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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하죠?

조회수 2018. 5. 31. 1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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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사연 100책
100사연 100책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연.
그 사연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재작년 한강 작가님이 맨부커 상을 수상했잖아요. 사실 맨부커 상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노벨문학상과 함께 3대 문학상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거의 외국 작가 작품만 읽었었는데 한국 문학에 너무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 문학 작품도 읽어보려고 해요.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한국 작가의 작품 좀 소개해주세요.
- 물방울 님
한강 작가님의 맨부커 상 수상은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기를 넣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일대 사건이었죠. 하지만 동시에 일부 작가, 수상 작품에만 집중되는 편중 현상의 반복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잊혀지고 숨겨진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꼭 세계 문학상의 수상이 아니라고 해도, 더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 역시 오랜 시간 한국 문학을 외면해 왔습니다. 뭔가 근시안적이고, 미학적이라고 할 정도로 문체에 얽매이는데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차리기 어렵게 감춰두고, 결말조차 깔끔하게 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구의, 어느 나라의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호불호의 문제이기에 뭘 읽든 제 마음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문학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됐어요. 제대로 된 판단을 하려면 양쪽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기회를 주고 난 후에 결정해야 한다고 말이죠.
한국 문학 속 명작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책,
'양귀자'<모순>입니다.
스무살 무렵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런 작품이라면 평생을 두고 몇 번이나 거듭 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20년 인생을 통해 느끼고, 깨달았던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삶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었으니까요.
이 이야기의 화자는 스물다섯 살의 여성, 안진진입니다. 안지진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으로 본래라면 ‘진’이라는 외자였을 것을, 아버지의 변덕으로 ‘진진’이 된 데다 부정을 의미하는 ‘안’이 붙음으로써 운명적으로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하게 된 기구한 것이었습니다.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는 쌍둥이로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나 4월 1일 만우절에 함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이후의 운명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게 됩니다. 이모는 심심하지만 안정적인 남자를 만나 평탄한 삶을 살게 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언제나 시련과 마주하는 삶을 살게 된 거죠.

안진진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선량할 수 없지만,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물건을 부수고 아내를 때리지만, 술에서 깨고 나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런 사람이요.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기 시작합니다. 그 주기는 점점 길어져서 지금은 몇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머니는 시련을 맞이하고 넘어서면서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는 것으로 시련에 대처하는 힘을 얻는 자기만의 방법을 익힙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때로는 딸이,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시련이 그칠 날이 없지만, 시련은 어머니를 쓰러뜨리기는커녕 점점 강하게 합니다.

이모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몹시 평화로운 것이지만, 이모는 항상 심심해하고 무료해하며 외로워합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삶에는 그 나름의 고통이 있었던 거죠.

안진진에게는 교재 중인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계획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하지만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결혼 상대로 정하기까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평탄해 보이지만 외롭고 심심한 삶, 거듭되는 시련으로 고단해 보이지만 활기 넘치는 삶, 안정적이지만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한 삶, 자유롭고 사랑스럽지만 힘들고 찌들어갈 삶.

안진진이 들려주는 그와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곳곳에 숨겨진 모순을 들추어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삶에 취해야 할 태도와 추구해야 할 이상,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요.
이야기는 하나의 부르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이 부르짖음은 삶의 모든 결정의 순간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마지막까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결정에 온 생애를 걸겠다는 결연한 다짐인 거죠.

이 다짐은 삶의 모순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선택하고,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만드는 주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삶과 이모의 삶, 거기에 자신의 삶까지를 더해 자기만의 삶을 선택하려는 적극적이지만 소극적인 모순된 모습이기도 하고요.

제목인 ‘모순’에 대한 고사는 이렇습니다.
옛날, 창과 방패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는다. 그리고 그는 또 말했다.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낸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불행하기만 한 삶도 있을 수는 없는 것처럼요. 이 이야기는 그런 모순들을 등장인물들의 삶 하나하나를 통해 보여줍니다.


한 마디의 결론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농담처럼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누군가의 삶은 태평하고, 평탄해 보이지만 그의 삶이 진실로 그가 원하는 것인지 밖에서 보는 우리는 알 수 없죠. 삶에 정답이 없기에 실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에 대한 결론은 살아본 사람만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인생에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고요.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문장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울 거예요. 이 작품에서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은 문장으로 마칠까 합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글 | 플라이북 에디터 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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