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 쉬운 책 힘든 책 어려운 책

조회수 2017. 12. 11. 07: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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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14. 이해와 번역은 다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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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은 한 나라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것도 다른 것과 견주어 봤을 때 바로 보이고 제대로 보입니다.

[번역의 세계]는 외국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그 반대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 제14화 '쉬운 책, 힘든 책, 어려운 책'입니다.


읽기 어려운 책이 번역도 어려울까요? 번역가는 쉬운 책을 좋아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왜 그런지 들어보시죠.


번역가라고 하면 흔히 받는 질문이 있다. 어떤 책이 가장 힘드냐는 물음이다. 이럴 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이라고 대답하면 왠지 멋져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내가 번역하고 있는 책은 쉬운 책에 가깝다. 힘들었던 책은 따로 있다. 


번역가가 힘들다면 어떤 책을 말하는 걸까. 사람들은 아마도 읽기가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읽기 어려운 책과 번역하기 어려운 책은 다르다.


이를테면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의학책을 번역한다고 치자. 생소한 의학 용어만 봐도 질려서 번역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전문 용어들은 대부분 따로 번역해둔 데가 있기 마련이다. 겁낼 필요가 없다.


의학 용어만 해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http://term.kma.org)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 전문 용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힘들지 몰라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비유가 생각난다. 그는 흰개미가 통풍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도 가우디의 성가족 교회와 비슷하게 생긴 흰개미탑을 짓는 것을 일컬어 ‘이해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이라고 불렀다.


이 말에 빗대어 나는 ‘이해 없는 번역’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정도가 지나치면 '영혼 없는 번역', 즉 기계적인 직역으로 전락할 수도 있겠지만.


낯선 동식물의 이름이 잔뜩 등장하는 생물학 책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일반명으로 써놓았는데 막상 영한 사전에는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때는 별수 없이 그 말에 해당하는 학명이나 우리말의 일반명을 찾기 위해 손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그 역시 좀 번거롭긴 해도 결국엔 시간 문제다. 설령 아무리 찾아봐도 한국어 일반명이 나오지 않을 때는 번역자가 창의적으로 역어를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전문적인 용어 사전(이 경우에는 생물명집)이나 정부 기관 홈페이지의 용어집을 활용할 때에는 번역어에 대한 의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말에는 ‘힘들다’고 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일정이 빠듯한 책은 육체적으로 힘들다.


그럴 때는 곧바로 몸이 반응한다. 지속 가능한 번역을 위해 나름대로 정해놓은 하루 작업량을 넘어가면 계속해서 신호가 온다. 손목, 어깨, 허리,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눈...


그렇게 이어지는 경고음을 무시하고 강행군을 할 때는 평생 자산인 건강을 급행료와 맞바꾸는 것이 된다(그렇다고 급행료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때가 왕왕 있다.


나는 특히 번역 막바지에 이르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페이스를 바짝 끌어올리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마감을 며칠 앞두고는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또는 서) 있거나, 퇴고에 밤을 새다시피할 때도있다. 마감일을 넘긴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다.

분량이 많은 책도 번역자를 지치게 한다. 이른바 '벽돌책'이다. 내 손을 거친 것들로는 스터즈 터클의 『일』(이매진, 2007), 조지 마시의 『인간과 자연』(상상의숲, 미출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지오북, 2017) 등이 있다. 모두가 200자 원고지로 3000매가 넘는 대작들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책을 붙잡고 있다 보면 시간 감각마저 사라지고 어떨 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몇 달을 책 한 권에 갇혀 있다가 드디어 마감과 함께 풀려날 때는 그 책과 더불어 내 인생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진짜 골칫거리는 정신적으로 힘든 책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너무’ 잘 쓴 책. 대개 영어 문법의 잠재력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만큼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힘들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려한' 원문을 한국어로 고지식하게 따라 번역하다 보면, 얼마 못 가서 문장이 꼬인다. 노엄 촘스키의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책보세, 2011)가 그런 책이었다.

