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산 직업 '머구리'

조회수 2018. 6. 4.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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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갈남마을에는 해녀 외에도 ‘머구리’가 있습니다. 해녀와 머구리는 모두 바닷속을 누빈 ‘역전의 용사’들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수심 10m 정도까지 잠수하는 해녀에 비해 머구리는 50m까지 깊이 들어갔기에 그들에게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머구리 출신인 동제(洞祭·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주민이 공동으로 기원하는 제사) 제관 할아버지는 1960~70년대 머구리들의 생활을 이렇게 추억했습니다.


“한때는 이 마을에 해녀보다 머구리가 많았어. 16명이나 됐으니까. 근데 누구는 산소 호스가 터지는 바람에 죽고, 누구는 잠수병으로 고생하다가 합병증으로 떠났지. 잠수병 없이 편안하게 간 사람은 둘밖에 없어. 나도 잠수병으로 힘들어서 절벽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어. 지금도 후유증으로 정신이 흐릿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는데 그게 30년 전 일인지 10년 전 일인지 가물가물해.”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머구리들은 긴 호스를 통해 배 위에 실린 천평기에서 나오는 산소를 공급받았습니다. 문제는 산소 공급 호스가 꼬이거나 끊어지는 사고가 많았다는 겁니다. 


호스가 끊어져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긴 노인회장 할아버지는 당시를 떠올리며 손사래쳤습니다. 

출처: ⓒGettyImagesBank

“말도 마. 기절해서 죽기 직전에 올라온 적도 있어. 잠수복, 투구, 납추, 신발 무게까지 합치면 50kg이 넘어. 탈출을 할 수가 없어. 나는 운이 좋았어. 남동생이 머구리 일을 못 하게 하려고 잠수복을 버린 적도 있어.”


1967년 머구리 일을 시작했다는 이 씨 할아버지는 울진 후포항에서 20km 남짓 떨어진 왕돌초에서 작업하다 잠수병에 걸렸습니다. 깊은 물 속에서 돌아올 때는 천천히 감압하면서 올라와야 잠수병의 원인인 혈액 속 질소를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른 노인은 “동해안 머구리들이 일 년에 100명 정도씩 잠수병으로 숨지던 때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전에 물에 들어갔다가 시베리(잠수병)를 맞았지. 늦은 밤에 백암온천으로 실려가 5일 동안 온천물을 먹으면서 탕 속에서 살았어. 몸만 나으면 다시는 머구리 안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 또 물에 들어갔어.” 

출처: ⓒGettyImagesBank

김 씨 할아버지 형제는 둘 다 머구리였습니다. 33세에 잠수병에 걸린 형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생도 머구리 일을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그 시절엔 질소가 뭔지 다들 몰랐지. 물밑이 저승인데, 40년을 저승에서 일하다 살아 돌아왔으면 됐어”라며 바다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잠수부였던 노인들은 ‘물에 들어가면 몸이 가벼워지고 아픈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몸을 망가뜨린 심해에서 위안을 얻는 이해 못 할 상황을 그들은 기꺼이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맨몸으로 닿을 수 없는 해저 세계는 공포와 죽음, 자유와 풍요를 주는 야누스의 얼굴이었습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이 글은 동아일보 <[김창일의 갯마을 탐구]〈4〉저승서 벌어 이승서 산 ‘머구리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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