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훈련의 영원한 라이벌 혹한기 훈련

조회수 2017. 12. 18. 2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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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의 영원한 라이벌

혹한기 훈련


지난번 필자는 유격훈련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쓴 바 있다. 당시 필자는 유격훈련을 육군 훈련의 끝판 왕이라 칭 했드랬다. 하지만 필자의 주변에서 이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본인들의 훈련 중에서 가장 힘든 훈련은 바로 혹한기 훈련이었다는 주장을 강력히 피력했다. 한 지인은 자신의 혹한기 무용담(?)을 들려주며, ‘유격은 오히려 웃으면서 받을 수 있었다’는 일종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혹한기 훈련을 가리켜 ‘피겨스케이트에 김연아가 있다면, 육군 훈련엔 혹한기가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혹한기 훈련을 국군 훈련의 본좌라 명명하겠다. 유난히 추운 요즘, 오늘은 우리 국군장병들의 혹한기 훈련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국방일보 이경원 기자
혹한기 훈련 중 행군하는 장병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계속해서 전투력을 유지해야 한다.

혹한기 훈련이란?

혹한기 훈련의 목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혹한의 날씨를 견디며 생존하는 훈련이라 말 할 수 있다. 유격훈련이 험지를 극복하며 전투를 지속하기 위한 훈련, 즉 매우 공세적인 성격의 능동적 훈련이라면, 혹한기 훈련은 겨울철의 강추위 속에서 생존하는 훈련이다. 한 마디로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곧 전투력 유지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고, 특히 겨울에 휴전선부근은 매우 매서운 강추위로 유명하다. 야전에서 이 강추위를 이겨내지 못 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병사들은 필연적으로 야외에서 임무를 수행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추운 겨울밤을 실외 및 산악에서 견뎌야 한다. 따라서 추위를 극복하며 전투력을 유지하는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에 하나, 우리보다 추위에 익숙한 북한이 동계공격을 감행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혹한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우리 장병들은 전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최강 독일군의 모스크바공방전 실패가 이를 증명해준다.

출처: 국방일보 이경원 기자
우리국군장병들의 동계장비가 개선되긴 했지만, 혹한기 훈련의 고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전사를 통한 혹한기 훈련의 필요성

전쟁사를 살펴보면, 겨울이라는 장애물이 군대를 속절없이 집어삼킨 예 가 허다하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서 모스크바점령에는 성공했지만,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초토화 작전으로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고, 10월이 되자 러시아 특유의 혹한이 일찍 찾아왔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던 병사들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10월 19일, 전면 철수를 하기로 결정한다. 12월이 되자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기온은 영하 40도 가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 프랑스 병사들은 칼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들고, 눈꺼풀이 얼어붙었으며, 손가락은 방아쇠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를 향해 밀려들어간 60만 명의 병력 중 단 3만 명만이 돌아왔다. 겨울철 전투의 경험이 부족했던 프랑스 병사들은 러시아에서 완전 전멸한 것이었다.

절망의 후퇴를 하고 있는 프랑스군 병사들의 삽화. 제대단위도 없이 민간인들과 섞여 무질서한 모습이다.

앞서 언급한 모스크바공방전도 마찬가지였다. 독소전쟁 초기, 소련군은 무려 100만이 넘는 병력손실을 입으며 독일군의 전격전 칼날 앞에 무너져갔다. 10월이 되자 독일군 병사들은 멀리 크렘린궁의 첨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해 있었다. 하지만 10월 7일부터 비가내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폴레옹이 겪었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날씨가 독일군을 덮쳤다. 동계전투의 경험이 부족했던 나치독일군 수뇌부는 11월 전 까지 모스크바를 점령한다는 계획 하에 병사들에게 방한장비를 지급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실수였다. 무려 12만의 동상 환자가 독일군에서 나왔고, 순식간에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 상태에서 소련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고, 독일군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으로 대규모 후퇴를 하 기 시작했다. 이제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할 기회는 영원히 날아가 버렸고, 러시아의 동장군은 다시 한 번 위기의 순간에서 적을 물리쳤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포로가 된 독일군 병사들. 이들은 대부분 하계용 전투복을 입고 혹한의 날씨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