두 번째는 저자의 사유가 너무 깊은 책. 내가 번역한 것 중에는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동아시아,2015)가 대표적이다. 날짜까지 기억난다. 2014년 4월 10일. 명동에 있는 동방홍이라는 중국집에서 동아시아 한성봉 대표 일행과 연태 고량주를 마시다가 취기가 얼굴까지 올라왔을 즈음에 편집자가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그대로 받아주겠다는 말에(아마 술기운에서였을 것이다) 취중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평소 받던 금액을 쓰고 서명했다.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해 7월 번역을 시작하면서였다.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그의 글 한 대목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우리가 해야 하는 생각 중에는 형식에 구애받음 없이 은유를 구사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모든 수법을 동원해서) 닫힌 마음의 벽을 공략해야만 가능한 것이 있다. 행여나 쉽게 번역되지 않는 문장이 있다면, 번역의 대가가 등장하거나 전 세계 과학자들의 영어 실력이 나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으리라.

국내에 번역된 데닛의 예전 책들도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데, 내가 보기엔 적어도 번역 탓은 아니다. 저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유의 향연을 한국어로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히도 내가 맡은 책은 자신의 생각 기법을 일반 독자에게 전수하기 위해 작정하고 '쉽게' 쓴 책이어서―데닛 말로는 그렇다는 얘기다―우여곡절 끝에라도 무사히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덜 다듬은 책. 글 솜씨는 부족하지만 독특한 분야를 연구했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았다는 이유로 책을 낸 저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절반이고 그 생각을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다듬는 일이 절반인데, 이런 저자는 앞의 절반만 하고 만 경우다. 나머지 절반은 독자 몫이 되고, 외서의 경우 그것은 번역가의 부담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좋은 작가는 독자가 따라올 수 있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문장 속에 여러 장치를 심어 두는데, 여기에 서툴거나 소홀한 저자의 글은 독해도 번역도 힘들다. 두 가지 언어를 거치는 중역(重譯)이 힘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사월의책, 2015)은 이런 점에서 까다로웠다. 중역은 아니었지만―영어판이 원전이다―저자의 모어가 영어가 아니었기에 그의 문장에서 영어 원어민 저자의 책이라면 발견할 수도 있었을 무의식적 장치라고는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다.

세 번째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부류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는 자들이다. 번역을 잘하려면 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저자의 눈으로 보고 저자의 귀로 들어야 하는데, 이런 글은 오감이 아니라 주로 의식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그 머릿속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에 반해 저자가 잘 쓰고 편집자가 잘 다듬은 이른바 ‘웰 메이드’ 책은 번역도 수월하다. 내가 볼 때는 크레이그 벤터의 『게놈의 기적』(추수밭, 2009)이 그랬다. 인간 유전체 연구의 최전선을 다루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애를 먹었지만 글 자체만 놓고 보면 저자가 써놓은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해도 읽을 만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그런 수월한 책을 만나는 것이 번역가에게 반드시 좋은 일일까? 글쎄. 어렵고 힘든 책을 만났을 때는 아무래도 저자와 출판사를 원망하게 된다. ‘다시는 이런 책 하나 봐라’ 속으로 다짐도 한다.


하지만 막상 번역을 끝내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수월했던 책을 마쳤을 때보다 좀 더 뿌듯한 느낌도 들고 자신감도 커지게 된다. 그러니 힘든 책이 어떤 면에서는 번역가에게 더 고마운 책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책을 의뢰했던 출판사가 다시 접근해 온다면 일단 경계심을 품게 되겠지만.



노승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 컴퓨터 회사와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2006년에 출판 번역에 입문해 11년째 번역을 하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번역가이자 실력만큼 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계형 번역가. 지금까지 50권가량을 번역했다. 편집자가 뽑은 《시사인》 2014년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다.


주요 역서로는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 노엄 촘스키의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아룬다티 로이의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이단의 경제학』,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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