려줄래? 아니면 짐 싸서 나갈래?”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정부 정책도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금융권은 3월 말부터 ‘대출 건전성 강화’ 명분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바짝 조이는 건 물론 금융당국과 은행이 TF를 꾸려 개인사업자 대출점검 강화 검토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지만 560만 자영업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당국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왜 금융 당국자들은 자영업자들의 비명을 듣지 못 하는 걸까요. K씨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순탄하게 명문 대학 졸업하고, 65세까지 정년 보장된 교수직에 재산도 넉넉한 사람들이잖아. 본인들이 경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경제란 건 책상머리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러다 퇴직금 다 날리지 않을까’, ‘가족을 굶기지나 않을까’, ‘은행에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으면 직원들 줄 월급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안 해 본 사람들은 모르는 거야.”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이 글은 동아일보 기사 <[오늘과 내일/천광암]자영업자가 울고 있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