우리 역사의 아픈 곳에서도 혹한기의 잔혹함이 서려있다. 6·25당시 장진호 전투가 그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가장 성공적인 철수 사례로 꼽히는 전투임과 동시에 미국 해병대 창설 이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의 전선은 무너졌고, 급기야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의 포위망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무려 중공군 6개 사단이 그들을 포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11월부터 몰아친 혹한은 미 해병대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러시아 혹한이 무색한 영하 40도의 강추위는 이제껏 미 해병대가 경험해보지 못 한 추위였다. 대부분의 개인화기가 작동불능에 빠졌고, 기관총과 차량, 전차는 2시간에 한 번씩 작동해주지 않으면 얼어붙어 사용이 불가능 했다. 심지어 수류탄마저 불발이 속출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고통은 이보다 더 심했다. 제대로 된 식사는 꿈도 못 꿨고, 용변을 보는 일은 차라리 고역에 가까웠다. 수혈용 혈액과 몰핀이 얼어붙어 의무병은 겨드랑이에는 수혈 팩을 끼고 입안에는 몰핀을 물고 다녔다. 하지만 미 해병은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버티어내며 철수를 완료하였고, 이는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철수작전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장진호 전투는 미군으로 하여금 M-51 신형 방한복을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의 교훈이 얼마나 컸던지 주한미군은 아직까지도 알래스카 주둔군에 준하는 동계 장비를 병사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에서의 미 해병대 모습. 전투보다는 동상과 동사로 인한 사상자가 훨씬 많았다.

혹한기 훈련의 내용

혹한기 훈련의 내용은 하나이다. 바로 ‘생존’이다. 이것은 보이스카우트 캠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는 우리 군의 동계장비가 많이 개선되어졌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혹한의 산악에서 며칠 밤을 지세 우는 것은 인간의 극한능력을 끌어내는 일이다. 전시에 불을 피우거나 하는 행위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에, 장병들은 오직 지급된 동계장비로 혹한을 버텨내야 한다. 야간에는 A텐트를 이용하거나 비트를 파 잠을 청해야하고, 주간에도 동계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전투력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포병의 경우 땅을 굴착해야 하는데, 겨울철 꽝꽝 얼은 땅을 파는 것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얼음을 깰 수 있는 장비가 동원된다. 무엇보다도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혹한기 훈련에 동원되는 장병들에게는 방한내피와 스키파카, 겨울용 양말과 방한장갑 등 동계피복이 지급되지만, 옷이나 양말을 몇 겹이나 껴입어도 추위가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겨울철 추위, 특히 강원도 지방의 추위이다. 따라서 혹한기 훈련의 성패는 얼마나 동상환자를 발생시키지 않고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건이다.

D텐트를 설치하는 장병들. A형 또는 D형 텐트는 그나마 칼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줄 수 있다.

혹한기 훈련 때는 식사에도 주위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모든 음식이 냉동된 상태일 수 있다. 특히 설사를 유발하는 음식은 취식해서는 안 된다. 혹한기엔 강추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차갑거나 설익은 걸 함부로 먹으면 자칫 설사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맛 볼 수 있다. 혹한의 날씨에서 용변을 보는 것도 매우 괴로운 일이데, 설사까지 겹친다면 이는 곧 전투력상실을 의미함과 동시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장진호 전투 때 미 해병대원들은 설익은 칠면조 고기를 먹고 집단배탈이 났고, 일부 병사들이 이로 인한 탈진과 동상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출처: 국방일보 이경원 기자
혹한기 훈련중에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자칫 배탈은 재앙을 부르기 때문이다.

설한지 훈련?

혹한기 훈련과 혼동하는 훈련이 있다. 바로 ‘설한지’ 훈련이란 것이다. 설한지 훈련은 말 그대로 눈 속에서의 전투기동훈련을 의미한다. 혹한기 훈련이 생존이 목적이라면, 설한지 훈련은 눈이 수북한 산악지대에서의 전투기동 및 전투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따라서 설한지 훈련은 특전사나 해병대 등 특수부대 장병들이 주로 참가한다. 이들은 팀 단위의 설상산악침투, 은거지 구축, 매복, 정찰감시와 목표 타격 등의 전술훈련과 설상기동능력 배양을 위해 전술스키 훈련 등 고강도 훈련을 실시한다. 특히, 최근 설한지 훈련에서는 ‘서킷트레이닝’과 같은 신개념 훈련이 도입되었다. 설상에서 타이어 끌기, 외줄 오르기 등 12개 종목을 1세트로 한 실전적이고 과학화된 체력단련 프로그램으로 전투에 필요한 근력을 강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특공무술에서도 기존기술에서 무기를 든 적을 일격에 제압할 수 있는 ‘필살기’를 처음 반영해 전투원의 생존성과 근접전투기술을 한 차원 높였다.

특전사 요원들의 설한지 극복훈련 모습. 사진만 봐도 춥다.

6·25전쟁 당시 장진호전투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 소련군도, 중공군도, 그리고 북한도 동계공세가 장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군이 훈련하는 곳의 추위에 비한다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따뜻하다. 이는 우리가 동계훈련과 작전에 매우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 군이 실시하는 동계 혹한기 훈련은 승리의 열쇠이다.

글 : 이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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