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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

조회수 2018. 6. 17. 12: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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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는 어때요?
1997년 겨울,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래 없던 국가부도위기, IMF라는 한파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 후 20년,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11월에는 IMF 후 20년을 돌아보는 기사와 칼럼이 쏟아지겠지요. 그러니 여기서 IMF니 경제니 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대신 그해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추모되고, 사랑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본명은 다이애나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 영국 명문 귀족 스펜서 백작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영국 찰스 왕세자비로 화려한 삶을 누렸을 듯하지만 속사정은 많이 달랐던 다이애나.
결혼 후 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를 낳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이었음을 깨닫고 난 후 내내 공허함으로 괴로워했다고 하죠. 결국 오랜 갈등 끝에 1996년 15년 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에 이릅니다.
이혼 후의 생활을 ‘천국 같다’고 말했다는 다이애나는 AIDS환자를 돕고 대인지뢰를 반대하는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이집트 출신의 부호 도디 파예드와 행복한 시간도 보내지요.
행복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불행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가혹한 일이지만 잘 알려졌듯 이혼 1년 후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전 유럽이 눈물바다가 됐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추모의 물결로 이어졌고, 그 추모의 발길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형식을 갖춰 쓴 평전 격의 책입니다.



1904년 태어나 1997년 사망한 등소평은 체구는 작았지만 거대한 중국 역사에서도 두드러지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거듭된 추방과 실각을 딛고 일어나 현재의 중국 경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하지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모범적인 권력 이양을 보여주고, 국가를 위한 인재를 키우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급격한 경제 개방으로 빈부격차를 키운 부작용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중국인이 존경하는 인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등소평을 ‘백년소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는데, 20세기의 시작 즈음에 태어나 세기 말 무렵까지 93년이라는 긴 생을 누렸기에 생긴 별칭이라고 합니다.
마오쩌둥과 상반되는 길을 걸었던 등소평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중국 권력을 잡았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지, 세계는 어떠할지 새삼 궁금해지네요.
오랜 삶, 거대한 족적만큼이나 묵직하고 두툼합니다. 가까운 도서관을 권합니다.



뉴욕 출신의 작가로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차대전 종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Tales of the South Pacific>로 1948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일견 한국과 무관할 듯 보이는 미치너지만 실제로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썼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도곡리의 다리(The Bridges at Toko-Ri)>입니다.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산까지 밀려간 연합군이 전세의 전환을 노리고 중국의 보급로로 쓰이던 두만강 인근의 다리를 폭격하는 임무를 받고 출격한 미해군 조종사의 이야기입니다.
84세에 발표한 <소설(The Novel)>은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네 명의 화자를 통해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의미를 품어야 하는지, ‘소설이란 무엇인지?’,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죽기 전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열정과 의지에 감탄하게 되는 작가, 제임스 미치너입니다.
<도곡리의 다리(The Bridges at Toko-Ri)>가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한 사람이 성인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무책임한 자라고 비난 받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의외라면 의외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콜카타의 성인이라고 불린 마더 테레사입니다.
수십 년을 빈민과 병든 사람을 위한 봉사와 희생으로 살았으며, 병들었을 때조차 자신이 돌보던 다른 이들과 동일한 치료를 해달라고 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힘 없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도 옹호하기만 했고, 그의 명성을 이용한 사기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서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폭력을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난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 사랑과 희생, 봉사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해주는 존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체코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밀란 쿤데라였습니다. 작품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죠.
이제는 체코의 국민작가는 보후밀 흐라발이고 작품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고 말하게 됐습니다.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작가의 삶이 너무 극적이고, 진실된 모습으로 다가왔기에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1914년 생인 보후밀 흐라발은 2차 대전 후 소련이 점령한 체코를 떠난 밀란 쿤데라와 달리 체코에 남아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출판이 금지되었기에 공식적으로 책을 낼 수 없었을 때에도 계속 글을 썼고, 많은 작품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35년 동안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한 폐지 압축공의 이야기인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보후밀 흐라발의 경험이 압축된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소설 속 이야기들처럼 보후밀 흐라발의 죽음 또한 극적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병실 밖의 비둘기에게 밥을 주려다가 5층에서 추락해 사망했기 때문이죠. 자살이라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진실은 말해줄 사람은 세상을 떠났으니 추측할 따름입니다.
2017년은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가 작가들이 사랑한 작가로 알려지면서 큰 사랑을 받은 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잘 몰랐던, 오래 잊힌 작가와 작품들이 자꾸자꾸 재발견 되어 읽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을 품어봅니다.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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